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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체험②]TA-50에서 신의 섭리를 거스르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스스로를 ‘신의 섭리에 역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서 벌이는 임무수행이 그만큼 고되다는 의미다. 생명을 담보로 한 채 실전 같은 훈련에서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건 10년 이상의 베테랑 조종사들도 매한가지라고 한다. 조종사를 선택받은 직업이라고 하는 데는 1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양성 비용도 그렇지만 이 같은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조종사들과 하루를 보내며 하늘을 날아봤다.  
TA-50 전투입문훈련기[중앙포토]

TA-50 전투입문훈련기[중앙포토]

 
“실제 조종사 교육과 같은 비행”
 
지난 5일 경북 예천 공군 제16전투비행단(16전비) 115전투비행대대(115대대). 전날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비행환경적응 교육훈련을 통과하니 전투기 탑승 자격이 주어져 이날 공군 파일럿의 상징 빨간 마후라를 두를 수 있었다. 훈련 전 과정을 함께 한 김원식 115대대 비행대장(소령)은 오전 브리핑에서 “실제 조종사 교육과 최대한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비행 계획을 짰다”고 말했다.
 
김원식(오른쪽) 16전비 115대대 비행대장이 기자에게 공군 상징인 빨간색 마후라를 둘러주고 있다.[사진 공군 제공]

김원식(오른쪽) 16전비 115대대 비행대장이 기자에게 공군 상징인 빨간색 마후라를 둘러주고 있다.[사진 공군 제공]

조종사 교육을 담당하는 115대대의 성격을 반영한 얘기였다. 탑승할 전투기는 TA-50으로 공군 주력 전투기인 KF-16를 재현해 2011년 만들어진 국산 훈련기다. 115대대는 TA-50을 바탕으로 전투기입문과정(LIFT·Lead-In Fighter Training)을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기초 비행훈련을 마친 조종사들이 전술입문을 하는 과정이다. 예비 조종사들은 이곳에서 모두 21주, 39번의 비행 훈련을 마친 뒤 FA-50, F-15K, KF-16 등 전투대대의 조종사가 된다.
 
훈련은 대규모 적 지상군의 남하 준비 상황을 포착해 병력집결지에 폭격한다는 가정에 따라 짜였다. 경북 영주, 충북 제천, 강원 평창과 오대산 등 태백산맥 상공을 돌며 전술요격과 대지공격 등을 진행하는 임무다. 2대가 동시 출격해 아군기와 적기로 역할 분담을 하는 식이다. 사전 브리핑 때 김 대장은 ‘8’자 모양으로 어지럽게 그려진 이들 전투기의 작전 경로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던 데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웠다. 그는 “해보면 안다”며 “도중에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면 훈련 수위를 낮추겠다”고 말했다.
 
꼼꼼한 사전 준비
 
오후12시30분쯤 격납고(이글루)로 향하기 전 지슈트(G-suit)와 낙하산 가방, 헬멧 등을 착용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G-suit를 입는 데 공을 들였다. 하체를 감싼 G-suit는 기체가 상승하거나 선회할 때 자동으로 부풀어 올라 피가 아래로 쏠려 의식을 잃는 ‘블랙아웃’ 상태를 방지해준다. 자신 몸무게 6배 이상의 압력이 6G라고 한다면 G-suit는 1G 정도를 경감해준다고 한다. G-suit가 느슨하면 중력가속도를 맨 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셈이다.
 
이글루에서 20분간의 기체 점검 후 2인승으로 이뤄진 TA-50의 후방석에 올라타 종아리부터 허리, 어깨 등 온몸에 안전벨트 6개를 둘렀다. 산소호흡기와 헬멧 안의 교신장치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고작 캐노피(조종석 뚜껑)가 닫혔을 뿐인데 이미 기진맥진이었다. 전투기가 대기지점까지 움직일 때가 돼서야 전방석의 김 대장과 후방석 계기가 눈에 들어왔다. 후방석에도 고도, 속도, 방위를 나타내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전방 화면은 물론 왼쪽에 스로틀(기체 추력 조정기), 오른쪽 조정간 스틱이 그대로 있었다. 김 대장은 “전방석과 후방석 스틱이 똑같이 움직인다”며 “다리로 스틱을 건들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했다.
 
국산 훈련기 TA-50 등에 설치된 헤드업디스플레이(HUD)

국산 훈련기 TA-50 등에 설치된 헤드업디스플레이(HUD)

1시44분 이륙허가를 받은 전투기는 공중에 뜨자마자 60~80도로 기운 채 왼쪽으로 선회했다. 계기판을 보니 순식간에 속력이 250노트(약 460km)에 달했고 고도는 1만 피트(3km)를 돌파하고 있었다. 이후 고도 1만5000피트와 2만 피트 사이에서 짧은 시간 순항을 하다 김 대장은 갑자기 “기동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기체를 90도로 기운 채 오른쪽으로 급히 꺾었다. 중력가속도가 6G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오른편을 보려고 했지만, 고개는커녕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전연습 격인 첫 번째 과제인 중력가속도 인지훈련이었다. 여기서 교훈은 선회하기 전 고개는 미리 꺾어 진행 방향으로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착륙 준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술요격과 전투기동을 시작했다. 적기로 설정된 윤상호 대위의 TA-50이 멀리서 점처럼 보이자 기체는 급선회한 뒤 쫓아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김 대장은 효과적인 요격과 기동을 위해 기체의 선회 각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했다. 최단 시간 작은 원을 그려야 기동력이 배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계기판의 중력가속도는 6.8G까지 올랐고 기체 속도는 1000km를 넘나들었다. 일반인들이 블랙아웃 증상을 겪는 6G 이상이 됐지만, G-suit 덕에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연속으로 선회를 6차례 정도 하다 보니 호흡이 힘들어지고 멀미가 났다.  
 
이후 기체는 대지공격의 표적인 강원 인제 방태산 자연휴양림 상공에서 레이더 영상으로 표적을 맞힌 뒤 가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 임무 수행 뒤 김 대장은 이때 조종간을 후방석으로 넘겼다. 좌우로 조금만 움직였는데도 기체는 사정없이 꺾였다. 김 대장은 “사실 수평 비행도 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 착륙함으로써 적에게 격추될 확률을 줄여야 하는 전투기는 입항도 평범하게 하지 않았다. 활주로에 최대한 근접한 뒤 급강하로 고도를 낮추면서 머리가 땅을 향하는 배면비행을 시도했다. 기체가 추락하는 느낌이 들어 절로 비명이 나왔다. 김 대장은 “머리가 하늘로 향한 상태에서 고도를 급히 낮추게 되면 중력가속도가 위로 가해진다”며 “시야가 빨개지면서 ‘레드아웃’이 오고 시신경에 손상이 갈 수 있다”고 했다.  
 
활주로 주변에 새떼가 있어 착륙이 지체되긴 했지만 2시40분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기지로 돌아왔다. 조종석에서 내릴 땐 온몸에 힘이 빠져 여전히 공중을 걷는 기분이었다. 공군 조종사들은 이런 훈련을 평상시 하루 2번 진행한다고 한다. 도심에서 가끔 들리던 전투기 굉음에는 인간의 한계와 사투를 벌이는 조종사들의 노고가 담겨있었다. 백은성 16전비 단장(준장)은 “전투기 조종사의 명예와 자부심을 갖고 어느 환경에서든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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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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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