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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한다

발터 샤이델 교수

발터 샤이델 교수

2008년 금융위기가 불평등을 표면화했다. 불평등은 포퓰리즘 등장을 부추기고 있다. 위기와 포퓰리즘 사이에 불평등이란 연결 고리가 있는 셈이다. 어려운 숙제인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완화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발터 샤이델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경제사) 연구실에 전화를 걸었다.
 

『불평등의 역사』 쓴 미국 샤이델 교수
전쟁·혁명·전염병·국가붕괴 등
폭력적 사건에 의해 불평등 개선

일본, 2차대전 후 빈부격차 줄어
중세 흑사병, 유럽 분배구조 바꿔

세계화·금융위기가 더 악화시켜
AI시대 생산성 높아져 심해질 듯

샤이델 교수는 국내에선 『불평등의 역사』란 제목으로 번역된 『The Great Leveler』의 지은이다. 그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추상적인 정책 모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최고의 검증장치인 역사 속에서 불평등이 어떻게 완화됐는지를 분석했다.
 
책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웃으며) 그런가? 사실 좀 상식 파괴적이다. 선사시대에서 현재까지 역사를 돌이켜 보니 경제적 불평등은 ‘폭력적인 사건’에 의해 완화됐다고 했으니 충격적일 수 있다.”
 
폭력적인 사건이란 무엇인가.
“전쟁·혁명·국가의 붕괴·전염병 등이다. 내가 책에서 ‘네 기사(The Four Horsemen)’라고 한 사건이다. 신약성경 묵시록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네 기사는 모두 불행한 사건을 상징한다.”
 
먼저 전쟁이 불평등을 완화한 사례는 무엇인가.
“기자가 사는 한국과 가까운 이야기를 해보자. 일본은 2차대전 직전인 1938년 아주 불평등한 사회였다. 상위 1%가 국민소득 20% 정도를 차지했다. 그런데 2차대전이 끝난 45년엔 6.4%로 줄었다.”
 
 
한국은 2000년대 들어 불평등 심화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인들이 50년 한국전쟁 때문에 같은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했다는 주장과 비슷하게 들린다.
“내 귀엔 한국전 이야기가 근거가 있는 듯하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만해도 불평등 관리 측면에서 상당히 잘해온 나라였다. 최근 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는 하다.”
 
전염병이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구분하지 않고 공격해서 불평등이 완화됐을까.
“그런 측면도 있지만, 토지와 농기계 등 무생물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 경제 인프라는 그대로이지만 인구가 전염병 때문에 눈에 띄게 줄었다. 역사적인 사례가 바로 중세 흑사병이다. 유럽의 전체 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숨졌다. 1인당 농업 생산은 크게 늘었다. 농촌 인력이 줄자 영주나 지주가 소작료 등을 깎아줘야 했다. 불평등이 눈에 띄게 완화될 수 있었다.”
 
국가의 붕괴가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점도 선뜻 이해할 수 없다. 국가가 불평등을 완화하기도 했잖는가.
“역사적으로 국가가 형성되면서 공권력이 소수의 몇 사람에게 집중됐다. 계층 구조로 말하면 아주 날카로운 첨탑 구조다. 이런 정치적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했다.”
 
샤이델 교수의 말은 민주주의적 국가론과 정면으로 배치 되는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론을 지지하는 쪽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각종 복지혜택과 저렴한 교육 서비스 제공으로 중간 소득층을 두텁게 해 불평등을 완화한다고 믿는다.
 
평화적으로 불평등을 완화한 사례는 없었는가.
“아주 짧은 기간 몇몇 사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불평등 수준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막는 일과 불평등을 눈에 띄게 줄이는 일은 별개라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불평등이 악화하는 것을 그런대로 막은 나라가 바로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이다. 반면 불평등을 상당 정도 완화하려면 경제와 정치 구조 등을 바꿔야 한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두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주 큰 충격이 필요하다.”
 
그 충격이 바로 네 기사란 말인가.
“한 번 자리 잡은 경제나 정치, 사회 구조는 어지간하면 바뀌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 대한 충격이 크면 클수록 최상층 특권층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혁명이나 전쟁, 국가의 붕괴 등 폭력적 사건만이 역사적으로 눈에 띄게 불평등을 완화한 까닭이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완화했다고 말한다.
“수백 년 전 가난한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한 소비를 현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하고 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 듯하다. 불평등은 같은 시대 사람들 사이 빈부차이를 이르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옛날보다 덜 가난하게 하면서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드는 놀라운 장치다.”
 
샤이델 교수는 현대에 개발된 지니계수 등 불평등 지표를 바탕으로 선사시대 이후 불평등을 측정해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원전 5000년경에 만든 무덤 200여 곳에서 출토된 유물수를 바탕으로 평균치를 냈다. 이 평균치를 기준으로 개별 무덤의 유물 개수와 비교하여 무덤 주인의 경제적 서열을 계산해냈다.
 
불평등 악화와 완화 등을 바탕으로 ‘수퍼 사이클’을 그렸던데, 이 사이클에서 현재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2차대전으로 불평등이 완화됐다. 이후 상당 시간이 흘렀다. 현재 우리는 불평등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는 사이클의 초입에 서 있다. 불평등이 본격적으로 심해지는 시기란 얘기다.”
 
 
소득세·부동산세 강화 땐 불평등 줄어
 
이번 상승 사이클의 출발점은 언제였을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본격화한 1980년이다. 수퍼 사이클 상 최악의 불평등 시기는 19세기 후반이었다. 현재 유럽의 불평등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미국의 불평등은 그 정도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2008년 위기를 겪었다. 금융위기는 불평등을 개선하는가 아니면 악화시키는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직후 주가 하락 등으로 억만장자들의 자산 가치가 줄었다. 그렇지만 일시적이었다. 2~3년이 지난 뒤 자산 가치는 회복했고 이후 더욱 불어났다. 금융위기가 불평등을 악화시켰다고 봐야 한다. 다만 29년 대공황은 예외였다. 충격이 너무 컸을 뿐만 아니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가 각종 재분배 정책으로 불평등이 일시적으로 완화됐다. 하지만 30년대 후반 들어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악화시켰다면 인공지능(AI)은 어떨까.
“AI 시대의 또 다른 표현은 고도의 생산성 시대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생산성이 AI 때문에 현실화되는 셈이다. 자본주의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생산성 비약의 과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골고루 배분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더 많은 과실을 챙긴다.”
 
큰 충격 없이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여러 가지 처방을 동시에 썼을 때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주 높은 소득세와 부동산세, 강력한 노동조합 등이다. 이런 처방을 아주 지속적으로 실시했을 때에야 불평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
 
각국 정치 지형을 봤을 때 현실적으로 어려운 처방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현재 악화 사이클은 얼마나 이어질까.
“내가 역사학자이기 때문에 미래학자 영역인 예측은 버거운 일이다. 현재 악화 사이클은 길지 않을 전망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기사가 다시 등장한다는 말인가.
“역사가 반드시 미래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
 
발터 샤이델 교수
196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대학에서 고대사와 고대 화폐역사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미국 미시건대 등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다, 지금은 미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에 적을 두고 있다. 샤이델이 지난해 펴낸 『불평등의 역사』는 경제역사가들 사이에서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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