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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하지 말라는 게 왜 이렇게 많은가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누가 국회의원이 일을 안 한다고 하는가. 그들이 낸 법안이 국회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국리민복을 위해 새 법을 만들거나 있는 법을 고치려고 주야장천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도로교통법 부분만 봐도 그들의 노고가 선명히 드러난다. 지금의 20대 국회에 이 법 관련 개정안 159개(3일 기준)가 계류돼 있다. 그중 특히 창의적(일반 국민이 생각하기 어렵거나 생각은 해도 공상 수준에서 멈출) 발상이 담긴 법안 10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대표로 발의한 의원 이름이다.
 
① 운전 중 흡연 금지(박맹우):자동차가 움직이고 있을 때 운전자가 흡연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안 이유에 ‘담배를 찾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행위 등은 휴대용 전화를 사용하거나 영상표시장치를 조작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전방을 주시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다’고 쓰여 있다. ② 임산부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김성수):‘안전띠를 멜 경우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는 임산부’를 제외한 모든 임산부가 적용 대상이다. 안전벨트 미착용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면 의사 소견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③ 반려동물 고정(박경미):‘동물용 상자 등에 반려동물을 넣어 바닥에 내려놓거나 안전띠 등을 사용해 좌석에 고정하는’ 의무를 부여한다. ④ 우회전 신호등 설치(정용기):‘시장 등은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를 위한 우회전 신호기를 설치·관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도로교통법에 넣자는 것이다. ⑤ 음주운전 전과자 차량 번호판에 특수문자 포함(이동섭):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가 면허를 다시 취득했을 때 그의 차량 번호판을 일반 번호판과 다르게 하자는 것인데, 차량을 다른 사람 명의로 등록할 경우엔 무대책이다. ⑥ 운전면허 취득 교육에 인성교육 포함(김영호):‘책임·존중·배려 등 인성에 관한 교육 두 시간 이상 포함’이라고 법안에 쓰여 있다. 두 시간에 인성이 바뀐다는 믿음이 전제돼 있다. ⑦ 실내주차장에서 전조등 켜기(김성찬):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차량의 등화를 켜도록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 되고 있음’이 제안 이유다. ⑧ 반사안전조끼 착용(박완수):고장 자동차 표지(삼각대)를 설치하려는 운전자는 이에 앞서 반사안전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순서가 뒤바뀌면 위법이 된다. ⑨ ‘아이가 타고 있어요’ 규격화(김명연):경찰이 차량에 부착하는 ‘초보 운전’이나 ‘유아 동승’ 표지를 만들어 보급하고, 이 공식 표지 외의 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다. ⑩ 고교 주변도 보호구역으로(홍익표):어린이 보호구역을 중·고교 주변까지 포함해 청소년 보호구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병원·보건소 주변을 노인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법안도 별도로 제출돼 있다. 두 법안이 모두 통과되면 소규모 도시에선 보호구역이 일반구역보다 넓어질 수도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국회의원이 아주 많이 부지런하지는 않거나 다른 중요한 공무가 산적해 있어 이 법안 중 상당수는 논의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최근에 시행된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나 ‘택시 승차 때 어린이 카시트 사용 의무화’처럼 하루빨리 국민 안전에 기여하는 법을 만들지 못해 안타까워할 의원님도 있겠지만,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는 국민도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영국과 독일, 교통 법규 측면에서 대조적인 나라다. 영국에선 금지 표지판이 없는 곳에선(자동차 전용 도로 제외) 좌·우회전과 유턴이 가능하다. 독일에선 허용된다고 표시된 곳에서만 그것들을 해야 한다. 영국은 신호등 없는 원형 교차로(라운드어바웃)의 고향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영국보다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시민이 사망할 확률이 더 크다. 고성능 차량의 속도감을 즐기는 운전자가 상대적으로 독일에 많아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지만, 규제가 촘촘하다고 반드시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원형 교차로는 12개의 길이 만나는 곳이다. 그런데 신호등이 없다. 자율의 질서 속에서 예술처럼 차량이 흐른다.
 
국립공원 내 산 정상·탐방로·대피소에서 통에 담아 간 위스키 한 모금 마셔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도 불법이 됐다. 라쿤 등의 야생동물이 있는 카페가 인기를 끌었는데, 동물 복지 등을 이유로 한 금지법이 생겼다. 울산경찰청은 이성 부하 직원에게 사적인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게 하는 규칙을 제정했다. 자고 나면 하라, 하지 말라는 법이 하나씩 생겨나는 지경이다. 일찍이 공자는 법률로 세상을 다스리려 한 법가(法家) 경세가들을 하수(下手)로 여겼다. 잔소리가 잦으면 정작 중요한 훈육도 쓸데없는 참견으로 생각한다. 하지 말라는 게 많으면 눈치 보며 주눅 들고, 속여가며 할 궁리를 한다. 겪어 본 사람은 다 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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