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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방 40년 ‘기술 굴기’에 미국 제2 스푸트니크 쇼크

오영환의 외교노트
1978년은 중국 국가 전략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중국은 그해 8월 일본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했다. 72년 국교정상화 이래 6년 만이었다. 그새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76년 잇달아 사망했다. 문화대혁명 주동 세력인 4인방(幇)은 마오 사망 직후 체포됐다. 공산당은 화궈펑(華國鋒)의 단기 집권을 거쳐 덩샤오핑(鄧小平) 부총리한테 권력이 넘어갔다. 덩은 78년 10월 역사적 방일에 나섰다. 2000년이 넘는 중·일 교류사에서 중국 최고 실권자의 방일은 처음이었다. 덩의 표면적 방일 목적은 평화우호조약 비준서 교환식 참석이었다. 실질적으론 개혁개방 설계의 여정이었다. 일정은 8일이나 됐다. 덩은 일본 야당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일본에는 불로장생의 약이 있다고 듣고 있다. 방문 목적 중 하나는 그것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진시황의 사신 서복(徐福)이 불로장생약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고사를 빗대면서 “일본의 풍부한 경험을 찾으러 왔다”고 부연했다. 내외신 기자회견 내용은 더 솔직했다. “우리는 낙후한 국가이고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0세기 말까지 4대 현대화(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 건설에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1978년 덩샤오핑 “불로약 찾으러 일본 왔다”
 
중국의 기술 굴기가 거침없다. 1978년 10월 방일한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사진 앞줄 왼쪽)이 닛산자동차 자마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덩은 당시 8일간의 체류 기간 가전 공장·제철소도 들러 중국 개혁개방 구상의 밑그림을 그렸다. [지지통신]

중국의 기술 굴기가 거침없다. 1978년 10월 방일한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사진 앞줄 왼쪽)이 닛산자동차 자마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덩은 당시 8일간의 체류 기간 가전 공장·제철소도 들러 중국 개혁개방 구상의 밑그림을 그렸다. [지지통신]

덩은 산업 시찰도 했다. 닛산자동차 자마(座間) 공장에선 근로자 1명이 연간 평균 94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덩은 장춘(長春) 제일자동차 공장은 1년에 93대를 만든다고 소개하면서 “무엇이 현대화인지 알겠다”고 했다.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공장에선 컬러 TV와 팩스 기기, 전자레인지 생산 라인을 둘러봤다. 마쓰시타는 훗날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철강 공장은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기미쓰(君津)제철소를 들렀다. 이곳 철강 생산량은 중국 전체의 절반 규모였다. 기미쓰는 중국 현대식 제철소 바오산(寶山)의 모델이 됐다. 덩은 이곳에서 “만약 학생들(중국인)이 잘하지 못하면 선생님(일본인)이 잘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바오산은 80년대 중·일 협력의 상징이었다. 덩은 고속열차 신칸센을 타고선 “빠르다. 뒤에서 채찍으로 때리는 것처럼 빠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이번 방일로 근대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덩샤오핑이 중국을 통치하던 전성기에 중국의 공업과 기반 시설 건설에 일본만큼 많이 도와준 나라는 없었다”고 밝혔다(『덩샤오핑 평전』). 덩은 방일 두 달 후인 78년 12월 공산당 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했다. 계급투쟁의 계속 혁명 노선이 끝나고,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장정(長征)이 시작됐다. 외국 자본과 기술을 활용한 발전 전략이었다. 일본의 대중 경제협력은 중국 현대화에 한몫했다. 79년 이래 지금까지 일본 차관은 3조3165억 엔이었다. 79~95년 기간엔 국제사회의 대중국 차관 중 42%를 차지했다. 미국은 0.1%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40년. 올 4월 현재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4조925억 달러로 일본(5조1670억 달러)의 세 배에 가깝다. 2010년 중·일 GDP 역전 8년 만이다. 중국은 2030년쯤 미국도 따라잡을 것이란 예측이다. 제조업 발전은 눈부시다.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최신호에서 중국 개혁개방 40년에 걸쳐 이뤄진 중·일 제조업 역전을 분야별로 다뤘다. 가전·철강 역전은 오래다. 중국산 전기자동차(EV)는 세계 표준이 되고 있다. EV 전지 업체도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제조업을 넘어 정보기술(IT) 분야도 강자로 떠올랐다. 일본 외무성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사무차관은 지난 1월 취임식에서 “우리는 현재의 중국을 10년 전에 예측했었던가. 10년 후, 20년 후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 굴기(堀起)는 40년에 걸쳐 외국의 기술·인재·돈·정보를 집적한 결과다. 여기에 국가 자본과 압도적 시장 규모는 이노베이션의 모태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 “중국, 미국 번영 안보 위협”
 
40년 후인 올 4월 시진핑 국가주석(왼쪽)이 우한의 국영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면서 반도체 국산화를 강조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40년 후인 올 4월 시진핑 국가주석(왼쪽)이 우한의 국영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면서 반도체 국산화를 강조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에 제2의 ‘스푸트니크 쇼크’다. 57년 소련의 세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은 미국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냈다. 지금 미국 조야에서 중국 경계론은 거세다.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센터 소장이 대표적이다. 그의 2015년 저서 『백년의 마라톤』은 2049년 건국 100년을 맞아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패권 전략을 다뤘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다섯 가지 잘못된 가설 지적은 송곳 같다. ①중국 포용이 완벽한 협력을 가져올 것이다 ②중국이 민주주의의 길을 걸을 것이다 ③중국은 무너지기 쉬운 힘이다 ④중국은 미국처럼 되고 싶어 한다 ⑤중국의 강경파는 영향력이 미약하다가 그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목표는 “미국 주도의 경제, 지정학적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중국에 관한 판단에 대해선 “미국 역사상 가장 명백하고 위험한 정보 실패였다”고 비판했다. 이런 인식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 문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말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중국을 국가 주도 경제 모델의 수정주의 국가(revisionist power)로 규정했다. 올 1월의 국가방위전략 보고서는 “미국의 번영과 안보에 대한 핵심 도전은 수정주의 세력의 장기적, 전략적 경쟁의 재부상”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대중 무역 전쟁은 이런 기류와 맞물려 있다. 세 차례에 걸친 2500억 달러 규모 대중 수입품 제재 관세의 과녁은 중국의 하이테크 산업이다. 실제 부과 대상도 그랬다. 3년 전 나온 ‘중국 제조 2025’ 청사진을 정조준했다. 이 계획은 3단계에 걸친 산업 고도화 전략이다. 1단계(2015~25년) 글로벌 제조 강국 대열 진입, 2단계(2025~35년) 글로벌 중위권 제조 강국, 3단계(2035~49년) 혁신 선도 최상위 제조 강국을 내걸었다. 현재의 제조업 대국을 건국 100년까지 제조업 최강국으로 양질(量質) 전환을 하겠다는 산업판 중국몽이다. 구체적으론 정보화·공업화 융합 강화 등 9대 전략 목표와 10대 중점 산업 발전 분야를 제시했다. 차세대 정보통신기술, 로봇, 항공·우주, 하이테크 선박, 선진 궤도교통,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설비, 신소재, 바이오, 농기계 설비가 그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분야 자국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한다. 자국 진출 외국 기업엔 핵심기술 이전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문제 삼는 불공정 관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제조 2025’는 하이테크 산업을 장악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의 성장을 견인하겠지만, 미국과 다른 나라의 성장을 해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선전시의 개혁개방 서커우 박물관에 전시된 시진핑 연설문. ’개혁개방 40년 이래 우리들은... 새로운 길, 좋은 길을 열어갔고...위대한 도약을 이뤄냈다“고 돼 있다. [연합뉴스]

중국 선전시의 개혁개방 서커우 박물관에 전시된 시진핑 연설문. ’개혁개방 40년 이래 우리들은... 새로운 길, 좋은 길을 열어갔고...위대한 도약을 이뤄냈다“고 돼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대중 견제는 무역만이 아니다. 미 의회는 올 8월 외국 자본의 미국 기업 합병을 심사하는 외국투자위원회(CFIUS)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심사 대상은 소액 투자까지 확대됐다. 하이테크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다. 미 행정부·의회 움직임은 트럼프의 일국 중심주의를 넘어 차세대 기술 패권을 둘러싼 총력전 성격이 짙다.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 후 과학·기술 분야 집중 투자로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겼다. 지금은 대중 억제의 수성(守城)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술 패권은 군사 분야로 파급되기 마련이다. 산업이나 군사나 첨단·고도 기술에서 압도적 우위에 선 나라가 승자가 돼왔다. 여기에 국가 자본주의 중국은 군산(軍産) 간 경계가 더 모호하다.
 
중국은 취약점이 적잖다. 중국 굴지의 통신장비업체 ZTE(중싱통신)에 대한 미국 제재는 상징적이다. 미 상무부가 올 4월 이란과의 유착을 문제 삼아 미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면서 ZTE는 경영 위기에 빠졌다. 반도체 등 부품을 미 기업에 의존해온 ZTE의 스마트폰과 통신 장비 생산이 멈추면서다. 중국엔 ZTE 쇼크였다. “핵심 기술은 받을 수도, 살 수도 없다. 자신의 손안에 넣어야만 비로소 국가 경제와 안전이 보장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ZTE 사태 직후 3000명의 과학자 앞에서 핵심 기술의 자주화를 역설했다. 무역 전쟁도 중국엔 실탄이 적다. 미국의 연간 대중 수입품 규모는 약 5000억 달러이지만, 중국의 대미 수입품 규모(약 1500억 달러)는 3분의 1밖에 안 된다. 치킨 게임으로 가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하이테크 전쟁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미·중의 기술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꿈을 내건 시진핑도 배수진이다. 19세기 서구 열강에 무릎을 꿇은 치욕의 역사는 중국몽의 출발점이다. 압박에 대한 굴복은 시진핑의 정치적 입지를 흔들지 모른다.
 
 
산업혁명 흐름 놓치면 굴욕의 역사 되풀이
 
하이테크 패권을 둘러싼 미·중 충돌은 또 다른 냉전의 프롤로그다. 양국 간 일시적 타협이 있더라도 21세기의 지배권을 둘러싼 대립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과학기술의 대변혁 시대다. 새로운 조류는 산업 경쟁력, 국가와 기업 협력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반기업 친노조 정서, 성장보다 분배에 중점을 둔 정책으론 어림도 없다. 민과 관이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이다. 구한말 서세동점(西勢東漸·서양 세력이 동쪽으로 밀려온다), 산업혁명의 주류적 흐름을 읽지 못한 굴욕의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당시 주일 청국 참사관 황준헌이 조선을 두고 부엌에 불이 났는데도 처마에서 정답게 지저귀는 제비와 참새라고 한 비유를 곱씹어볼 때다.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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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