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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 위해 '호텔 내 전면 금연' 규칙 어긴 사연

호텔리어J의 호텔에서 생긴 일 : VIP와 호텔① 국빈
몇 해 전 일이다. 해외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현지 호텔에 “변기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는 일화가 공개된 적이 있었다. 사회 곳곳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호텔리어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영 터무니없는 건 아니잖아.” “우리도 비슷한 경우는 많잖아.” 
 
이른바 VIP가 방문할 경우 호텔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곤 한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줄거리는 비슷하다. 죽도록 고생한 끝에 찾아오는 감동의 결말(물론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제 여러분이 특급호텔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누구도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하는 VIP의 호텔 방문기다. 에피소드가 넘쳐 2회로 나눠 소개한다. 첫 순서는 세기의 이벤트와 국빈 이야기다.
 
인류 대표 위해 규칙 어기고 흡연실 설치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간 대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열렸다. 호텔 측은 인류 대표를 위해 규정을 깨고 흡연실을 마련했다. 사진은 마지막 대국 직후 열린 기자회견 모습. [중앙포토]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간 대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열렸다. 호텔 측은 인류 대표를 위해 규정을 깨고 흡연실을 마련했다. 사진은 마지막 대국 직후 열린 기자회견 모습. [중앙포토]

2016년 3월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이 펼쳐졌다. 구글에서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계 최고의 고수 이세돌의 승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행사가 열린 포시즌스 서울 호텔은 초비상 상태였다. 개장한 지 6개월도 안 된 호텔로서는 호텔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문제는 상대 선수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영국 런던의 슈퍼 컴퓨터가 호텔 6층 대국장에 있는 것처럼 동시간으로 연결돼 있어야 했다. 포시즌스 호텔은 SK·KT·LG 등 국내의 모든 통신업체를 동원해 인터넷 라인을 겹겹으로 설치했다(기술적인 부분은 구글 측이 비밀 유지를 요청해 더 이상은 밝히지 못한다). 아무튼 당시 포시즌스 호텔 직원들은 한동안 각종 통신용어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이세돌 9단은 대국이 열린 1주일 동안 호텔에 투숙했다. 호텔 측은 내내 가슴을 졸였다. 이 9단이 거의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9단은 주로 한식을 주문했는데, 대부분 많이 남겼다. 이 9단이 큰 대국 사이에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호텔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이세돌 9단을 위해, 아니 기계에 맞선 인간을 위해 호텔은 스스로 규칙을 위반하기도 했다. 호텔 내부는 전면 금연이지만, 이 9단을 위한 흡연실을 가든 테라스에 마련했다. 객실에서 가든 테라스가 보이기 때문에 수많은 고객이 이 9단의 흡연 장면을 목격했다. 그러나 누구도 컴플레인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응원을 보냈다(몇몇 바둑 팬은 상대가 인간이 아니니 이 9단이 대국장에서 흡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텔 측에 항의하기도 했다).
 
구글 임직원은 최대한 행동을 조심했다. 대국 전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렸했고, 승리한 뒤에는 한국인 또는 인류의 반감을 우려해 처신을 조심했다. 알파고가 첫 승을 올린 밤, 구글 임직원은 호텔 바에 조용히 모여 축하 파티를 열었다. 구글 직원들은 전혀 티를 내지 않았으나, 하나같이 후드 티에 수염을 기르고 다녀 되레 쉽게 눈에 띄었다.
 
세계적 CEO “아는 척 마시오!”
구글 사례가 나온 김에 기업 얘기를 곁들인다. 구글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임원은 대체로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스위트룸도 아닌 일반 객실에 머물다 간 CEO도 많다. 캐주얼한 복장에 가리는 음식도 딱히 없다. 다만 “나를 아는 척하지 말라”고 요청한 CEO들이 있었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세계적 명사가 특히 그랬다. 한 호텔 직원이 그를 알아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가 컴플레인을 받은 적도 있다. 
 
일반 기업의 총수나 고위 임원은 호텔 객실을 사무실처럼 이용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요구사항이 매우 구체적이다. 예컨대 TV를 켜면 무슨 채널이 바로 나와야 하고, 객실에 프린터가 설치되어야 하는데 프린터는 1분에 몇 장 이상 출력 되는 성능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보통 VIP가 투숙하기 전에 비서실에서 숫자가 빼곡한 요청서를 보내온다.  
 
미국은 그랜드하얏트, 중국은 신라
미국 대통령은 방한하면 주로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머무른다. 경호 이유 때문이다. 행사도 호텔 안에서 열릴 때가 많다. 사진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국내 재계 총수들과 간담회를 하는 장면.[중앙포토]

미국 대통령은 방한하면 주로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머무른다. 경호 이유 때문이다. 행사도 호텔 안에서 열릴 때가 많다. 사진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국내 재계 총수들과 간담회를 하는 장면.[중앙포토]

호텔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국빈이 방문할 때다. 국빈은 홀로 오지 않는다. 떼를 지어 온다. 많으면 100명이 넘을 때도 있다. 국빈이 방문하면 경호가 최우선이 된다. 국빈이 묵는 호텔 자체가 비밀로 부쳐진다. 
 
대외적으로는 비밀이 원칙이지만, 현장에선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국빈이 방문하기 전날부터 경호 인력이 호텔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연회장은 물론이고 로비 입구에도 보안 검색대가 설치된다.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 리허설도 여러 번 치른다. 제 집처럼 호텔을 드나드는 호텔리어도 피곤한 경호 절차를 다 거쳐야 한다. 국빈이 방문하면 호텔 공기는 삼엄하다 못해 살벌해진다. 
 
호텔리어 입장에서 국빈은 경비 문제만 해결되면 사실 까다로운 고객이 아니다. 국빈이 맨 처음 입장할 때 직원 전원이 도열해 레드 카펫 위의 국빈을 환영하는 행사를 치르는 게 이벤트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옆에서 지켜본 국빈은 자신이 한 나라의 대표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강대국의 대통령일수록 행동 하나하나에서 배려와 여유가 넘쳤다. 솔직히 음식도 크게 어렵지 않다. 만찬이 대부분이어서 메뉴가 일정한 편이다. 일부 국가의 대통령은 아예 셰프를 대동하고 다닌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특급호텔이 있다. 미국 대통령은 그랜드하얏트 서울, 중국 주석은 서울신라호텔에서 주로 묵는다. 그랜드하얏트 서울을 이용한 미국 대통령은 4명이나 된다. 1998년 빌 클린턴, 2008년 조지 부시, 2009년과 2014년 버락 오바마, 지난해 방한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묵었다. 첫째 이유는 경비가 용이해서이다. 남산 자락의 그랜드하얏트 서울 주변에는 고층 건물이 없다. 미국의 체인 호텔인데다 용산 미군기지가 가까운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중국의 수석과 총리 대부분이 서울신라호텔을 애용한 이유는 삼성 그룹 차원의 노력 때문이라는 것이 호텔 업계의 대체적인 평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롯데호텔에서 묵은 것도 롯데 그룹이 러시아와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온 덕분이라고 한다. 2013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동상 제막식에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기도 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조깅 즐긴 오바마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호텔리어가 가장 사랑하는 국빈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방한기간 내내 세계의 지도자다운 매너를 잃지 않았다. 2009년 그랜드하얏트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일화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대통령이어서 객실에 러닝 머신을 설치했다. 그런데 오바마는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 내려가서 운동을 했다. 호텔도 놀랐고 고객도 놀랐지만, 오바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스스럼없이 운동을 했다. 고객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물론 경호팀은 진땀을 뺐다.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의 프레지던트 버거. 2005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내놓은 버거다. [사진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의 프레지던트 버거. 2005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내놓은 버거다. [사진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덕분에 개발된 메뉴도 있다.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의 ‘프레지던트 버거’다. 2005년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렸을 때 부시가 호텔에서 주문한 메뉴가 버거였다. 호텔은 특제 버거를 만들어 한동안 ‘부시 버거’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 다이닝 펍 오킴스의 대표 메뉴가 탄생한 배경이다.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중동의 로열 패밀리가 방문하면 호텔은 여러모로 바빠진다. 특히 식음 부문이 정신이 없다. 이슬람 율법을 따른 ‘할랄 음식’의 기준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중동의 VIP는 셰프를 동반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슬람 수행 셰프에게는 기꺼이 주방을 열어준다. 중동의 VIP가 호텔 외부 음식점을 방문한다면 해당 레스토랑에 금지 재료 목록을 보내는 등의 준비도 호텔이 해야 한다.
 
의외의 복병은 세탁이다. 중동 남자의 전통 의상이 순백색인데다 치렁치렁해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데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다. 중동의 VIP 고객이 한꺼번에 여러 명 투숙한다면 호텔 세탁실은 비상 근무체제에 돌입한다. (‘VIP와 호텔’ 다음 편은 ‘스타’)
 
호텔리어J talktohotelierJ@gmail.com      
특급호텔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호텔리어. 호텔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일화를 쏠쏠한 정보와 함께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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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