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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모델' 베트남의 ‘도이머이’ 이끈 도 므어이 前공산당 서기장 별세

1995년 당시 도 므어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김영삼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만나 건배를 들고 있다. [중앙포토]

1995년 당시 도 므어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김영삼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만나 건배를 들고 있다. [중앙포토]

베트남의 경제 발전을 이끈 도 므어이 전 공산당 서기장이 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101세. 므어이 전 서기장은 베트남 독립운동과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베트남 근현대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자국내 독립운동
‘도 므어이’는 ‘열 번 승리했다’는 뜻

1991년~1997년 공산당 서기장 재임
한·미·중과 수교 통한 외자유치 이끌어

베트남뉴스통신(VNA) 등 현지언론은 2일 “므어이 전 서기장이 1일 오후 11시쯤 하노이의 군중앙병원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1991년 6월부터 97년 12월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므어이는 도이머이 정책을 적극 추진해 베트남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86년 베트남에서 공식채택된 도이머이는 ‘변경한다’는 뜻의 도이(doi)와 ‘새롭게’라는 의미의 머이(moi)가 합쳐진 용어로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경제발전을 지향하는 정책이다.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므어이 전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므어이 전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는 도이머이를 추진하면서 외국인투자법 강화를 주도하고, 서기장 재임 기간 동안 중국(1991년)과 한국(92년), 미국(95년)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외자유치를 통해 경제발전 기반을 닦았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이 정책 덕분에 베트남은 3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가 14배 증가하는 등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다.
 
도이머이는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로도 언급된다. 지난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베트남처럼 기적과 같은 경제 번영을 이뤄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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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므어이 베트남 전 공산당 서기장 [VNA=연합뉴스]

도 므어이 베트남 전 공산당 서기장 [VNA=연합뉴스]

 
1917년 하노이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므어이 전 서기장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36년 ‘인민전선운동’(현 공산당)에 뛰어들면서 자국 내에서 독립운동에 힘쓴 ‘혁명 1세대’다. 41년엔 프랑스군에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런 투쟁 덕에 ‘응우옌 주이 꽁’이라는 본명 대신 ‘열 번 탈출했다’, ‘열 번 승리했다’는 뜻의 ‘도 므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45년 베트남 독립 후 상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 부총리, 총리를 거친 후 공산당 서기장이 됐다. 
 
므어이 전 서기장은 92년 한국-베트남 수교에 큰 역할을 했으며 95년 한국을 방문했다. 96년엔 베트남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상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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