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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꺼리는 로봇, 스페인 노조는 “도입하자” 먼저 제안

스페인 카탈루냐주 세아트 마르토렐 조립공장. 바르셀로나 = 문희철 기자.

스페인 카탈루냐주 세아트 마르토렐 조립공장. 바르셀로나 = 문희철 기자.

 
스페인 카탈루냐주 최대 공장인 세아트(SEAT) 마르토렐 공장. 약 30㎞ 떨어진 꼼뽀넨데스 공장에서 생산한 기어 샤프트(동력을 전달하는 막대 모양 기계부품)와 바르셀로나 공장에서 프레스 가공을 마친 반조립 부품이 기차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면, 최종 완제품을 조립하는 공장이다.

노동경쟁력으로 거듭난 스페인
‘무파업’ 아우디 산하 세아트 공장
노조의 공정 아이디어 80% 실행
비용 170억 줄이고 생산성 높여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최종조립 공정은 다른 공정보다 수작업 비율이 높은 편이다. 마르토렐 공장도 1만4000여명의 근로자가 전체 공정의 25%를 수작업으로 처리한다.
 
 
세아트 노조는 노조원 어깨 피로 보호를 위해 배터리를 조작하는 로봇팔 도입을 제안했다. 문희철 기자.

세아트 노조는 노조원 어깨 피로 보호를 위해 배터리를 조작하는 로봇팔 도입을 제안했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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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곳이 한국 공장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한국에선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노동조합(노조)이 조립공정에 로봇 도입을 반대하지만, 이곳에선 노조가 적극적으로 로봇 도입을 요구한다.
 
차량용 부품을 실은 무인이동로봇이 근로자 호세(31)에게 배터리를 실어 나른다. 배터리가 도착하면 호세는 로봇 팔을 조작해 배터리를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아로나 차체에 부착한다.
 
 
무인이동로봇이 컨베이어벨트 작업자에게 차량용 부품을 실어나르고 있다. [사진 세아트]

무인이동로봇이 컨베이어벨트 작업자에게 차량용 부품을 실어나르고 있다. [사진 세아트]

 
호세가 이 공정에 사용한 2개의 로봇은 모두 노조가 사측에 도입을 요구했다. 컨베이어벨트 근로자들이 평균 6500여개의 부품(총 무게 650㎏)을 부착하는데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조합원이 늘자 노조가 앞장서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에스텔 루이즈 세아트 마르토렐 코디네이터는 “지금까지 노조원이 제안한 공정 개선 아이디어의 80%를 실제로 공장에 반영했고, 덕분에 지난해 연간 1300만유로(170억원)를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세아트는 노조원이 제안한 공정 개선 아이디어의 80%를 실제로 공장에 반영한다. [사진 세아트]

세아트는 노조원이 제안한 공정 개선 아이디어의 80%를 실제로 공장에 반영한다. [사진 세아트]

 
마르토렐 공장은 노사화합으로 유명한 공장이다. 아우디폴크스바겐그룹 산하 63개 공장중 유일하게 노동자들이 직접 투표·선정하는 ‘올해의 최고 경영자상(Top Employer)’을 4년 연속 수상했다. 에스겔 아빌레스 세아트 글로벌 대변인은 “근 70년 역사의 세아트 노사관계를 모두 파악하긴 어렵지만, 최근 십수년동안 누구도 세아트 노조가 파업했다는 말을 못들었다”고 말했다.
 
협력적 노사관계는 뛰어난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마르토렐 공장은 아우디폴크스바겐그룹 63개 공장 중 오직 5곳만 획득한 전 공정 우수 생산성 인증(린시스템·Walk of Lean) 공장이다. 세아트의 차량 1대당 평균 제조시간(15시간)은 아우디(24시간)의 62.5%에 불과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세아트 모토렐 공장 본관 정문 앞. 바르셀로나 = 문희철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세아트 모토렐 공장 본관 정문 앞. 바르셀로나 = 문희철 기자.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자동차 산업은 한국과 ‘판박이’였다. 2000년 세계 6위 자동차 생산국가(303만대)에서 불과 10여년 만에 12위(198만대·2012년)로 추락한다. 임금이 저렴한 동유럽(루마니아·터키·헝가리) 국가가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면서다.  
 
남유럽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동유럽에서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우자, 유럽 자동차 제조사는 굳이 스페인에서 공장을 돌릴 이유가 없어졌다. 실제로 2010년 전후 오펠·포드·르노·푸조시트로엥이 스페인 현지 자동차 공장·법인을 폐쇄·축소하는 계획을 줄줄이 발표했다. 방만한 재정, 과도한 복지 등으로 국가 채무가 불어나면서 스페인이 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와 함께 국가 이름 앞글자를 따 일명 ‘유럽의 돼지들(P·I·G·S)’로 낙인찍힌 시기와 겹친다.
 
 
세아트 마르토렐 공장에서 작업 중인 로봇. [사진 세아트]

세아트 마르토렐 공장에서 작업 중인 로봇. [사진 세아트]

 
돼지 취급이나 받던 스페인 정부는 노동개혁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스페인 정부는 완성차 제조사가 유연한 임금·근로조건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했다. 마르틴 몬주 스페인자동차협회 노무법률팀 이사는 “정부 노동개혁을 통해 유연한 노동조건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일단 제조기업이 위기에 부닥치면 이미 체결했던 단체협약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덕분에 사측이 부도 위기를 문서로 증명해서 정부 인정을 받는다면 근로자 동의 없이 단체협약을 바꿀 수 있다. 또 단체협약 체결이 1년 이상 지연하면 정부에서 작성한 기초 단체협약서를 노사 양측이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사측은 정년을 연장(65세→67세)하고, 노측은 해고시 퇴직급여 최대지급기간(42개월→24개월)을 축소했다.  
 
물론 스페인 정부가 노조 동의 없이 전격적으로 강력한 개혁을 추진한 점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당시 상황을 블랑코 무뇨스 스페인 노동자위원회 산업담당 사무총장은 “정부가 예고 없이 노동개혁을 강행했다”며 “스페인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그때만큼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로봇이 자동화 공정을 수행 중인 세아트 마르토렐 공장. [사진 세아트]

로봇이 자동화 공정을 수행 중인 세아트 마르토렐 공장. [사진 세아트]

 
노동개혁 과정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리지만, 결과가 효과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합리적 단체협약 체결과 협력적 노동환경이 확산하자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는 앞다퉈 스페인 공장 투자를 늘렸다. 아우디폴크스바겐그룹은 세아트 공장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33억 유로(약 4조3300억원)의 과감한 투자를 했다. 덕분에 지난해 세아트 판매대수(46만8400대)는 2001년 이래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르노자동차는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 신차(트위지·캡쳐)를 배정했다. 포드자동차는 인근 벨기에 공장을 폐쇄하고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을 유럽 최대 생산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23억 유로(2조9700억원)를 집행하고 있다. 푸조시트로엥그룹도 인접한 프랑스공장을 폐쇄하고 여기서 생산하던 물량을 스페인으로 돌렸다. 닛산자동차 역시 바르셀로나 공장에 1억3000만 유로(1680억원)를 투자해 생산 규모를 확장했다.
 
 
세아트 마르토렐 조립공장 내부. [사진 세아트]

세아트 마르토렐 조립공장 내부. [사진 세아트]

 
자동차 산업에서 시작한 노동생산성 향상은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스페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8286 달러로 유럽 3위를 기록해 유럽 4위인 이탈리아(3만8140 달러)를 추월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스페인의 구조개혁은 모범사례”라며 스페인을 “돌아온 스타”라고 비유했다.
 
마르틴 몬주 이사는 “노동개혁 이후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바뀌면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이 투자를 확대한 결과”라며 “노동개혁 이후에도 자동차 산업 해고율(8%)은 기타 스페인 제조업 평균(30%)을 한참 밑돌면서 우려했던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바르셀로나(스페인)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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