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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10만 루블 줄 테니 같이 떠나자"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35> 브베: 보이지 않는 돈
구소련 영화 ‘백치’(1958) 중 로고진이 가져온 10만 루블을 받아드는 나스타샤

구소련 영화 ‘백치’(1958) 중 로고진이 가져온 10만 루블을 받아드는 나스타샤

도스토옙스키 부부는 죽은 아기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제네바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 브베(Vevey)로 이주했다. 혹시라도 유모차와 마주치면 아기 생각이 되살아날까봐 부부는 인적인 끊어진 길만 골라 다녔다. 주거지를 바꿨지만 상실감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부인은 날마다 딸을 생각하며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고 남편은 거대한 슬픔과 싸우며 『백치』집필에 몰두했다. “우리가 부부로 함께 산 14년을 통틀어 남편과 내가 스위스의 브베에서 보낸 1868년 여름만큼 슬픈 여름은 없었다.”  
 
러시아 미니시리즈 ‘백치’(2003) 10부작 중 ‘증권 뉴스’ 신문지에 10만 루블을 싸가지고 온 로고진

러시아 미니시리즈 ‘백치’(2003) 10부작 중 ‘증권 뉴스’ 신문지에 10만 루블을 싸가지고 온 로고진

제네바 중앙역을 출발한 기차는 1시간 만에 브베역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냥 지루했다. 유명인들의 휴양지답게 멀리 산기슭에는 호화 콘도가 도열해 있고 호숫가에는 요트가 정박해 있다. 길바닥에는 담배꽁초와 휴지가 널려있고 조명도 간판도 음악도 모두 시끄럽다. 관광철도 아닌데 지나치게 활기차다.  
 
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니 생플롱 거리와 상트르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겹창이 나 있는 소박한 건물이 나타났다. “1868년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이 집에 거주하며 집필했다”고 쓰인 현판이 붙어있다. 이국적인 카페와 숍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 500m 정도 걸어가니 호수가 보인다. 거대한 레만 호가 겨울바다처럼 황량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갈매기 떼가 그악스럽게 끼룩거린다. 호숫가에 서 있는 고골 기념비도, 찰리 채플린 동상도, 호수에 문자 그대로 ‘꽂혀 있는’ 네슬레 회사의 유명한 포크 조형물도, 어딘지 생뚱맞다.  
 
지인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자연 풍광에 철저하게 무관심했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는 인간 연구에만 매달렸다.” 레만호를 둘러싼 아름다운 산도 그에게는 불평의 대상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숨 쉬기도 어렵다.”“나는 대평원의 자식이다, 산은 나를 옥죄고 내 생각을 난쟁이로 만든다.” 질녀 소피야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여기 브베에는 서점이라고는 단 한 개밖에 없고, 러시아 신문도 없고, 화랑도 없고, 미술관도 없고, 영혼도 없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결국 그는 “스위스에서는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딸 잃은 슬픔 딛고 쓴 소설에서 보인 돈에 대한 통찰  
물론 그건 엄살이다. 그 슬픈 여름 그가 브베에서 쓴 『백치』는 당대 그 어떤 소설보다도 날카롭게 현실을 꿰뚫어본 걸작 중의 걸작이다. 러시아 신문 대신 유럽 신문을 읽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원거리에서 러시아를 진단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눈에 러시아는 바야흐로 ‘돈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돈주머니의 위력은 예전에도 누구나 이해하고 있었지만 오늘날 러시아에서처럼 돈주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취급된 적은 없었다.”
 
돈은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소설에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만, 특히『백치』에서는 그 존재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돈을 갈망하고, 돈으로 엮이고, 돈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돈의 막강한 힘 앞에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문제가 아니다. 부자와 빈자, 귀족과 평민, 자본가와 노동자, 노인과 청년의 구분도 무의미하다. 모든 사람, 모든 계층, 모든 사상이 금전적 정체성과 실존적 정체성의 갈림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딸을 잃은 제네바를 떠나 브베로 이주한 도스토옙스키 부부가 살던 집. 그는 소설『백치』를 쓰면서 슬픔을 견뎠다.

딸을 잃은 제네바를 떠나 브베로 이주한 도스토옙스키 부부가 살던 집. 그는 소설『백치』를 쓰면서 슬픔을 견뎠다.

알렉산드르 2세의 ‘대개혁’과 함께 도입된 경제개혁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변화를 제대로 읽어낸 이른바 ‘똑똑한’ 사람은 하루아침에 거부가 되고 우물쭈물하던 ‘멍청한’ 사람은 졸지에 거지로 전락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크림 전쟁에 이르는 일련의 전쟁, 국고 고갈, 농노제도의 폐단, 화폐가치 추락, 너무 큰 국토와 너무 추운 기후 등등, 역사적이고 구조적이고 지리적인 온갖 요인들 탓에 러시아 경제는 서구에 비해 대단히 낙후되어 있었다. 1862년 레이테른이 재무장관에 취임할 무렵 러시아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채무로 거의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했다.
  
러시아의 낙후 정도는 당시 경제의 지표인 철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860년대 초 영국의 철도가 1만5000km일 때 러시아는 1500km에 불과했다. 친서구파 레이테른이 재무장관에 취임한 이후 약 10년 동안에 1만5000km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원자재에 대한 수요는 석탄과 철강 산업을 부흥시켰다. 금융 및 조세 영역에 개혁이 도입되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외국 자본이 들어왔고, 규제가 완화되었으며, 정부 허가 없이도 합자회사 설립이 가능해졌다. 경제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는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허물었고 졸부와 파산자와 거지를 쏟아냈다.  
 
불구덩이 속에서 타지 않은 돈뭉치가 상징하는 것
모이세이 바인베르크가 작곡한 오페라 ‘백치’(2013)의 이르쿠츠크 공연(2015) 장면

모이세이 바인베르크가 작곡한 오페라 ‘백치’(2013)의 이르쿠츠크 공연(2015) 장면

『백치』에서 자본주의 시대 돈의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여주인공 나스타샤의 영명축일 장면이다. 상인의 아들 로고진이 파티에 나타나 나스타샤에게 “10만 루블을 줄 테니 같이 떠나자”고 제안하는 순간 파티장은 돌연 경매장이 된다. 나스타샤는 매물이 되고 로고진의 10만 루블은 토츠키가 제안한 7만 5000루블, 예판친이 밀회용 선물로 사놓은 수만 루블짜리 진주 목걸이와 더불어 입찰가가 된다. 나스타샤는 결국 가장 큰 액수를 내건 로고진의 손을 들어준다.  
 
나스타샤는 로고진과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이벤트’를 벌여 그동안 쌓이고 쌓인 울분을 터뜨린다. 그녀는 로고진이 가져온 현금 10만 루블을 일단 받은 다음 벽난로의 불구덩이 속에 처넣고 가냐를 향해 외친다. 욕심쟁이 가냐가 난로 속으로 들어가 맨손으로 돈을 끄집어내면 그 돈을 다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내 돈을 꺼내려고 기어들어가는 꼴을 보고 싶어!” 타오르는 불길, 종이 타는 냄새, 사람들의 비명소리, 나스타샤의 발작적인 웃음소리로 파티는 아수라장이 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로고진이 가져온 십만 루블은 뚜렷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커다란 종이 뭉치였다. 높이가 13cm, 길이가 16cm 쯤 되는 이것은 ‘증권 뉴스’라는 신문지로 포장되어 설탕 덩어리를 싸는 노끈으로 칭칭 동여 매어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지폐 뭉텅이가 불구덩이 속에서도 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돈을 싼 신문지는 완전히 다 타서 연기를 뿜고 있다. “그러나 돈뭉치는 신문지로 세 겹이나 싸여 있어서 돈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불구덩이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지폐야말로 돈의 ‘불멸’을 말해주는 섬뜩한 이미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쩌면 불타버린 신문지가 그보다 더 섬뜩한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돈을 포장한 신문지가 하필이면 1861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던 경제 전문 일간지 ‘증권 뉴스’라는 것은 허투루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지폐 뭉치가 로고진 부자가 속한 상인 세계를 상징한다면, ‘증권 뉴스’ 신문지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등에 업고 부상한 신흥 재벌, 즉 예판친의 세계를 상징한다.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돈 vs 보이지 않는 돈  
영화 ‘백치’(1958) 포스터

영화 ‘백치’(1958) 포스터

예판친 장군은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에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지만, 이른바 ‘똑똑한’ 사람이었다. 아내가 가져온 얼마 안 되는 지참금을 종자돈 삼아 투자에 성공했다. 거대한 건물에 살면서 일부는 세를 주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온전히 셋집으로만 사용하는 다른 주택도 한 채 있고 근교에는 토지와 공장도 있다. 과거에 무슨 독점판매에 관계했고 지금은 몇몇 주식회사에도 손을 대고 있다.  
 
로고진의 10만 루블은 불타지는 않지만 그 대신 쓸모가 없다. 교환도 소비도 불가능한 ‘죽은’ 돈이다. 로고진은 아버지한테 유산을 상속받자 신이 나서 떠든다. “난 돈이 많단 말이다. 너를 산채로 몽땅 사버리고 말 테다 그리고 당신들을 모두 사버리고 싶다! 모든 걸 사버릴 거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산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스타샤를 죽여서라도 소유하고자 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유형길에 오른다. 그 많은 재산은 고스란히 동생에게 넘어간다.  
 
예판친은 주요 인물이 아니므로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소설 속의 그 모든 비극적인 사건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은밀하게 승승장구한다. 그의 돈은 ‘보이지 않는 돈’이지만 끝없는 순환과 유통을 거듭하며 점점 더 불어난다. ‘증권 뉴스’ 신문지는 불타 없어져도 신문지에 담긴 자본의 세계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당대 어느 평론가는 『백치』를 읽고 “도스토옙스키는 돈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툭하면 수백만 루블 어쩌고 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당시 러시아 공장 노동자의 월급은 11루블이었고 관리의 월급은 17루블이었으며 방 하나짜리 셋집은 월세가 3 내지 6루블이었다. 1867년도 러시아 정부 예산은 415만 루블이었다. 
 
1870년부터 73년 사이에 259개의 새 회사가 문을 열었는데 이들 회사의 자본금 총액은 516만 루블이었다. 그런데 로고진이 일개 상인인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유산이 250만 루블이라는 것은 사실상 지나친 감이 있다.  
 
어쩌면 『백치』에 나오는 수백만 루블은 초현실적인 상징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돈’은 사실상 그 액수가 10만 루블이건 100만 루블이건 별 상관이 없다. ‘보이지 않는 돈’도 마찬가지다. 10만이건 100만이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를테면 ‘가상’의 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너무 강력해서 손익 개념도, 교환 개념도 모두 다 초월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가르치려’ 한 적이 없다. 그 대신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돈’과 ‘보이지 않는 돈’을 ‘보여주었다.’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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