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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명령하고 밥 먹는 거대한 드라마의 함축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17)
밥 먹고 치우고, 밥 먹고 치우고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다. 일요일은 항상 그렇다. 늘 성냥개비 타는 속도로 지나간다. 내일 출근 생각하면 일찍 자두는 게 좋을 걸 알면서도, 손가락이 습관대로 컴퓨터를 켠다. 할 게 있어서는 아니다. 일요일을 조금이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 월요일에 발을 내디디고 싶지 않은 자의 소심한 투쟁이다.
 
알바도 구하기 힘든 취업난 시대에 사는 취준생들의 하루는 그야말로 '밥 벌고 공부하고'가 현실 아닐까. [중앙포토]

알바도 구하기 힘든 취업난 시대에 사는 취준생들의 하루는 그야말로 '밥 벌고 공부하고'가 현실 아닐까. [중앙포토]

 
포털 사이트를 이리저리 배회하며 ‘아, 출근하기 싫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시선이 한 기사 제목에 꽂힌다. ‘알바도 ‘빽’ 없으면 못 한다…대학가 편의점 경쟁률 10대1’ 이란 기사다. 어휴, 이게 웬 말이야 고작 알바 자리 하나 놓고 ‘빽’ 운운하다니….
 
어쨌거나 구직이 말도 못하게 힘든가 보다. 회사 가기 싫다는 배부른 소리가 절로 멈춰진다. 그나저나 대학가 편의점 알바가 정말 두 자릿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면 삶이 너무 가혹하다. 취준생들의 하루는 그야말로 ‘밥 먹고 치우고’가 아니라 ‘밥 벌고 공부하고’가 아닌가.
 
개인의 삶이 대부분 밥을 버는 데 쓰이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밥벌이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시간이 어째 점점 길어지는 것 같다. 문득 ‘인생은 물결 표시 하나’라고 쓴 시인이 떠오른다.
 
짧은 물결 표시 ~안에서
그가 긴 잠을 자고 있다
휘자諱字 옆에 새겨진 단단한 숫자
1933년 3월 18일~2010년 4월 22일
웃고 명령하고 밥을 먹던 거대한 육체가
물결 표시 위에서 잠깐 출렁거린다
-한정원, 「물결 표시」 부분.
 
묘비의 ‘~’에 함축된 ‘웃고 명령하고 밥 먹던 드라마’
시인은 부친의 묘소에 간 모양이다. 비석에 쓰인 탄생일과 사망일 사이의 물결에서 그녀는 한 남자의 인생을 본다. 삶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웃고 명령하고 밥을 먹던’ 거대한 드라마가 짧은 물결 표시 하나로 함축되고 말아버리니. 그 와중에 시인의 시선에 눈길이 간다. 아무리 현상을 언어로, 언어를 다시 현상으로 치환하는 게 시인의 일이라지만 글자가 아니라 고작 기호 하나에서 삶의 속도와 유한적인 것의 쓸쓸함을 포착해낸 시선이 시인이 가진 역량을 짐작게 한다.
 
시인은 밥이라는 시 위에 띄어쓰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밥이라는 게 그렇게 쉴 새 없이 벌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시인은 밥이라는 시 위에 띄어쓰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밥이라는 게 그렇게 쉴 새 없이 벌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시인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에 웃는 것과 명령하는 것, 그리고 밥 먹는 것을 많이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비석에 새겨진 물결에 담긴 주제어는 웃음, 명령, 밥일 터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 오면 그들의 물결은 어떤 것을 상징할까? 나는 그게 온통 밥일까 봐 무섭다. 왜, 이러한 시도 있지 않은가.
 
밥을먹는다 
어제도먹고그제도먹었던
밥을먹는다
아침에도먹고늦은저녁에도먹고
밥을먹는다
아무리더디먹어도
느림보시간은빨리지나가지않고
밥을먹는다우리는
거대한죽음이당도할때까지
그리하여밥없는명징한날들에이를때까지꾸역꾸역
내일도먹고모레도먹어야할

 
징그러운
-김창재, 「 전문
 
밥의 중요성만 강조되는 시대
지금은 취업자 상태지만 나도 기사 속의 청년들과 별다를 바 없는 세대다. 나는 종합대학에서 인문학이 붕괴되는 일을 목격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밥의 중요성만 강조되는 시대에 학생은 학교의 고객에 지나지 않고, 고객은 밥을 원했으므로 밥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공과목들을 폐강시키기 시작했다.
 
인문학적 사유를 의식적으로 밀어낸 우리 세대는 취업 후에도 여전히 인생이 가는 길을 모른다. 밥을 먹고 치우고, 밥을 먹고 치우다가 청년 시절이 끝이 난다. 선배들이라고 다른가. 부장들은 오늘도 밥을 벌면서, '은퇴 후에는 어떻게 밥을 벌지'라는 생각뿐이다. 참 눈물겨운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김창재 시인은 ‘밥’이라는 위의 시에 띄어쓰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밥이라는 게 그렇게 쉴 새 없이 벌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시인은 온몸으로 보여준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다니. 그것이 문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어느새 어긋나버린 이 삶의 태도를 어떻게 고치면 좋은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인문학이 도움될지도 모르겠다.
 
인문학(人文學)은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인(人)은 알겠다. 인은 평생 밥을 벌고 먹는 존재다. 그렇다면 문학은 무엇인가. 아는 것이 없어서 일단은 문학이라고 소개된 글들을 읽는다. 오늘 밤도 그렇게 나의 야식은 시(詩)가 된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jeonjun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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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