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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의 퍼스펙티브] ‘투자자 - 국가 분쟁’ 잘못 대응했다간 큰코다친다

투자 협정
1962년 처음 이 제안을 접한 미국·영국 등 주요국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원래 조약과 이에 따른 국제 분쟁은 ‘국가들만의 리그’다. 그런데 여기에 개인과 기업을 끼워 준다는 것이 영 마뜩잖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공무원들의 지속적 설득으로 어찌어찌 출범은 하였으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았다. 투자분쟁해결(ICSID) 협약은 66년 이렇게 출범한다. 국제 분쟁에서는 처음으로 투자자와 외국 정부가 직접 당사자로 맞서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ISDS) 절차라는 독특한 제도가 그 한 꼭지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곤 잊혔다.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 20년이 흐른 87년에 가서 영국 기업이 스리랑카 정부를 제소하며 처음으로 먼지를 털고 그 존재를 알린다. 그 효용가치의 입소문이 퍼지며 점차 확산되더니 90년대 후반부터는 빠른 증가 추세로 접어들었다. 이제 이 절차를 통한 분쟁은 총 855건에 이른다. 2017년에 개시된 것만 65건이다. 134개국 정부가 한 번 이상 제소당한 경험이 있다.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12년 이후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 분쟁은 모두 7건이다. 반대로 우리 기업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분쟁도 2012년 이후 지금까지 7건이다. 우리에게도 양방향으로 분쟁이 늘어나는 흐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ISDS 절차는 국제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이 절차가 그동안 접해 본 다른 국제 분쟁 해결 절차와 ‘게임의 룰’이 다르다는 것을 각국이 20여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결과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리를 불태우고 인연을 끊다
 
‘다리를 불태우다(burning the bridge)’는 영어 표현이 있다. 그 사람과의 인연을 끊기로 하다는 뜻이다. 투자 분쟁 전개 상황이 꼭 그러하다. 대개 투자 분쟁은 더는 이 나라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확신으로 투자자가 마지막에 가서야 시도한다.
 
다리를 불태웠으니 남은 건 사활을 건 다툼이다. 소송을 당한 상대국 정부는 당황스럽다. 외교적 룰을 지키며 나름 신사적으로 진행되는 국제 분쟁에 익숙한 각국 정부 입장에선 사생 결단으로 달려드는 투자 분쟁은 차원을 달리한다. 태권도 대련과 격투기 정도의 차이랄까. 정부의 고전은 어쩌면 당연하다.
 
치열함은 숫자에서 나타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제소한 외국 투자자는 600만 달러, 이를 방어하는 상대국 정부는 500만 달러, 그리고 전체 중재 비용은 100만 달러 정도가 소요된다. 세계무역기구(WTO) 통상(通商) 분쟁에 들어가는 비용의 5~10배에 이른다. 소요 시간은 평균 4년에 육박한다. 국가 승소율이 60%에 가깝기는 하나 여러 투자자를 상대하여야 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결국은 돈 문제, 커지는 부담
 
더하여 패소하면 국고에서 직접 배상금이 지급된다는 것도 국가 입장에서는 생소하다. 통상 분쟁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통상 분쟁은 정부 조치의 잘못을 확인하고 시정함으로써 종결된다. 직접 돈이 나가지 않으니 국가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다.
 
95년 이래 우리나라는 37번이나 WTO 분쟁에 참여하였다. 적지 않은 숫자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 수의 약 2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중차대한 분쟁의 승패에 대하여 대부분 잘 알지 못하고 큰 관심이 없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통상 분쟁은 아무리 규모가 커도 결국 제도 개선으로 마무리되니 심리적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까닭이다.
 
이에 비해 손해배상 의무가 곧바로 수반되는 투자 분쟁은 그 셈법이 전혀 다르다. 지금까지 진행된 855건 중 배상 판정에 이른 144건의 평균 배상 금액은 1250만 달러이다. 각국 국고에서 이렇게 곧바로 지출되었다는 뜻이다. 유사한 이슈와 쟁점을 다루는 통상 분쟁과 본질적인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선·후진국 막론하고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새집 짓자’ vs ‘리모델링하자’
 
전혀 새로운 ‘게임의 룰’에 위기의식을 느낀 국가들이 대응 방안을 지금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2015년부터 본격화된 움직임이다.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ICSID·경제협력개발기구(OECD)·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을 중심으로 이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 중이다. 이번에 62년 된 체제를 한번 원점에서 재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물결과 맞물려 바삐 돌아가고 있다. 앞으로 3~4년의 논의와 협상으로 이 작업이 종결될 것으로 보고들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써는 어느 방향으로 물길이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다.
 
일부 국가는 현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자는 파격적 제안을 내세운다. 유럽연합(EU)·캐나다·아프리카 국가들의 목소리다. 요컨대 새로운 상설 국제법원을 만들고 전업 법관도 임명하며, 궁극적으로 현재 3322개에 이르는 전 세계 투자 협정을 아우르는 하나의 큰 집을 짓자는 야심 찬 계획이다. 반면 일부 국가는 조심스럽다. 지금 건물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일단 리모델링 작업만 하자고 주장한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고치자는 입장이다.
 
소수이긴 하나 일부 국가들은 62년 동안의 실험 실패를 인정하고 이 제도를 철폐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원래대로 ‘국가들끼리’ 분쟁을 해결하도록 하고 개인과 기업을 여기에 끌어들이지 말자는 것이다.
 
앞길은 안개 속이나 최근 논의로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명확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크게 네 가지다. 먼저 법적 근거가 희박한 주장을 조기에 솎아내는 제도를 새로이 도입하는 방안이다. 패소가 명확하거나 협정이 요구하는 조건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 분명함에도 끝까지 이어지는 분쟁들이 있기 때문이다. ICSID 통계에 따르면 최소 7% 분쟁이 이에 해당한다. 적지 않다.
 
그다음은 동일한 분쟁이 여러 절차에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을 막는 방안이다. 동시에 진행되는 중복 절차가 국가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이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중재판정관의 윤리 규정을 강화하여 이해관계 상충 문제 등을 보다 철저히 감독하자는 것이 그다음이다. 마지막으로 항소 제도의 도입이다. 국가의 중차대한 문제를 단심으로 결정하는 것이 영 불안하다는 것이다. 역시 국가들의 오랜 희망 사항이다.
 
108건 투자 협정, 변화 불가피
 
이 네 가지는 ‘신축론’, ‘리모델링론’ 상관없이 대부분의 국가가 의견을 같이하는 항목이다. 이 중 두 가지가 이번에 한미 FTA 개정본에 반영되었다. 아마 이 두 가지가 일단 가장 논의가 정리되어 있어 양국 모두 그 수용에 큰 부담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미 FTA에 기초하여 이미 진행 중인 분쟁은 이 개정과 상관없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이 제기되는 분쟁에는 새 규정들이 적용된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도다.
 
정작 큰 고민거리는 지난 62년간의 체제가 앞으로 어떻게 가닥을 잡을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현재 국제사회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한미 FTA 투자 챕터를 포함하여 이미 우리나라가 체결한 투자 협정들을 다시 손봐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 투자 챕터를 포함, 1967년 이후 우리나라가 체결한 투자 협정은 모두 108건에 달한다. 어떠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든 현재의 투자 협정에는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니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떻게 보면 이 분야에서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앞으로의 국제사회 논의 동향을 쫓아가며 발 빠르게 대응하여야 한다. 투자 협정이 우리 국내적으로 초래하는 논란과 민감성을 고려하면 주요 이슈에 우리 입장을 정하고 취사선택을 거쳐, 새로운 질서 형성 과정에 우리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야 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정비가 필요하다. 2012년 전후 다급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었으나 이제 숨 고르기에 들어갈 때다. 지금 우리 정부에서 양자 간 투자 협정은 조약으로 보아 외교부가, FTA 투자 챕터는 통상 협정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그리고 투자 분쟁에 대한 대응은 국가 쟁송 차원에서 법무부가 담당하고 있다. 또 사안에 따라 여러 부처가 관여하고 빠진다. 투자 분쟁에서 점차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는 언감생심이다. 이제 유기적 대응을 위한 체제 정비를 모색할 때다. 국제 사회가 원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다면 우리 역시 그 관점에서 이를 바라봐야 한다.
 
대북 투자 협정 큰 그림 마련해야
 
한편 투자 분쟁 문제는 남북 경협과도 직접 맞닿아 있다. 북한 역시 무려 24개국과 투자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우리와도 이런 투자 협정을 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기업을 위한 분쟁 해결 절차를 완비하고 우리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0년 체결된 남북투자보장합의서는 제일 중요한 분쟁 해결에 대해 형식적인 서술에 그치고 알맹이가 없다. 그 결과 개성공단 운영 및 폐쇄 과정에서 별 쓸모가 없었다. 중요한 경험이다. 새로운 경협이 상정하는 대북 투자 규모는 개성공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 역시 투자 협정과 투자 분쟁을 다루는 큰 그림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진정한 경협은 막연한 감상이 아닌 면밀한 사전 검토와 대비로만 가능하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리셋 코리아 통상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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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