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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연기, 테크닉 … 나를 띄운 삼박자

6년 만에 마린스키 본진 이끌고 금의환향, 발레리노 김기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발레단이 6년 만에 ‘돈키호테’로 내한한다. 7년 전 마린스키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한 김기민이 수석무용수가 되어 금의환향한다. 사진 Photographer Baki(박귀섭)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발레단이 6년 만에 ‘돈키호테’로 내한한다. 7년 전 마린스키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한 김기민이 수석무용수가 되어 금의환향한다. 사진 Photographer Baki(박귀섭)

11월 한국 발레계는 ‘세계 대전’을 치른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라 바야데르’(11월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데니스 로드킨을 초청했고, 국립발레단은 이탈리아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를 데려와 신작 ‘마타하리’(10월 31일~11월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를 선보인다. 러시아 발레의 또 한 축인 마린스키 발레단도 6년 만에 오케스트라까지 이끌고 본진이 내한해 ‘돈키호테’(11월 15~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원조 버전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가장 주목되는 건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노이자 마린스키 발레단의 보석이 되어 금의환향하는 김기민(26)의 무대다. 2011년 열아홉 나이에 순혈주의로 유명한 마린스키에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한 김기민은 2개월 만에 연수단원 신분으로 주역을 꿰차더니 2012년 솔리스트, 2015년 수석무용수로 고속 승급했다. 내친김에 2016년엔 발레계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까지 수상해 버렸다. 시간을 멈추고 중력을 거스르는 그만의 ‘그랑 주테(grand jet<00E9>)’처럼, 동양인으로서 세계 발레사에 길이 남을 공중도약을 한 셈이다. 과연 ‘김기민 그랑 주테’의 비밀은 뭘까. 
 
‘청년은 거침이 없었다’. 2012년 마린스키 입단 초기 ‘백조의 호수’로 내한했을 때 처음 만났던 김기민에 대한 기사의 첫 문장이다. 스무살 나이에 완성된 예술가로서의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그의 에너지에 ‘대성할 그릇’임을 확신했고, 예감은 적중했다. 6년 만에 마주 앉은 그는 그동안 정말 ‘거침없이’ 질주해 어느덧 마린스키 발레단의 간판스타로 성장해 있었다. 
 
풋풋한 소년의 외모에서 구릿빛으로 그을린 남자로 거듭난 것 외에 달라진 건 없었다. 6년 전 만남이 기억난다고 겸손하게 말했고, 런던 공연을 마치고 막 귀국한 터라 한숨도 못 잔데다 심한 감기로 연신 콜록거리는 최악의 컨디션이었음에도, 지친 기색은 없었다. 촬영을 위해 위험한 옥탑방 꼭대기에서 2시간 동안 수없이 도약하면서도 전혀 몸을 사리지 않았다. 
 
“런던에서 ‘백조의 호수’ 10회 공연 중 8회를 뛰었더니 감기에 걸렸어요. 3번째까지는 그래도 참을만 했는데 5번째부터 앞이 안 보이더니 6번째부턴 내가 누군가 여긴 어딘가 싶었죠. 다행히 실수는 없었지만 극한 체험이긴 했어요. 파트너가 2번 바뀌었는데, 3명 다 리허설을 공연 당일 딱 1번씩 밖에 못했거든요. 긴장이 많이 됐죠. 다행히 8번 다 기립박수가 나왔어요. 파트너와 군무진에게 고맙더군요. 공연이란 게 다 같이 잘해줘야 사는 거니까요.”  
 
2012년 내한공연 이후 6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김기민을 사진작가 박귀섭이 ‘황금발의 도약’이라는 컨셉트로 표현했다.

2012년 내한공연 이후 6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김기민을 사진작가 박귀섭이 ‘황금발의 도약’이라는 컨셉트로 표현했다.

사실 2012년 이후 한동안 국내 무대에서 김기민을 볼 수 없었다. 지난해 말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발레단과 함께 오랜만에 ‘백조의 호수’로 내한했고, 올초 유니버설 발레단의 ‘지젤’에 초청받은 것이 전부다. 이번 공연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본진을 이끌고 딱 6년만에 내한해 다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서는 것이라 의미가 남다를 터다.  
 
“저는 발레리나를 위해 춤을 춰요 내가 박수 받기보다 발레리나가 박수 받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테크닉도 무대에선 제가 할 수 있는 50%만 하죠 그 이상 하면 발레리나를 배려하지 않는 테크닉이 나오니까요”
 
“한국 관객들에게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드리는 게 제 목표기도 한데, 기회가 잘 없어서 많이 아쉬웠어요. 이번엔 제가 일하는 마린스키와 오게 됐고, 늘 하는 ‘백조’도 아닌 또 다른 재미난 작품으로 만나게 돼서 감사하죠. 국내 발레단 공연들도 충분히 좋은 게 많지만, 저 나름대로 우리 관객에게 선물해드리고 싶은 맘이 있거든요.”  
 
하지만 “6년간 개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신입단원에서 수석무용수가 됐는데 무슨 소릴까. “저로선 특별히 바뀐 건 없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석무용수가 되고 큰 상을 받았다고 제 춤이 달라진 게 아니거든요. 달라진 게 있다면 좀 더 책임감이 생겼다 해야될까요. 한국 뿐 아니라 어느 무대를 서더라도 책임감이 커진 것 같네요.”  
 
그의 말과 달리 6년 전과 지금 러시아에서 김기민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 최근 마린스키 공연을 현지 관람한 공연관계자들에 의하면, 기민과 파트너 빅토리아 테레시키나가 캐스팅된 공연은 늘 매진이라 티켓을 구하기 어렵고 사실상 티켓값도 가장 비싸진다고 한다. 특유의 동양적인 외모도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섹시한 매력으로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인 발레리노가 명실공히 러시아 고전발레단의 ‘간판’이 된 셈이다. 마린스키 ‘순혈주의’의 역사도 막을 내린 걸까.  
 
“저 이후로 외국인이 많아지긴 했네요. 제 입단 당시만 해도 3명이었는데 지금은 6~7명 되고, 이번에 일본인 발레리나가 입단 예정이라 동양인도 2명이 되죠. 하지만 아직 동양인이 많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동양인이 서양인과 경쟁할 때 똑같이 잘하면 안 뽑거든요. 월등히 잘해야지, 조금 더 잘하면 당연히 자기 사람을 쓰죠. 그게 우리가 이겨내야 할 숙제에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동양인이란 게 무기라 생각해요. 잘 사용만 하면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게 동양인 외모 아닌가요. 이 얼굴도 춤추잖아요.(웃음)”  
 
동양적 외모, 이제 핸디캡 아닌 매력 포인트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사실 김기민의 무대를 한 번만 보면, 한국인이 어떻게 고전발레의 본고장에서 ‘간판’이 됐는지 바로 답이 나온다. 통상 ‘수석무용수’들은 누구나 뛰어난 기량이 기본이고 저마다의 개성으로 승부하지만, 김기민의 테크닉은 ‘급’이 다르다. 같은 작품에서 같은 점프를 뛰어도 높이가 다르고, 속도가 다르고, 각도가 다르다. 그의 전매특허인 ‘시간을 멈추는 그랑 주떼’를 비롯해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움직임들은 마치 서커스 공연을 보는 듯 하다. 또래 발레리노들도 그의 점프가 연구대상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할 정도다. 서양 발레리노들처럼 튼실한 ‘말벅지’ 근육도 아닌 슬림한 라인이기에 더욱 신비롭다.  
 
김기민의 ‘그랑 주떼(공중도약)’는 시간을 멈추고 중력을 거스른다. ⓒ박귀섭

김기민의 ‘그랑 주떼(공중도약)’는 시간을 멈추고 중력을 거스른다. ⓒ박귀섭

“점프를 잘 뛰기 위해 꼭 타고난 근육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연습만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죠. 저는 연습보다 연구를 합니다. 똑같은 점프라도 많이 떠보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동작을 연구했죠. 중요한 건 힘줘서 떠보이게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않나요. 발레도 모든 동작에 힘을 빼는 게 가장 어려워요. 힘을 빼야 여유롭고, 내가 편해야 보는 사람도 편하기 때문에, 그런 면을 연구하죠.”  
 
그는 “사실 요즘은 높이 뛰어야겠다는 생각조차 안한다”고 했다. 테크닉은 흘러가는 부분이기에, 오히려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력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상반기 ‘지젤’ 공연 때 유니버설 발레단의 문훈숙 단장도 “그의 테크닉 보다 연기력이 놀랍다”고 감탄했었다.  
 
“발레는 포커스를 표현력에 맞춰야 해요. 작품을 할 때 테크닉보다 작품 해석이나 작곡가의 철학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래야 도움이 되요. 클래스 내내 선생님과 이야기만 한 적도 있고, 작품과 비슷한 느낌의 영화도 찾아보고 많이 느끼려고 하죠. 이 역할을 연기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빙의되려고 노력해요. 그러려면 발레만 하면 안되요. 많은 경험을 해봐야 많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심지어 그는 연기를 위해 본인이 가진 테크닉의 50%만 쓴다는 놀라운 얘기를 했다. 발레리노는 발레리나를 서포트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무대에서 저는 발레리나를 위해 춤을 춰요. 내가 박수 받기보다 발레리나가 박수 받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테크닉도 무대에선 제가 할 수 있는 50%만 하죠. 그 이상 하면 발레리나를 배려하지 않는 테크닉이 나오니까요. 점프를 더 뛰려면 하늘을 보면 더 쉬운데, 여자를 보며 뛰면 시선 때문에 더 어렵거든요. 근데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파트너들과 사이가 좋은 것 같기도 하네요.”  
 
“‘돈키호테’로 스페니쉬 레드같은 강렬함 보여줄 터”
마린스키 발레단 ‘돈키호테’ 공연 모습 Photo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마린스키 발레단 ‘돈키호테’ 공연 모습 Photo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지난해 ‘백조의 호수’ 내한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파트너로 동반하는 빅토리아 테레시키나와는 환상의 콤비다. 2012년 내한공연 당시 자신과 인지도를 비교할 수 없었던 파트너 올레샤 노비코바와 “아직 서먹한 사이”라던 기억이 또렷한데, 테레시키나와는 ‘절친’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테레시키나가 원래 해외공연을 싫어하는 걸 알거든요. 그래도 작년 한국공연 때 혹시나 하고 물어봤더니 ‘기민이 너라면 같이 갈게’라더군요. 정말 나를 각별히 생각해주는구나 싶어서 고마웠죠. 실제로 제일 친하구요. 그녀는 무대 뿐 아니라 밖에서도 카리스마 있고, 모든 걸 갖춘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특히 무대에서의 에너지는 ‘돈키호테’에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어요. 작년 ‘백조’ 때보다 ‘돈키호테’에서 더 아름다울 거예요.”  
 
마린스키 발레단 ‘돈키호테’ 공연 모습 Photo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마린스키 발레단 ‘돈키호테’ 공연 모습 Photo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고전발레 중 몇 안되는 희극발레 ‘돈키호테’는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한국에서도 여러 버전의 ‘돈키호테’가 꾸준히 공연되고 있지만 마린스키가 고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가치를 두는 발레단인 만큼 오리지널에 가장 가깝다. 그럼 ‘오리지널 돈키호테’의 관전포인트는 뭘까.  
 
“‘돈키호테’만이 가진 캐릭터댄스와 클래식발레의 구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마린스키죠. 1막에는 캐릭터댄스, 2막에는 클래식, 3막은 다시 캐릭터와 클래식이 섞이는데, 마린스키만의 캐릭터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백조’에서 순결했던 군무진들이 스페니쉬 레드처럼 강렬하게 유혹하는 자유로움을 가까이 느낄수 있죠. 그래서 클래식 장르인데도 누구나 재밌고 쉽게 즐기는 것 같아요. 제가 특히 아끼는 작품이기도 해요. 입단 오디션 작품이라, 제가 마린스키에 있게 한 이유가 된 발레니까요.”  
 
마린스키 발레단 ‘실비아’ 공연 모습 Photo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마린스키 발레단 ‘실비아’ 공연 모습 Photo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한편 11월 초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에 출연하는 볼쇼이의 데니스 로드킨은 그의 뒤를 이어 2017년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발레리노다. 좁은 한국 발레 시장에서 비슷한 시기의 공연이라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잘하는 무용수”라고 쿨하게 띄워준다. “볼쇼이와 마린스키를 많이 비교하죠. 볼쇼이는 좀 더 자유롭고 마린스키는 좀 더 안무가의 철학과 스타일을 중요시한다고들 하는데, 그렇다고 마린스키 무용수가 자유롭게 추지 않는 건 아니예요. 저는 자유도 철학도 둘 다 사랑해요. 두 발레단의 차이를 리스펙트하구요. 한 쪽에만 치우치기보다, 넓게 바라보고 골고루 씹어먹어야 좋은 예술가 아닌가요.”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Photographer Baki(박귀섭)·마린스키 발레단  분장 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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