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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에 빠진 동생에게 “오늘은 좀 벌었냐?” 묻던 아버지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48)
요즘은 종이 딱지가 아닌 플라스틱 딱지가 아이들을 유혹한다. 작은 것은 500원, 금색의 큰 것은 3000원까지도 한단다. 6살 손자는 이 재산을 소중하게 지킨다. [사진 송미옥]

요즘은 종이 딱지가 아닌 플라스틱 딱지가 아이들을 유혹한다. 작은 것은 500원, 금색의 큰 것은 3000원까지도 한단다. 6살 손자는 이 재산을 소중하게 지킨다. [사진 송미옥]

 
지인의 집에 들렀더니 대청소하느라 집밖에 버리는 박스가 많이 나와 있다. 아이가 크고 해서 분위기도 바꿀 겸 아까운 것도 많이 내다 놓았다. 이것저것 뒤져 보다가 초등학생들이 쓰는 딱지 박스가 몇 개나 눈에 띄었다. “흐미….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원도 넘을낀데….” 중얼거리며 손자에게 갖다 줘야겠다 생각하고 눈독 들이고 있으려니 내 마음을 읽고 있는 지인이 먼저 말해준다.
 
“여사님, 고거 갖고 가서 손자 주려고 하지요? 하하하~ 이건 손자 눈높이에서 봐야 하는 재산이라서 할매 욕심으로 보면 쓰레기예요. 갖다 주지 마셔요. 짐이에요, 짐!” 그 소리에 내려놓고 왔지만 집에 와서 누웠는데도 그 딱지 박스가 눈에 어른거렸다.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은 두 남동생이 초등학교 시절 딱지와 구슬을 얼마나 따서 모았는지 좁은 집 구석구석 딱지 박스가 쌓여 있었다. 놀이터만 다녀오면 딱지와 구슬을 한가득 안고 들어오는 동생에게 엄마는 빗자루를 뒤집어 들고는 이놈의 자식 커서 뭐가 되려고 공부는 안 하고 지랄이냐며 마구 두들겨 팼지만 동생에겐 딱지가 보물 1호 재산이었다.
 
좀처럼 말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그나마 엄마와는 반대로 느긋이 말씀하셨는데 “무엇이든 최고 경지에 오르기만 하면 먹고 살길이 생기니 많이 따거라” 하시며 동생의 잡기를 부추겼다.
 
큰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빈둥빈둥 놀며 친구들과 화투놀이에 빠져 놀기만 했다. 엄마는 그때도 저 인간이 뭐가 되려고 타령을 하며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사셨지만 퇴근해서 집에 오신 아버지는 늘 같은 어투로 “오늘은 좀 벌었냐?” 하고 자상하고 흐뭇하게 물어보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버지가 아들이라고 편애하는 것 같아 서운했지만 여동생과 나는 말도 한마디 못했다.
 
아버지는 화투놀이에 빠진 큰 남동생에게 매일 같은 어투로 "오늘은 좀 벌었냐?"며 물으셨는데 어느 날은 돈을 딴 경위를 조곤조곤 물으시곤 "그만한 실력이면 어딜 가서도 굶지는 않겠다. 이제 집을 나서거라" 하셨다. [중앙포토]

아버지는 화투놀이에 빠진 큰 남동생에게 매일 같은 어투로 "오늘은 좀 벌었냐?"며 물으셨는데 어느 날은 돈을 딴 경위를 조곤조곤 물으시곤 "그만한 실력이면 어딜 가서도 굶지는 않겠다. 이제 집을 나서거라" 하셨다. [중앙포토]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쓰리고에 따따블에 뭐가 어쩌니저쩌니하며 돈을 엄청 많이 땄는지 흥분해서 퇴근한 아버지에게 자랑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버지가 돈을 딴 경위를 조곤조곤 물으셨다. 동생이 신나고 흥분하여 상황을 설명했는데 아버지가 심사숙고하게 생각하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만한 실력이면 어딜 가서도 굶지는 않겠다. 이제 집을 나서거라.”
 
그날 밤 우리 집은 초상 아닌 초상집으로 변해서 나는 아버지에게 동생을 용서해주십사 울며불며 빌었고, 아버지 사전에 농담이란 없다는 걸 아시는 엄마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보자기에 싸서 들려주며 야밤에 쫓겨난 동생을 위해 여기저기 친척들에게 울며 전화해 도움을 청했다. 그날 밤은 재우고 아침에 가게 해달라는 말은 아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딱 그럴 때 쓰는 말이었다. 불시에 전설 같은 퇴출을 당해 남동생의 거친 인생살이가 시작됐는데, 다행히 온갖 고생을 하며 자수성가한 친척이 공장장으로 계셨던 서울에 있는 큰 회사에 노동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동생은 그곳에서 험하고 험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우리 사 남매는 20대에 모두 그렇게 집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상한 재주 하나씩 있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신 부모님을 ‘왜? 왜? 우리 부모는 다른 부모랑 달리 사랑이 없으셨을까?’를 중년이 되도록 고뇌하며 보냈는데 이후 20년이 지나고부터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마음에 머물러 계신다. 가난한 그때 사랑이라는 측은지심으로 끌어안고 살았더라면 우린 지금 이렇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을까. 때로는 냉정한 사랑이 더 깊은 사랑이라 느낀다.
 
지난달 엄마 기일에 온 가족이 모였다. 내 환갑을 미리 축하한다며 케이크도 자르고 사 남매가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큰 남동생 내외, 나, 여동생, 막내 남동생 내외다. [사진 송미옥]

지난달 엄마 기일에 온 가족이 모였다. 내 환갑을 미리 축하한다며 케이크도 자르고 사 남매가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큰 남동생 내외, 나, 여동생, 막내 남동생 내외다. [사진 송미옥]

 
지금, 중년이 넘어선 동생들은 내로라하는 기업가로 잘살고 있다. 우리 형제가 모이면 그 슬프고 재미있는, 삶의 중심이 된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들춰본다.
 
동네에서 딱지 재산 1등을 자랑하던 둘째 남동생도 그 코스를 비슷하게 밟아서 지금은 잘살고 있고, 지난해엔 세금을 잘 내는 기업으로 표창을 받았다고 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형제들 모두 직장 다니며 장학금을 받고 적성에 맞는 좋은 대학을 나와 부모님에게 멋진 졸업장을 선물로 안겨 드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청년들에게 동생들은 공부보다는 잡기를 배우며 여행을 해보라고 권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은 길고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고 많은 세상인데, 공부는 내 적성을 알고 내게 맞는 과목을 즐거이 배워야 공부라고 제 부모들이 들으면 욕먹을 소리를 하곤 한다. 그러나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너무 오래 살아야 하는 세상이니까 그렇다.
 
손자의 딱지 사랑은 가히 전투적이다. 그러고 보니 지인이 말한 손자 눈높이에서의 딱지는 경쟁에서 이겨 당당하게 재산을 불리는 목적이지 그냥 얻은 종이가 아닌 것이다. 동심으로 자라는 어린이에게 종이 빌딩부터 사서 안기려는 졸부 할머니가 될 뻔했다. 그래 아가야, 재미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 보아라. 그 속에서 너의 재주가 나올 것이니….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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