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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베를린 한복판 유대인 추모비가 말하는 것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최근 출간된 신간 중 여섯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통합유럽연구회 지음
책과함께
 
박물관은 ‘기억의 공간’이다. 과거의 경험·기억이라는 날줄과 현대의 집단적이고 주관적 인식이라는 씨줄로 짠 직조물이다. 지역연구, 특히 통합 유럽을 다룰 때 ‘기억의 공간’인 박물관은 중요하다. 유럽은 흔히 ‘하나이면서 여럿’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국가·지역·도시·집단별 개성이 뚜렷한 유럽의 역사는 곧 전쟁사였다. 하지만 서로 이어진 공통의 기억과 인식이 있기에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지은이들은 이런 공간인 박물관을 통해 유럽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살펴본다.
 
여럿이면서 하나인 유럽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1967년 문을 연 베르됭 기념관과 88년 개관한 캉-노르망디 기념관이 있다. 각각 약 1000만 명과 5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양차 대전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살육 현장에 들어선 박물관들은 전쟁의 치열함과 역사의 비정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더 강력한 나라를 꿈꾸며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을 비난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프랑스 북동부 베르됭 기념관. 전시 초점이 전쟁을 기억하는 데서 유럽을 통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진 책과함께]

프랑스 북동부 베르됭 기념관. 전시 초점이 전쟁을 기억하는 데서 유럽을 통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진 책과함께]

놀라운 사실은 이 두 박물관이 21세기 들어 각각 개조를 거치면서 기억의 콘셉트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희생자를 기리고 독일 전범을 비난하며 연합군의 승리를 강조하는 것이 박물관의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재단장 뒤엔 ‘지속적인 평화를 누리려면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내용으로 메시지가 바뀌었다. 대신 독일인들이 패전국 국민으로서 겪었던 고충과 피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았다.
 
전후 유럽의 평화·번영·통합에 기여한 독일의 노력과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 반영했다. 2006년 독일·프랑스 공동교과서 집필과 고교 교과서 채택이 미친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독일 당국의 진정성 있는 탈나치화 정책과 2세 교육이 유럽의 집단 기억과 인식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비난의 대상은 과거 속 나치이지 현대를 사는 독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셈이다.  
 
베를린 도심, 수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에는 독일의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는 2711개의 콘크리트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다. 독일인들이 거대한 추모시설을 유대인 박해 공간인 수용소 자리가 아니라 수도 한복판에 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벌였던 서구 문명의 파국과 단절의 역사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중심지에 형상화함으로써 과거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침묵의 웅변이 이뤄지는 기억의 공간이다. 그 근처에는 2010년에 문을 연 사료전시관인 ‘테러의 지형도’가 자리 잡고 있다. 게슈타포(비밀경찰), 돌격대와 친위대 등 나치가 테러와 고문, 살해를 실행했던 기관이 자리 잡았던 공간이다.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포의 기억을 공간에 아로새긴 셈이다. 민주주의 파괴와 새로운 폭력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는 독일인의 의지와 신념이 엿보인다. 이렇게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했기에 오늘날 독일이 정상국가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독일이 통합 유럽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나라로 자리 잡은 지금까지도 이런 노력을 절대 멈추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과거 전쟁의 기억이 현재의 인식과 행동을 여전히 규율하는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가 주목해야 할 유럽의 사례들이다. 남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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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