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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김정은 위원장! ‘태극기 부대’ 만만치 않습니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내 서울에 오기로 했다. 9월 19일 오전에 발표된 평양 공동선언 합의문에서 “가까운 시일 내로”라고 했다. 옥류관 오찬에서는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정말 서울에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너무 간곡하게 말씀하시지만 우리 쪽은 태반이 반대”라며 잠시 고민하더니 “연내에 간다”고 확약했다. 다른 자리에서는 “내가 남쪽에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 했다”며 겸손해했고, “태극기 부대가 데모 좀 해도 괜찮다”고 여유를 보였다.
 
남북은 피 흘리며 전쟁을 한 사이다. 반공의 태극기 정서로는 김 위원장이 아직도 ‘북괴’의 ‘괴수’다. 많은 이가 태극기 부대의 결사 반대 때문에 그의 방남(訪南)이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런데 ‘괴수’가 ‘태극기’를 먼저 거론하면서 서울에 오기로 한 것은 뜻밖이다. 
 
태극기 부대는 공동체 분열의 모습이 아니라 다양성을 보여주는 건강한 자산이다. 극단적 보수지만 안보에서는 경각심을 높이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쿨하게 정리하면 야당·보수세력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 전쟁을 치른 분단국가에서 야당과 보수를 빼고 남북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북은 문 대통령에게 15만 평양 시민을 상대로 연설할 기회를 주었다. 이번에는 김 위원장 차례다. 국회에서 보수야당 의원들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비핵화하겠다”고 하면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그런데 평양 정상회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위장평화 결과에 참담하다”(홍준표 전 대표), “송이 받고 땅 내줬다”(김진태 의원) 식의 독설을 뿜고 있다. 그뿐인가. 비핵화 이후 남북 경협에 필요한 수십조원의 예산을 보수야당이 순순히 통과시켜줄 리도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싫어도 지겹도록 만나고 그들의 요구를 성의 있게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야당·보수도 생각할 점이 있다. 지금처럼 김정은을 악마화하면 자기들만 손해다.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심복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네 번째로 평양을 다녀왔다. 전쟁 직전까지 갔던 한반도 정세를 평화모드로 바꿔놓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로는 80%의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과 담을 쌓은 청맹과니일 뿐이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를 배려해야 한다. 남남 갈등은 ‘북한의 수석대변인’ 소리까지 들었던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힘을 못 쓰면 그에게도 결정적인 타격이 된다. 더 늦기 전에 확실한 비핵화 행동을 통해 북한이 달라졌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주어야 한다. 그래야 야당·보수가 마음을 열고 남남 갈등도 풀린다. 문재인-트럼프 황금조합이 건재할 시간은 유한하다. 특히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성과물을 거머쥐지 못하고 11월 6일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 북·미협상은 바람 빠진 풍선 신세가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임기가 없지만 한·미의 대통령은 다르다.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10월 9일 서열 2위인 조명록 인민군 차수를 워싱턴에 특사로 보내 클린턴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친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대선(11월 7일)을 코앞에 둔 퇴임 직전의 클린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자 중재를 위해 평양행을 포기해야 했다.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은 “만일 김정일 위원장이 조명록의 방문을 한 달만 앞당겼어도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임동원 회고록 ‘피스메이커’). 더 안타까운 건 클린턴이 자신의 방북이 무산된 뒤 김정일을 워싱턴으로 초청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친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  
 
이제 미국 중간선거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미국 매파, 한국 태극기 부대의 공격을 막아줄 트럼프·문재인의 입지는 위축된다. 북한 고위 관계자는 평양에 보수야당이 함께 오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사돈 남 말 하는 격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했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광화문을 활보하는 장면을 보고 싶지만 현재로선 성사를 장담할 수 없다. 다수 국민은 답방을 원하지만 비핵화 조치 없는 종전선언에는 부정적이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지금 이 상황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끌기를 해서 도대체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진심이길 바란다.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남남 갈등 해결의 출발점은 신속하고 과감한 비핵화 결단뿐이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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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