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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일방 핵무장 해제 없다” 상응조치 요구

유엔 총회에 참석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연설을 마친 뒤 연단을 떠나고 있다. 이 외무상은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UPI=연합뉴스]

유엔 총회에 참석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연설을 마친 뒤 연단을 떠나고 있다. 이 외무상은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UPI=연합뉴스]

미국과 핵 협상에 재착수하는 북한의 이용호 외무상이 유엔 무대에서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는 없다”고 밝혔다. 이 외무상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 유엔 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우리 국가(북한)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다”며 “그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15분 동안 진행한 연설에서 이 외무상은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 의지는 확고부동하다”면서도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면서 대신 종전선언 등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해 그간의 ‘조건부 비핵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외무상은 “우리는 핵·미사일 실험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 등 중대한 조치를 취했고,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에 대해 확약했다”면서도 “미국의 상응한 화답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선(先) 비핵화만을 주장한다”며 “(미국은 비핵화를) 강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제재 압박 도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원색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신뢰’라는 단어를 18차례 사용하며 북·미 협상의 진전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에 따라 이달 초로 예상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에서 북·미가 얼마나 평행선을 좁힐지가 관건이 됐다.
 
이용호, 신뢰 18차례 언급 … 폼페이오에 빈손 방북 말라 신호
 
북한은 이 외무상을 비롯해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 등 비핵화 협상의 대가를 얻어내기 위한 총력전을 벌였다. 이 외무상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일방적인 비핵화는 없다”고 주장했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제재와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며 “미국이 선택을 바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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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동시적 단계적 비핵화’라는 기존의 북한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땅이자 각국의 외교 대표들이 모인 뉴욕의 유엔 총회장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미국과 비공개 핵 담판을 앞두고 ‘상응한 화답’을 준비해 오라는 북한의 대미 통첩으로도 풀이된다. 특히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이미 만나 일합을 겨뤘던 이 외무상이 공개적으로 이른바 ‘일방적인 비핵화 거부’를 밝힌 것은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이 미국에 했던 물밑 요구는 ‘상응 조치’였음을 시사한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은 최근 ‘조건이 맞으면 비핵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는데 이번엔 ‘조건이 맞지 않으면 비핵화를 않겠다’고 수위를 높였다”며 “‘물이 반이나 남았다’와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전혀 다른 의미인 것처럼 북한은 북·미 2차 정상회담 분위기가 무르익자 부정적인 입장을 강조해 미국에 양보하라고 공을 넘겼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 외무상의 연설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빈손 방북’을 하지 말라는 공개 신호라는 얘기가 나온다. 선물을 들고 오지 않으면 평양에서 순탄한 협의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예고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일관되게 요구하는 건 두 가지 현안이다. 정치적으론 종전선언, 경제적으로는 대북제재 해제다. 전자는 북한으로선 체제보장의 출발점인 동시에 장기적으론 북한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한·미 군사동맹이 해체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후자는 북한이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로, ‘김정은 체제’가 과거보다는 먹고살 만하다는 점을 북한 내부에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돌파구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의 출발점이자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무통과지점’을 종전선언으로 삼고 있다”며 “이 지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속내는 폼페이오 방북 때 가지고 갈 보따리에 담길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CBS방송은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종전선언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종전선언 카드를 내비칠 가능성을 미국 언론이 보도한 만큼 북한으로선 폼페이오 방북을 놓고 기대감을 품을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외무상이 유엔 총회 연설을 했던 이날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열린 공화당원 대상 집회에서 “나는 (과거에) 거칠게 나갔고, 그(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며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는 나에게 아름다운 편지들을 썼다. 멋진 편지들이었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며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설 것임을 재확인한 발언들이다.
 
이날 태형철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겸 고등교육상은 뉴욕 맨해튼의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2018 글로벌 평화포럼(2018 Global Peace Forum on Korea·GPFK)’에 보낸 기조연설문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는 결코 우리 공화국(북한)의 일방적인 핵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나는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핵 위협 제거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상응해 우리 공화국이 보유한 핵과 관련해 미국의 우려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정용수 기자, 뉴욕=심재우 특파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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