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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농가 난초 닦으며 보낸 근속휴가, 잊지못할 추억

기자
한익종 사진 한익종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근속 20년, 30년이면 개인이나 직장에서나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며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른다. 그 행사 중 하나가 근속휴가이다. 2006년, 20주년을 맞은 근속휴가. 무엇인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니 아내와 기념비적 여행을 할까? 아니면 그동안의 노고를 안식할 겸 집에서 푹 쉴까?
 
20주년을 맞은 근속휴가에 뭘 할까 고민하다 당시 강원도 영월 지방에 큰 홍수로 피해가 극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이틀 동안 난초 잎을 물로 닦아내는 봉사를 했는데 매년 여름 장마철이면 그 봉사가 생각난다. [중앙포토]

20주년을 맞은 근속휴가에 뭘 할까 고민하다 당시 강원도 영월 지방에 큰 홍수로 피해가 극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이틀 동안 난초 잎을 물로 닦아내는 봉사를 했는데 매년 여름 장마철이면 그 봉사가 생각난다. [중앙포토]

 
그때 강원도 지방에 큰 홍수가 났고, 특히 영월지방의 피해가 극심하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게 됐다. 영월 쪽 지인에게 기별을 넣어 혹시 봉사가 필요한 곳이 있는가, 나 혼자 2박 3일 봉사를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마침 강변에 위치한 난초 농원이 물에 잠겨 큰 피해가 났다며 난초 잎을 닦아내는 봉사가 필요하다는 전갈이 왔다.
 
부리나케 배낭을 꾸려 영월로 향했고 이틀 동안 난초 잎을 물로 닦아내는(난초 잎 사이에 토사가 끼면 다 썩는단다) 봉사를 했다. 매년 여름 장마철이면 영월지방에서 했던 그 봉사가 내게 뿌듯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난초 농원 부부의 난감해하면서도 무한한 감사를 담은 표정과 함께.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기념하며 기억하려 한다
세월을 쪼개고, 특별한 날을 정해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아마도 인간만이 하는 유일한 행위인 듯하다.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게 된 계기가 농경사회에의 정착이었고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 시간을 구분해 놓았을 것이다. 그 쪼개 놓은 시간에 농사와 관련된 날을 지정하고 기억, 기념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나 추론해 본다.
 
농사로 시작한 특별한 날의 지정은 인간사 모든 행위로 확대되면서 여러 기념일이 만들어졌고 이때면 서로 축하하고, 함께 나누며, 추억하는 행사를 치르게 됐을 것이 아닐까. 사람이면 누구나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날을 선정해 그를 기념하고, 축하받으며, 추억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생일, 결혼기념일, 새집 장만한 날, 처음 만난 날, 첫 직장 출근일, 퇴직한 날, 조상 기일 등
 
직장생활 당시 휠체어 장애인들과 함께 한 여의도 벚꽃길 걷기 봉사.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내게 가장 큰 추억거리는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한 봉사였다. [사진 한익종]

직장생활 당시 휠체어 장애인들과 함께 한 여의도 벚꽃길 걷기 봉사.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내게 가장 큰 추억거리는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한 봉사였다. [사진 한익종]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내게는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한 봉사의 기억이 큰 추억거리다. 폭풍우를 이겨내고 함께 한 시각장애인들과의 한라산 등반, 지독한 뱃멀미에 오히려 봉사를 받게 한 홍도·흑산도 배 여행, 휠체어장애인들과 함께한 걷기투어. 그 중, 근속 20주년 기념 휴가를 함께 한 영월 수해현장 나 홀로 봉사는 나 자신에게 큰 상을 주고픈 추억거리다.
 
혼자 보낸 특별한 날보다는 여럿이 함께 한 날이 기억된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라는 마사이족의 격언은 인간의 추억에서도 적용되는 금언인가 보다. 돌이켜보면 홀로 지냈던 추억거리보다 여럿이(혹은 아내와 둘이) 함께했던 일들이 더욱 기억에 생생하다.
 
봉사는 함께하는 일이다. 아무리 혼자 한다 해도 봉사는 대상이 있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더욱 고독해진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독을 즐기는 일도 행복한 삶일 수 있겠지만, 고독한 삶보다는 함께하는 삶이 낫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봉사는 여럿이 함께하는 삶이고 봉사로 함께하는 시간은 자칫 고독해지기 쉬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정신인 배려이다. 상대편에 대한 배려는 인간관계의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열쇠이다. 봉사는 역지사지의 산물이고, 역지사지는 함께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신뢰와 환영의 기본이다. 인생후반부 외로워질 시점에 봉사가 삶의 만족감과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줌은 당연한 귀결 아닐까?
 
봉사 후 현장을 떠나는 내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
직장생활 당시 시각장애인과 함께 한 속리산 등정 봉사활동. 사랑을 베푸는 봉사의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오래 추억하는 일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사진 한익종]

직장생활 당시 시각장애인과 함께 한 속리산 등정 봉사활동. 사랑을 베푸는 봉사의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오래 추억하는 일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사진 한익종]

 
이틀에 걸친 나의 난초 잎 씻기 봉사는 서울에서 온 단체봉사팀에게 인계하면서 끝을 맺었다. 배낭을 챙겨 폐허가 되다시피 한 수몰현장을 떠나는 데, 그 부부가 내게 보내준 감사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내 뒤를 이어받은 단체봉사팀의 한 분이 내게 건넨 한마디 ‘존경스럽습니다’란 말은 영원히 잊지 못할 영화 속의 한 장면이다. 
 
기억하고픈, 기억되는 추억거리는 많다. 그런데 그 많은 추억거리 중 받고 누린 것보다 베풀고 준 일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한 에리히 프롬의 말마따나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이 맞다.
 
봉사를 가리켜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을 베푸는 봉사의 순간이 가장 행복할 거고 가장 행복한 순간을 오래, 혹은 영원히 추억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봉사는 삶이라는 한 편의 영화에 잊지 못할 명장면을 하나 남기는 일이다. 회사근속 20년을 기념해 영월로 떠난 나 홀로의 봉사활동. 두고두고 미소 지어지는 멋진 추억거리다. 내가 봉사를 멋진 추억거리 만들기로 추천하는 이유이다.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immagic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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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