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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소금구이집 성추행 집유, 모텔 감금·성폭행도 집유… 판사 논리 이랬다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억울하다”던 할아버지는 왜 유죄 판결을 받았나
흔한 성추행 사건이 사법불신이라는 뜻밖의 경로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하 곰탕집) 얘기다. 과거 논란이 된 성범죄 사건은 대개 남녀간 성 대결과 혐오로 번지는 데서 그쳤지만 이번엔 다르다. 판결을 내린 판사, 그리고 더 나아가 사법 시스템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비슷한 죄질에 대해 실형과 벌금형이 갈리는 등 판결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차라리 AI(인공지능) 판사를 도입하자는 주장마저 나온다. AI 판사라면 곰탕집 피의자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까.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아직 형량 예측 AI 서비스가 없지만 AI가 찾아주는 판례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법률과 양형기준상 곰탕집 판결은 타당했는지, 그리고 대법원까지 가면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AI 판례분석을 통해 예측해 봤다. 국내 첫 AI 변호사로 로펌에 취직한  ‘유렉스’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서비스를 이용했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 AI로 분석해 보니
유독 들쑥날쑥한 성범죄 판결
판사 불신에 AI 판사 도입 요구

AI 통해 판례 분석해 보니
1심선 증거보다 설득력 싸움

늙고 돈 없으면 유죄 많지만
대법선 ‘무죄 추정의 원칙’ 적용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글 하나에서 시작된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그야말로 일파만파다. 청원은 짧은 기간에 30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들끓는 여론은 비슷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규탄 인터넷카페 개설과 사법부에 대한 초유의 대규모 항의 집회(10월 27일 예정)로 이어졌다.
 
사건이 커진 건 피고인의 아내가 판결문을 커뮤니티 카페에 공개하면서부터다. 가뜩이나 식당에서 마주친 모르는 여자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이유만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과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이런 차에 검사의 구형(벌금 300만원)보다 훨씬 중한 징역 6개월의 실형 판결을 이끈 사실상의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 진술뿐이라는 판결문을 본 남성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나도 잠재적 범죄자인가’라는 감정이입과 함께 판사 잘못 만나면 한순간의 실수(또는 오해나 대수롭지 않은 행동)로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공포가 이 사건의 실제 유무죄 여부와는 별개로 사건을 키웠다.
 
당장 담당 A판사의 자질을 문제 삼는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AI가 찾아준 판례를 보면 비슷한 죄질에 대해 전혀 다른 형량을 선고하는 건 부지기수다. B 판사의 ‘소금구이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곰탕집 사건과 비슷한 소금구이집 사건
 
AI가 찾아낸 ‘곰탕집 사건’과 유사한 ‘소금구이집 사건’

AI가 찾아낸 ‘곰탕집 사건’과 유사한 ‘소금구이집 사건’

이 사건 피고인(사건 당시 55세)은 지난 2015년 어머니 손을 잡고 서울의 한 소금구이 식당 앞을 걸어가던 두 살 여아에게 다가가 사탕을 주며 악수하자며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딸의 손을 빼려고 할 때 피고인이 오른손으로 아이의 가슴을 일부러 만졌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사건 발생 1년 만에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판결을 받았다. 비록 실형을 면하기는 했지만 성범죄 전력이 없고 범행을 일관되게 부인하는데도 이례적으로 보호관찰관의 감시감독을 받는 가볍지 않은 형을 받았다. 과연 두 살 먹은 여자아이의 가슴을 만진 게 판결문에 나온 대로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일으킨’ 것인지는 또 다른 논란거리지만 이를 인정하더라도 일반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여전하다. 곰탕집 사건에선 CCTV 증거라도 있었지만 이 사건에서는 오로지 피고인과 엇갈리는 피해자의 주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B 판사는 비슷한 시기에 한 일본 은행 서울지점의 일본인 남자 행원이 한국인 여직원의 허벅지를 만진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데도 징역 2년 6개월의 실행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 두 판결만 보면 B 판사가 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강제로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후 감금하고 휴대폰으로 성폭행 장면을 동영상 촬영까지 한 남성(당시 30세)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범행이라고 해봐야 두 살배기 여자아이 가슴을 잠깐 만진 것과 장기간 여성을 성폭행하고 촬영까지 해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를 준 데 대한 형량이 큰 차이가 없다. A 판사와 마찬가지로 B 판사 역시 시시각각 입맛대로 판결하는 자질 없는 판사인 걸까. 확실한 건 이 같은 오락가락 형량 뒤엔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반성’과 ‘합의’라는-한국 법원에서 유독 효력을 발휘하는-요술 방망이다.
 
B 판사는 소금구이 사건 판결을 내리면서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고 피해자 측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전 애인을 성폭행한 남자는 범행을 자백하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면했다. 결코 판사의 자의적인 잣대가 아니다. ‘반성 여부’는 양형 기준에 명시돼 있는 요건이다.
 
#‘합의’ 없이는 소용없는 ‘무죄 추정의 원칙’
 
문제는 곰탕집이나 소금구이 사건처럼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 범행을 부인할 때 불거진다. 양형 기준상의 ‘반성 없음’이란 범행을 정당화하는 경우만 의미한다. 예컨대 일본 은행원처럼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둥 명백한 범죄사실을 합리화하며 빠져나가려 할 때 반성하지 않는다고 본다. 단순히 범행을 부인하는 건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양형 기준에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범행을 부인하면 반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거운 벌을 받기 일쑤다. 성범죄만큼은 무죄 추정의 원칙 대신 누가 더 설득력 있게 판사를 설득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 돼버리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는 “판사가 증거를 보지 않고 판사에게 하는 태도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한쪽 주장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보기 어려우니 법적 다툼까지 가는 것인데 범행을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유죄를 내리면 황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금구이 사건에 대해 B 판사는 “피고인이 의사 표시를 조리 있게 못해 신뢰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 특성상 명확한 증거가 있기 어렵고 대부분 피해자 진술뿐”이라며 “합리적 의심에 대해 어떤 판결을 하느냐는 판사 고유의 판단 영역”이라고 말했다. “유죄냐 무죄냐의 양극단의 판결만 있을 뿐 중간이 있을 수 없기에 누구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느냐가 판결을 좌우한다”고도 덧붙였다. ‘원님 재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거꾸로 “죄질로만 판결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민사를 통해 적법한 배상을 받기 어렵기에 형사 절차를 통해 보상이 이뤄지는 후진적 사법 관행은 피고인·피해자뿐 아니라 판사들에게도 고민거리라는 주장이다. 그는 “합의 유무, 다시 말해 합의금 지급에 따라 실형 여부가 갈리는 건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당한 일”이라며 “하지만 관행상 특정 판사 혼자 다른 판결을 해봐야 불필요한 사법 절차를 되풀이한 끝에 결국 상급심에서 똑같은 결론이 나기 마련이라 결국 관행을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늙고 돈 없으면 죄인?
 
늘어나는 강제추행

늘어나는 강제추행

반면 세상 물정 모르는 판사의 온정주의가 문제라는 전혀 다른 주장도 있다.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은 “다른 범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성범죄에서는 피고인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법원의 어설픈 온정주의가 문제”라고 꼬집는다. 그는 “심지어 ‘이미 벌어진 일을 실형 좀 살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고 말하며 낮은 형량을 내리는 판사도 봤다”고 말했다.
 
성범죄에 관한 한 나이가 들수록 더 엄한 판결로 이어진다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앞길이 창창한 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논리가 나이 든 사람에겐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의 한 고교 교사 성추행 사건도 그중 하나다. 제자의 어깨를 감싸고 무릎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한 혐의로 기소된 57세의 남자 교사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배심원단으로부터는 무죄 평결을 받았다. 재판 직전 피해자가 요구한 합의금 5000만원까지 지급했지만 판사는 이례적으로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을 뒤집어 벌금 1000만원에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2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담당 변호사는 “피해 학생이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과장되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판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항소했다.
 
70세가 넘은 순천의 유명 한의원 원장도 비슷하다. 10여 년 전 초등학생 환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6월 구속됐다가 피해자와 적지 않은 합의금으로 합의를 본 다음에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엉덩이 터치는 중범죄일까
 
대법원까지 가면 곰탕집은 과연 어떤 판결이 나올까. 피의자와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문서로 사건을 접하는 대법원에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예가 많다. 소금구이 사건만 해도 무죄로 판결이 뒤집어졌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수사를 하는 단계뿐만 아니라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이끄는 대원칙으로서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오래된 법언에 내포된 이러한 원칙은 우리 형사법의 기초”라며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1심은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피의자가 소아성애 같은 성향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과거 1995년 ‘부산 세탁소 사건’ 등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특정 사건에서 실제로 범죄행위가 벌어졌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착각이 있다. 곰탕집 사건 피의자가 설령 엉덩이 한번 만진 게 맞다해도 그게 뭐 대수냐는 인식이다. 아니다. 우리 법체계에서 엉덩이를 만진 건 상당히 중한 범죄다. 15세 소녀의 엉덩이를 친 죄로 기소된 남성은 벌금 300만원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은 물론 항소심에서도 “성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여성의 엉덩이를 손으로 건드림으로써 객관적으로도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형법의 강제추행죄의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결했고,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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