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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노벨상 창가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추석을 쇠었다. 가을 추(秋)엔 옅은 금빛 물결이 일렁이고, 저녁 석(夕)에는 붉은 노을이 비친다. 산천은 작고 소중한 결실을 보려는 초목의 손짓과 신호로 가득 찰 것이다. 노벨상 수여가 10월에 시작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문명의 진보에 길을 트고, 휘청거리는 인류사회에 방향등을 켠 사람들의 공적을 기리는 지성의 잔치다. 2000년 10월,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지방 어느 국도에서 들었다. 차를 세웠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벅찬 감정을 감지한 국도변 코스모스도 몸을 떨었다.
 

2018년 세계를 평화로 견인해 낸
문재인 대통령의 돋보이는 행보
다만 나 홀로 노벨 평화상은 족쇄
트럼프 삐치고 김정은 자존심 상해
‘3자 공동수상’ 최선의 시나리오
스웨덴 한림원은 주저하지 말라

이후 18년 동안 한 번도 그런 경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계 10위 경제대국과 ‘노벨상 1명 배출’은 아무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소국(小國)인 룩셈부르크(3명), 루마니아(3명), 크로아티아(2명), 리투아니아(1명)도 수상자를 배출했다. 스웨덴과 지리적·문화적 친화성이 있기는 한데, 지난해 미국 팝가수 밥 딜런(Bob Dylan)을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을 때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저음 목소리에 섞인 저항 메시지가 핵전쟁에 대한 진중한 경고음임은 세상이 다 아는데 노벨 문학상까지야 상상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수원시가 마련해 준 ‘고은창작실’ 문 앞에 대기 중이던 취재진은 허무한 마음으로 흩어졌다.
 
올해 고은창작실은 적막강산이다. 스웨덴 한림원 문학상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미투(MeToo) 고발로 근신 중이다. 문학상에 가장 근접했던 고은 시인도 같은 처지다. 진위 여부야 어찌 됐든 한국 근현대사의 한(恨)과 고뇌를 시(詩)로 격상한 ‘만인보’ 같은 역작이 땅에 묻힐까 걱정이다. 올해 문학상은 그런 사정으로 휴업했다고 하니 다른 종목이나 기웃거릴밖에.
 
과학과 경제학은 강대국이 버티고 있어 언감생심이다. 한국연구재단이 아쉬운 마음을 실어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 6명을 발표했다. 논문수와 피인용수, 영향력 지수를 종합해 유력 후보를 조심스레 거론했는데 ‘수상 확신’은 달지 않았다. 족집게 정보분석 기업인 클래리베이트가 발표한 예상 명단에도 한국인 과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마 올해도 미·영·독·불 4대 강국 독점 잔치이거나 가끔 일본과 러시아가 끼일 수는 있겠다.
 
송호근칼럼

송호근칼럼

그렇다면 평화상이 남았다.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희망 횃불을 지핀다면 한국에 유력 후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수 싸이(Psy)는 어떤가? 그 유명한 말춤으로 세계를 흥겹게 만들었던 우리의 대중가수 싸이, 구태여 말한다면 할아버지와 손주, 어머니와 아들딸이 손목을 모은 채 발을 굴러댔던 그 세대 화합의 기운을 세상에 전파했다면 충분히 평화상감이다. 전쟁이 국가 간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에, 이름하여 ‘세대화합상’.
 
유창한 영어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방탄소년단(BTS)도 유력 후보다. 경기도 일산에서 자란 평범한 청년이 어쩜 저리도 멋지게 컸는지 가슴 뻐근할 정도다. “피부색과 성별이 어떻든 당신 자신을 얘기하세요!” ‘Speak Yourself’- 후회와 열등감에 지질린 청소년들에게 존재감 발견의 메시지를 율동과 노래로 전한 방탄소년단은 이름하여 인권상감이다. 인권을 회복해야 진정한 평화다.
 
한 사람이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 2018년 세계질서를 평화 쪽으로 견인하는 데 가장 돋보인 행보를 했거나 하고 있는 인물이다. 은둔 왕국 북한을 세계무대로 이끌어냈고, 변덕이 죽 끓듯 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지구촌을 재앙에 빠뜨릴 핵전쟁의 개연성을 줄였으며, 지상 목표인 북한 핵 폐기를 향해 좁은 길을 개척 중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평화로 가는 관문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행적이 한반도를 가로지른 것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질서의 재편으로까지 보폭을 넓혔다. 향후 행보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의 위험천만한 역학을 평화무드로 바꾸는 길잡이가 될 것을 기대한다면 노벨 평화상을 받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나 단서가 붙어야 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을 제외한 ‘나 홀로 수상’은 향후 진로에 족쇄가 될 것이 분명하다. 주연이 아니면 트럼프는 삐칠 것이고, 타협 당사자인 김정은은 자존심을 다칠 우려가 있다. ‘3자 공동수상’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터인데 아직 구체적 성과가 나오지 않아 스웨덴 한림원은 망설일지 모른다. 주저하지 말라. 취임 12일째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도 수여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추후 기울일 노력을 응원하는 취지’가 2009년 노벨위원회의 해명이었으니 3자 공동수상도 아예 단념할 그림은 아니다. ‘잘 해보라!’는 격려 메시지, 그리하여 세계국가의 평화염원이 한반도에 쏟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노벨상을 부르는 가을 노래, 며칠 안 남았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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