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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시장을 이긴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부동산에 관한 한 사실 나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부동산 담당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좋다는 강남에 집 한 채는커녕 전·월세 한 번 살아보지 못했다. 1990년 뛰는 집값이 무서워 직장 동료들과 강북에 연립 조합주택을 추진했는데, 크게 낭패를 봤다. 10년 고생 끝에 1억원 넘게 빚을 깔고 입주했다. 내 짧지만 긴 부동산 투자기는 그게 다였다. 아파트·강남이었어야 했는데, 연립·강북을 선택한 결과였다. 10년간 빚을 갚으면서 “다시는 부동산의 ‘부’자도 들여다보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다.
 
더 화나는 건 이럴 때 꼭 등장하는 친구 A다. 오십 대 후반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사람쯤 있는 그 친구, “난 부동산 아무것도 몰라. 남들 따라 그냥 강남, 아파트를 샀어. 그것뿐이야”라고 말하는 친구 A 말이다. 급기야 그 친구 A가 요즘 같은 때 “그러게 강남 집값을 정부가 왜 건드려. 강남은 본래 건드리면 더 오르는 거 아냐. 20년 전 3억원에 산 내 아파트가 30억원이 된 것도 그 덕분이잖아”라며 은근 자랑할 때면 울화통의 수위는 금세 조절 불가가 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친구 A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어야 진짜 부동산 정책이다. A는 투기꾼이 아니다. 집을 사는 곳이자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아 온 대한민국 장삼이사 중 하나다. 수많은 A가 모여 빚을 내서라도 돈 되는 아파트를 좇는 곳, 그게 현실의 시장이다. 이 정부는 그런 A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정부 출범 1년 반 만에 7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도 실패한 이유다. 따져 보자. 첫째, 진단이 틀렸다. 투기꾼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진범은 따로 있다. 수많은 A다. 엉뚱한 데서 범인을 찾으니 진범이 잡힐 리 없다. 둘째, 메시지 전달이 안 됐다. “살 집 아니면 파시라” 했지만, 청와대 핵심부터 강남 아파트를 꼭 껴안고 내놓지 않았다. 솔선수범도 없는데 그 말을 믿을 A들이 아니다. 셋째, 교만했다. 시장이 뒤틀려도 정책 수정은커녕 “일시적 부작용”이라며 밀어붙였다.
 
9·13 대책엔 반성의 흔적이 보인다. “대규모 공급은 없다”던 정부 입장이 30만 호 공급으로 바뀌었다. 그린벨트를 풀고, 용적률도 높여 강남 대체재를 짓겠다고 했다. 환경의 가치를 높이 치는 좌파 정부로선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셈이다. 나올 대책은 다 나왔다. 남은 건 디테일이다. 첫째, 미시적이고 세밀한 숫자가 필요하다. 공급의 총량도 중요하지만 강남 3구에 2년 뒤(또는 3년 뒤) 몇 채, 딱 이런 숫자가 나와야 한다. 둘째, 개인 다주택자에게 의존하는 임대주택 공급을 바꿔야 한다. 뉴스테이처럼 기업이 임대주택 시장에 뛰어들게 해야 한다. 그래야 매물이 묶이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셋째, 이념과 감정을 빼야 한다. 가진 자, 안 가진 자로 편 갈라 세금을 매기면 주택 정책이 아니라 주택 정치가 된다. 안 가진 자, 덜 가진 자의 부담이 더 커져 세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A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 점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택은 시장이 (정부를) 이길 수 없다”고 한 말은 유감이다. 여전히 투기꾼을 범인으로, 시장을 싸움의 대상으로 보는 듯해서다. 싸워 이긴들 얻는 게 도대체 뭔가. 80년대 초 부동산 광풍과 싸웠던 전직 국토교통부 장관은 “아무리 강한 대책도 복부인을 못 당했다. 되레 부작용만 커졌다”며 “나중엔 복부인과 맞서지 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뜨뜻미지근한 정책, 시장을 거스르지 않는 정책이 진짜 정책”이라고 했다. 장하성의 청와대가 새겨야 할 말이다. 나도 더는 A가 으스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정말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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