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흰개미, 수컷 없는 사회 꾸린다...자연의 '가부장제 전복' 현상

"(암컷만 존재해) 완전한 무성 생식을 하는 흰개미 사회가 발견됐다. 유성 생식을 하는 곤충 사회에서 진화한 결과로 보인다. 고도로 발달한 동물사회를 유지하는데, 수컷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호주 엑스마우스에 위치한 케이프 레인지 국립공원의 흰개미집. 큰 것은 7m에 달하기도 한다. 시드니대 생명환경과학과 토시히사 야스히로 박사 연구진은 흰개미는 분업을 통해 고도로 발달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며, 특히 흰개미의 집은 인간의 폐가 호흡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공기를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Wikipedia]

호주 엑스마우스에 위치한 케이프 레인지 국립공원의 흰개미집. 큰 것은 7m에 달하기도 한다. 시드니대 생명환경과학과 토시히사 야스히로 박사 연구진은 흰개미는 분업을 통해 고도로 발달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며, 특히 흰개미의 집은 인간의 폐가 호흡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공기를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Wikipedia]

암컷만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흰개미 군집이 발견됐다. 호주 시드니대 생명환경과학과 토시히사 야스히로 박사 연구진이 일본 남부의 해안지방에서 흰개미 군집을 연구한 결과, 50%의 군집에서 암컷 개체만으로 구성된 흰개미 사회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 흰개미는 수컷의 정자 없이 '무성생식(asexual reproduction)을 통해 번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 결과는 2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비엠씨 바이올로지(BMC Biology)에 게재됐다. 
 
수컷 개체 '제로'...암컷만으로 무성생식ㆍ사회유지 
 
연구진은 일본 15개 지방에서 마른 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는 74개 흰개미 군집을 찾아내 연구했다. 그 결과, 절반에 해당하는 37개 군집이 암컷만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여왕흰개미는 생식기관에 정자를 저장하지 않고 수정되지 않은 상태의 알을 낳는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 시드니대 연구진 조사 결과, 일본 15개 지역 37개 군집에서 암컷만으로 구성된 무성생식 흰개미가 발견됐다. 무성생식 흰개미는 성장속도가 일반 흰개미에 비해 2배나 빠르고, 병정개미의 머리 크기도 비슷하다는 특징이 있다. 연구진은 이를 "적은 수로 효율적인 서식지 방어를 하는 무성생식 흰개미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제공=BMC Biology]

호주 시드니대 연구진 조사 결과, 일본 15개 지역 37개 군집에서 암컷만으로 구성된 무성생식 흰개미가 발견됐다. 무성생식 흰개미는 성장속도가 일반 흰개미에 비해 2배나 빠르고, 병정개미의 머리 크기도 비슷하다는 특징이 있다. 연구진은 이를 "적은 수로 효율적인 서식지 방어를 하는 무성생식 흰개미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제공=BMC Biology]

그간 흰개미는 생식에 관여하지 않는 일개미와 병정개미 등 역할도 암수가 공동으로 업무를 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개미 사회에서 일개미를 비롯한 비생식 계급이 모두 암컷인 것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또 여왕개미만 존재하는 일반 개미와 달리, 여왕과 왕이 모두 존재하고 평생 일부일처제를 이루는 것도 흰개미의 특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번 발견으로 흰개미처럼 고도로 발달한 군집을 이루고 있는 동물도 수컷 없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에 참여한 내던 로 시드니대 진화생물학과 교수는 "무성생식을 하는 흰개미는 유성생식을 하는 흰개미보다 염색체 하나 더 많다"며 "두 그룹이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중이다"고 분석했다.
 
흰개미집의 구조. A 고미다락, B 육아실, C 버섯재배방, D 여왕의 거처, E 지하실. [자료제공=Wikipedia]

흰개미집의 구조. A 고미다락, B 육아실, C 버섯재배방, D 여왕의 거처, E 지하실. [자료제공=Wikipedia]

수컷 없이 살아가도록 '전적응'...병원체 적은 환경 탓일 수도 
 
연구를 진행한 야스히로 박사는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유성생식을 하는 흰개미들도 가끔 수정되지 않은 알을 통해서 새끼를 부화시키곤 한다"며 "이는 수컷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전적응(pre-adaptation)'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전적응이란 생물이 현재 처해있는 환경과 다른 환경에 처하거나, 생활양식을 바꿀 필요가 생겼을 때 이미 변화에 적합한 형질을 갖고 있어 마치 자연스럽게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11년 12월,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문화유산 보전ㆍ복원을 기관 'Instituto di Patologia'에서 흰개미에 의해 손상된 고서가 공개됐다. 흰개미는 벽돌까지 먹어치우는 먹성으로 농사ㆍ주거 등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으로 알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11년 12월,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문화유산 보전ㆍ복원을 기관 'Instituto di Patologia'에서 흰개미에 의해 손상된 고서가 공개됐다. 흰개미는 벽돌까지 먹어치우는 먹성으로 농사ㆍ주거 등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으로 알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이들 흰개미가 육지와 멀리 떨어진 해안지역에 서식하고 있어, 기생충과 병원체와 싸울 일이 거의 없는 것도 수컷 없이 사회를 꾸리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유성생식을 통한 번식은 자연에서 거의 보편적인 현상인데 이는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돼 왔다"며 "유전자가 지속적으로 섞이면서 새로운 조합의 유전자를 만들어내고, 이런 유전적 다양성이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전자가 다양하지 않으면, 하나의 병원체로 인해 종족 전체가 사라질 수 있지만, 이들의 서식환경은 그럴 위험성이 적다는 것이 야스히로 박사의 설명이다.
 
성장속도 2배...서식지 방어도 효율적 
개미(왼쪽)와 흰개미. 일반개미는 비생식 계급이 암컷만으로 이뤄져 있는 반면, 흰개미는 암수가 공동으로 병정개미ㆍ일개미 등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사진제공=이정모]

개미(왼쪽)와 흰개미. 일반개미는 비생식 계급이 암컷만으로 이뤄져 있는 반면, 흰개미는 암수가 공동으로 병정개미ㆍ일개미 등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사진제공=이정모]

 
무성생식으로 태어난 흰개미는 유성생식을 통해 태어난 것과 비교해, 성장속도가 2배나 빠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회 전체에서 병정개미가 차지하는 숫자가 적고 침략자를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는 머리의 크기도 모두 비슷한 특징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스히로 박사는 무성생식 흰개미의 이런 특징이 방어하는 데 더욱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유전 분석 결과, 무성생식 흰개미들은 약 1400만년 전 '나카지마 흰개미(Glyptotermes nakajimai)'에서 분화했을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텍사스A&M대 곤충학 교수인 에드워드 바고 교수는 "특정 집단이 왜, 그리고 어떻게 무성생식을 하도록 진화해가는지 알면 '유성생식이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