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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감독 "하루만 촬영 오버해도 1억 손해 아찔했죠"

추석 극장가 흥행 1위에 오른 고구려 사극 액션 '안시성'. [사진 NEW]

추석 극장가 흥행 1위에 오른 고구려 사극 액션 '안시성'. [사진 NEW]

“조선 시대와 달리 대포가 없던 고대의 성은 적이 못 넘어오도록 막는 게 목적이었죠. 자연 둔덕에 30m 높이로 쌓아 올린 성은 직접 보면 정말 압도적이에요. 그에 맞는 사다리, 공병 무기를 쓰고 방어해낼 때의 높이감을 보여주면 재밌겠다 싶었죠. 한국영화에서 그런 공성전은 없었으니까요.”
추석 극장가 흥행 1위에 등극한 총제작비 220억 사극 액션 대작 ‘안시성’의 김광식(46) 감독 말이다. 국내 사극 영화 대다수가 조선 시대 배경인 것과 달리 고구려가 무대인 영화다. 645년 고구려 변방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조인성 분)이 당 태종(박성웅 분)의 20만 대군을 88일간 단 5000명 병사로 맞서 싸운 전투가 주된 골자. 고무적인 역사를 토대로 막대한 물량 공세를 쏟아부은 전쟁 스펙터클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19일 나란히 개봉한 ‘명당’ ‘협상’ 등을 제치고 개봉 일주일여 만에 300만 관객에 육박했다.
 
강원도 고성에 지은 180m 길이 안시성 세트, 당나라군이 이를 넘으려 만드는 공성탑‧토산 등 초대형 세트부터 압도적이다. 총 세트 제작 비용만 21억원. 공중에서 사방 70m 내 어디든 360도 촬영할 수 있는 ‘스카이워커’, 초고속 촬영이 가능한 ‘로봇암’, 달리는 말을 쫓아가며 찍는 ‘러시안암’ 등 첨단 특수 장비로 포착한 액션신은 전쟁터를 생중계하듯 생생한 몰입감을 준다.  
영화 '안시성' 개봉 전에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광식 감독. [사진 NEW]

영화 '안시성' 개봉 전에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광식 감독. [사진 NEW]

개봉에 앞서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광식 감독은 “예상 제작비가 400억원에 달했지만, 한국영화에선 그렇게 되면 수익을 못 맞춘다”면서 “남동근 촬영감독, 장재욱 무술감독이나 저나 대작 사극이 처음이라 뭐가 되고 안 되는지 재지 않고 뛰어들었다. 보조출연·장비대여 등으로 하루만 촬영이 오버돼도 전투신 기준 1억원 가까이 손해가 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잘 끝났지만, 무모함이 이 영화를 가능하게 했다”며 웃었다.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찌라시:위험한 소문’(2014) 등 중‧저예산 드라마 장르 영화를 주로 연출해온 그로선 처음 도전한 액션 대작이다. 그는 “예전부터 ‘아바타’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처럼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기회를 기다려왔다”고 했다.
 
5년 전 연출 제안을 받았다고.
“제작사인 영화사수작이 2013년 ‘더 맨’이란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당 태종과 그에 맞선 고구려 장군 연개소문(유오성 분), 양만춘 세 남자를 모두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는 영웅담이었다. 고민 끝에 양만춘에 대해 찾아보니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전국 성주를 모았을 때 부름에 응하지 않은 유일한 성주더라. 이런 사람이 연개소문의 도움 없이 당 태종과 맞서 싸웠다고? 매력이 딱 생겼다. 양만춘 위주의 설정이라면 연출하겠다고 하고서, 1년간 직접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영화가 나오기까지 3년 정도 걸렸다.”
주류에서 비켜난 아웃사이더란 측면에서 양만춘은 전작들의 주인공과 닮았다.
“그가 조직에 속하지 않는 외로운 늑대 같은 영웅이라 더 끌렸다. 원래 지금보다 좀 더 종교 사제 같은 사색적인 캐릭터였는데 비주얼적으로 젊은 사극을 만들고 싶어 조인성씨를 만났다. 만나보니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은 느낌이 있더라. 이 영화를 하고 싶지만 캐릭터가 맞는지 모르겠다기에, 그에게 받은 느낌으로 재해석해 지금의 양만춘을 만들었다.”  
안시성에 관한 사료가 거의 없다고. 사적 답사로 얻은 아이디어도 있나.
“중국 만주 요동 땅에 남아있는 영성자산성이 안시성으로 추정된다 해서 가보니 역사 기록과 다르더라. 『삼국사기』엔 안시성 산세가 험하고 공략이 어렵다고 돼 있는데, 그곳은 평야의 낮은 둔덕이라 당군한테 바로 점령될 것 같았다. 이 성을 갖고는 영화가 안 되겠다 싶어 고주몽이 처음 도읍을 정한 오녀산성, 그 아들 유리왕이 세운 환도산성도 가봤다. 오녀산성은 스코틀랜드처럼 높은 산에 바위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공격이 어려워 보였다. 환도산성은 『삼국사기』에 안시성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성벽이 요철이 있어서 적군이 잘못 갇히면 지옥이겠더라. 여기 오면 다 죽겠다 싶은 호전성이 느껴졌다. 두 성을 섞어 영화 속 안시성의 이미지를 정립했다.”  
영화 속 안시성 세트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이 세운 오녀산성, 그 아들 유리왕의 환도산성을 합쳐 구상했다. [사진 NEW]

영화 속 안시성 세트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이 세운 오녀산성, 그 아들 유리왕의 환도산성을 합쳐 구상했다. [사진 NEW]

다양한 전술은 어떻게 고증했나.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까지 동서양의 대부분의 공성전을 연구했다. 공성탑은 서양의 개념이다. 유대‧로마‧아랍세계에서 썼던 무기에 상상을 보탰다. 관건은, 양만춘이 당나라 2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을 설득해내야 했다. 전투분량이 적거나 시시하단 생각이 든다면 이 영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됐다.”
여전사 부대를 비롯한 캐릭터는 얼마나 역사에 기반을 뒀나.
“극 중 로맨스는 모두 허구지만, 백하부대를 이끄는 양만춘의 여동생 백하(김설현 분)는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이 모델이다. 그가 여성부대를 이끌었단 기록이 야사에 남아있다. 고구려 시대엔 남녀가 동등해 전투가 끝나면 남녀 군대가 같이 개울에서 목욕하기도 했다더라. 미래를 점치는 신녀(정은채 분)는 실제 고구려 요동성에서 적의 침략에 대비해 창과 방패를 지킬 아름다운 여성을 뽑았다는 얘기가 토대가 됐다. 양만춘의 부대는 칼‧창‧도끼 등 고구려 시대 사용된 무기에 맞춰 캐릭터를 창조했다.”
인물 간의 코믹한 호흡은 배우들이 만든 것이라고.
“시나리오가 스케치라면 색을 입혀주는 건 배우다. 처음엔 추수지(배성우 분) 역도 양만춘의 정신적 지주 같은, 나이든 백전노장에 가까웠다. 결국 죽어가며 양만춘의 성장을 완성하는 비극적 캐릭터였는데 배성우를 캐스팅하면서 바꿨다. 부하지만 동료고, 스승도 돼주는 역할로 코믹한 부분을 살려가기로 했다.”
여성 군단을 이끄는, 양만춘의 여동생 백하(김설현 분)는 야사에 전하는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이 모델이다. .[사진 NEW]

여성 군단을 이끄는, 양만춘의 여동생 백하(김설현 분)는 야사에 전하는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이 모델이다. .[사진 NEW]

 
제작진은 성벽에 설치되는 사다리, 기어오르는 당나라 병사들의 손이며 지하 폭파 신까지 곳곳에 고프로(초소형 액션카메라)를 설치했다. 움직이는 병사들 시점으로 전투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낸 건 정재욱 무술감독 아이디어. 남동근 촬영감독은 “대규모 공성전이 소재다 보니, 프리프로덕션 때 CG(컴퓨터그래픽)‧연출‧촬영‧무술팀이 다 모여 장면, 장면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첨단 촬영장비들은 그 자체로 시도였다. 격투신을 초고속으로 포착해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로봇암’은 매 장면 배우의 동작에 맞춰 촬영방향을 일일이 프로그래밍해 작동하는 방식. 배우와 로봇의 호흡이 일치할 수 있도록 촬영할 때마다 연습이 필수였다.
 
이런 변수 속에 촬영 회차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김광식 감독은 강조했다. 철저한 프리비주얼에 맞춰 대부분의 전투신을 촬영한 것은 물론, 시간 절약을 위해 촬영팀이 유닛으로 나눠 찍기도 했다. 그는 “제가 드라마를 찍고 한쪽에선 CG 소스, 다른 한쪽에선 무술팀이 칼싸움을 찍게 해 많게는 세 대의 모니터를 확인하며 촬영했다”며 “매일 어떻게 하면 오늘 촬영분을 다 소화할까, 소화 못 할 경우 무엇을 버릴까 고민했다”고 돌이켰다. 또 “국내 사극에선 흔히 경마에서 은퇴한 나이든 말들이 동원되다 보니, 개마무사의 질주를 더 박력 있게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영화의 무대인 만주지역을 놓고 최근 중국이 전개해온 동북공정에 대해선 “현지에 가서 고구려 유적을 물어보면 동네 사람들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고구려 백암성 인근에선 성벽 돌을 빼서 돌담까지 만들었다고 들었다”면서 “별로 자기네 문화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반면 “국내 영화계에선 살수대첩‧광개토대왕 영화가 기획되는 등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수 장비 '스카이워커'가 공중에서 전투신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NEW]

특수 장비 '스카이워커'가 공중에서 전투신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NEW]

문제는 고증이다. 고구려에 관한 사료가 워낙 적어서다. ‘안시성’만 해도 개봉 전 조인성이 개마무사 특유의 철 비늘 갑옷을 입지 않은 스틸컷이 공개되며 고증 논란이 있었다. 영화에 그려진 양만춘과 당 태종을 무찌른 전술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복기대 교수는 “양만춘은 조선이 만주지역을 포기할지 말지 역사논쟁이 벌어졌던 조선 중기, 만주파였던 연암 박지원 등에 의해 재조명된 인물”이라면서 “그가 당 태종에 어떻게 승리했는지는 아직 명확지 않지만 당시 전쟁기록을 입체화해보면 지금의 영성자산성이 안시성이 아니라고 거의 얘기할 수 있다. 적어도 김광식 감독이 다른 성들을 검토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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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