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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천안까지 원정화장…턱없이 부족한 화장시설

2012년 1월 16일 문을 연 서울추모공원. 화장로 11기를 갖춘 서울추모공원은 준공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중앙포토]

2012년 1월 16일 문을 연 서울추모공원. 화장로 11기를 갖춘 서울추모공원은 준공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중앙포토]

지난달 아버지를 여읜 김모(57·서울 서초구)씨는 당시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상을 당한 직후 상조회사를 통해 화장장을 예약하려했지만 발인 날짜에 빈 화장로가 없었던 것이다. 김씨는 “집 근처에 있는 서울추모공원부터 벽제며 성남, 수원까지 알아봤지만 예약이 꽉 차 있었다”며 “충남에 있는 천안추모공원에 겨우 자리가 나 가까스로 3일장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민의 원정(遠征) 화장이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화장시설인 서울추모공원(서울 원지동)과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터·경기도 고양시)만으로는 서울시민의 화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이에 서울시민들은 최대 10배의 추가 비용을 물며 경기도·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 충청도·강원도까지 원정화장을 다니고 있다. 
 
서울서 천안까지 원정화장, 지난해만 300건 
사단법인 대한장례지도사협회가 지난 6월 충남에 위치한 천안추모공원 이용객의 거주지를 분석한 결과, 최근 서울 거주자의 이용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0년에는 10건에 불과했던 서울시민의 이용 횟수가 2016년에는 225건, 지난해는 280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5월까지만 226건이다.
 
구별로는 노원구(19건)와 구로구(16)에 이어 서초구(13)가 세 번째였다. 서초구에는 화장로 11기를 갖춘 서울추모공원이 자리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수요로 인한 시설 부족으로 서초구민마저 원정화장을 다니고 있단 얘기다.  
 
서초구에 거주하는 김씨도 “집 근처에 서울추모공원이 있어 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 그 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아예 못했다”며 황당해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도 연세가 많으신데, 아버지를 원정화장까지 해야 했던 아찔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며 “서울에 화장시설을 더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료: 보건복지부,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자료: 보건복지부,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이처럼 서울시민의 원정화장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급속한 고령화로 서울시의 노인인구가 급증한데 반해, 화장장을 포함한 장례시설은 확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올 3월 내놓은 ‘장사시설 수급 종합 계획안’에 따르면, 사망자의 약 40%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집중됐다. 특히 서울은 당장 2020년부터 화장시설 부족이 예상된다며 ‘우선 확충’ 지역으로 꼽았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서울시민의 화장률은 이미 90%에 육박하고 있는데, 화장시설은 화장률 50% 시대에 머물고 있다”면서 “윤년이 돌아오는 2020년에 화장 수요가 폭증하면 화장 대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박태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정책위원은 “이미 2015년 초반부터 상당수 서울시민이 시립 화장시설 예약에 어려움을 느껴 수원과 용인 등 경기도의 시설을 이용해왔다”면서 “서울의 원정화장 대란은 이미 시작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타 지역 시설 이용시 화장비용 최대 10배 
현행법상 화장시설은 지역민 편의시설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감독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대다수 화장장은 지역 주민 위주로 운영하고 타 지역 주민이 이용할 경우 비용을 높이고 이용 시간도 제한한다. 서울시민의 경우, 시가 운영하는 서울시립승화원이나 서울추모공원은 12만원에 이용할 수 있지만 경기도 용인이나 강원도·충남의 시설을 이용할 때는 70만원을 내야 한다. 경기도 성남·수원, 인천광역시 소재 화장시설에서는 100만원을 지불하게 돼 있다. 여기에 원거리 운구 비용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부담이 더욱 커진다.  
 
이처럼 화장시설 부족으로 시민들이 원정화장을 다니는 등 물리적·경제적 부담을 겪고 있음에도 당분간 시설이 확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박 연구위원은 "서초구 원지동에 서울추모공원의 경우, 주민 반대에 부닥쳐 완공까지 10년이 걸렸고 원래 20기로 예정됐던 화장로도 11기로 줄여야 했다"면서 "서울의 고령화 속도 등을 감안하면 2~3년 내에 서울추모공원 규모의 화장시설이 더 필요한데, 정작 시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대권을 염두에 둔 박원순 시장이 화장시설 확충 논의를 피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화장장은 대표적인 기피·혐오시설이라 부지 선정부터 지자체와 주민 간 갈등이 극심하다”면서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 시장이 굳이 이런 위험 부담을 떠안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보건복지부,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자료: 보건복지부,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서울연구원에서 제3 화장장 설립의 필요성을 담은 연구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박 시장 눈치 보느라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태호 연구위원은 "제3 화장장 건립은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해도 완공까지 빨라야 5년, 길면 10년 걸릴 일"이라며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이 정치적 판단이 아닌 행정적·실무적 차원에서 사명감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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