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5억 4000만년 전 캐나다 남서부의 환상 세계

진화는 직선으로 진행되는가
원더풀 라이프

원더풀 라이프

원더풀 라이프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궁리
 
먼저, 눈을 감고 상상해봅시다. 어떤 평화로운 풍경을 말입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5억 4000만년 전, 장소는 현재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로키산맥에 해당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영양물질이 풍부하고 따뜻한 햇볕이 잘 비쳐드는 어느 얕은 바다 밑에 불과했지요. 살기 좋은 환경 덕분에 그곳엔 온갖 생물 종들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시기는 ‘캄브리아기 폭발’이라는 놀라운 시대를 지난 바로 직후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고생대 초기인 캄브리아기에 들어서 가히 ‘폭발’이라 일컬을 만큼의 다양한 생물들이 한꺼번에 출현한,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을 일컫는데요. 이때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선조들이 나타났으며 바다에는 절지동물, 극피동물, 완족류, 삼엽충 등에 이르는 수많은 생물들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5억 4000만년 전의 해가 잘 드는 어느 얕은 바닷속에 얼마나 다종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을지는, 잠시만 생각해도 쉽게 상상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바닷속 급경사면에서 진흙이 무너져 내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수많은 연체동물들은 한꺼번에 흙 아래에 깔리고 말았으며, 부패하지 않은 채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 ‘버제스 혈암 동물군’ 화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1909년 찰스 두리틀 월콧에 의해 처음 발견된 버제스 혈암 화석들이 그 후 어떻게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논쟁의 중심에 선 끝에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주역이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한 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감동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이 진화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의 실체를 밝히고자 합니다.
 
5억 4000만 년 전에는 바다였던 캐나다 로키 산맥 지역에서 서식하다 진흙 사태 때문에 통째로 ‘버제스 혈암’ 안에 화석이 돼 갇혀버린 당시 해양생물들. 생명의 진화는 진보의 과정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사진 궁리]

5억 4000만 년 전에는 바다였던 캐나다 로키 산맥 지역에서 서식하다 진흙 사태 때문에 통째로 ‘버제스 혈암’ 안에 화석이 돼 갇혀버린 당시 해양생물들. 생명의 진화는 진보의 과정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사진 궁리]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미국인 고생물학자 알피우스하이엇에게 쓴 1872년 12월 4일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 숙고 끝에 저는 진보적인 발전을 향한 내적 경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다윈은 처음부터 진화가 하등한 것에서 고등한 것으로 또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해가는 진보의 과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로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진화를 일종의 진보로 간주해왔으며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완전성을 향한 하나의 긴 행진이자 사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가까운 예로 ‘스마트폰, 진화’ 이 두 가지의 키워드로 검색을 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살펴볼까요? ‘점점 진화하는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는가를 본다면, 아직까지도 ‘진화’에 대한 통념이 얼마나 강하게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에 대한 이런 그릇된 믿음이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에서 비롯됐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이 신의 오롯한 창조물이자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다윈 등에 의해 깨졌을 때, 사람들은 오래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그저 은하 변방에 있는 작은 행성이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인간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이런 식의 의문, 즉 존재 자체에 대한 의혹은 언제나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뒤흔들고 그를 불안에 휩싸이게 합니다. 그리고 스티븐 제이 굴드에 의하면, 인간은 그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행진’이라는 선형적 이미지의 진화 관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35억 년이라는 긴 생명의 시간은 최고로 진보한 존재인 인간의 출현을 위해 예비된 기간이나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지구의 역사는 결국 인간의 역사에 다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버제스 혈암 화석을 처음 발견한 월콧 역시 위와 같은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지구상엔 없는 기묘한 생물 화석들을 억지로라도 현존하는 동물문에 분류해 넣었으며, 그 후로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아무도 그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들어 캐나다 지질조사국이 앨버타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새로운 지질도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을 때까지 말입니다.
 
버제스 동물군의 복원도.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했다. 버제스는 로키산맥의 산 이름이다.

버제스 동물군의 복원도.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했다. 버제스는 로키산맥의 산 이름이다.

책의 가장 중심에 해당하는 3부는, 세 명의 고생물학자가 버제스 혈암에서 발견된 화석을 재탐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월콧의 기존 해석이 뒤집히고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진화의 새로운 개념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지를, 5막의 고전극 형식을 빌려 전개해나갑니다. 그리고 그 흥미진진하면서도 경이로운 드라마 속에서, 다섯 개의 눈이 달리고 머리 쪽엔 긴 돌출부를 가진 ‘오파비니아’나 너무나도 괴상하게 생겨서 ‘환상적’이란 뜻의 이름을 갖게 된 ‘할루키게니아’ 같은 생물들이 드디어 생명의 역사 속에서 제대로 된 자기 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생물 종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버제스 혈암 화석을 통해,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가 고등한 수준의 질서를 향한 필연적 추동이 아니라 방향성이나 정해진 목적이 없이 우연과 매 순간의 특정한 조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변화의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장 고등하고 높은 지능을 가진 존재로써 신 혹은 자연의 선택을 받아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우연과 불가능한 예측들 속에서 극히 적은 확률로 살아남은 놀라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거의 세밀화 수준에 가까운 아름다운 그림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생대 초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수많은 생물들의 신비로운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니까요. 특히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상 모든 척추동물의 선조로 알려졌던 피카이아 그라킬렌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5억 4000만 년 전에는 다른 연체동물에 비해 너무나 작고 약했던 그 척색동물이 이후 일어난 어떤 우연들에 의해 살아남아 척추동물의 선조가 되었고,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우리는 여기,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으니까요.
 
따라서 이 글의 마지막을 다윈의 『종의 기원』 에필로그에 나오는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그 역사적인 책의 맨 끝에 이렇게 간결하고 멋진 문장을 적었고, 이는 이 책 『원더풀 라이프』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김희선 소설가·약사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