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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논설위원이 간다]옛집과 골목이 ‘책의 숲’ 안으로…마을이 된 도서관

[김종윤 논설위원이 간다] 생활 SOC 모델 ‘도서관 마을’
  
서울 은평구 구산동 골목에는 작은 단독주택,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누구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어떤 이에게는 추억의 삽화 전시장 같았던 곳. 여기에 누구는 도서관이라 하고, 어떤 이는 마을이라고 부르는 건물이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고유명사라 붙여쓰기를 한다). 
구산동 도서관마을의 '마을 광장'. 동네 주택 세 채를 도서관 안으로 넣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아이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골목과 동네 어귀 손때 묻은 옛집의 추억이 도서관의 풍경으로 되살아났다. 정면의 갈색 내벽이 예전 다세대 주택의 외벽이다. 김상선 기자

구산동 도서관마을의 '마을 광장'. 동네 주택 세 채를 도서관 안으로 넣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아이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골목과 동네 어귀 손때 묻은 옛집의 추억이 도서관의 풍경으로 되살아났다. 정면의 갈색 내벽이 예전 다세대 주택의 외벽이다. 김상선 기자

 
구립 도서관이 주택가 옛 골목에 들어선 게 놀랄 일은 아니다. 궁금한 건 이름이다. 왜 ‘도서관마을’일까.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 추억을 써내려갔던 8채 집이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지독했던 여름이 가고, 부드러운 가을 햇볕이 조심조심 세상과 눈인사하던 9월 초. 구산동 골목에서 만난 도서관마을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준비가 돼 있었다. 마을이 된 도서관에서는 수많은 사랑방 정담이 오갔고 지금도 오가는 중이다. 
 
이 중에서 두 가지 보따리가 특히 귀에 들어온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만든 도서관마을, 그리고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의 모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대한민국 국민생활 SOC 현장방문, 동네건축 현장을 가다' 행사를 위해 도서관마을을 찾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대한민국 국민생활 SOC 현장방문, 동네건축 현장을 가다' 행사를 위해 도서관마을을 찾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빛 바랜 수채화 속의 옛 친구처럼 골목길 풍경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 도서관마을은 주민 공동체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동시에 도서관마을은 새로운 공공투자의 길을 제시한다.
 
 2006년 5월 꿈나무어린이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은 주민 서명을 받아 구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도서관을 만들자.' 이미 주민센터 귀퉁이를 빌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던 엄마들은 늘 붐비는 자그마한 도서관이 안타까웠다. 지역에 도서관이 없다 보니 많은 아이들이 찾아오는데 챙겨 줄 수가 없었다. 손을 걷어붙였다. 
 
신남희 도서관마을 관장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지가 도서관 마을의 뿌리”라고 말했다. 2008년 은평구가 움직였다. 구는 다세대 주택과 단독주택 등 8채를 살 예산을 배정했다. 건축비가 다음 난관이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양 옆으로 펼쳐진 서가. 가운데 열람실이 과거에는 골목길이었다. 김상선 기자

양 옆으로 펼쳐진 서가. 가운데 열람실이 과거에는 골목길이었다. 김상선 기자

 
2012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가 도입됐다. 문을 두드렸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도서관마을이 예산지원 사업으로 선정됐다. 국비 포함 65억원을 확보했다.  
 
문제는 설계였다. 오래된 골목이라 공간이 좁았다. 예산도 충분하지 않았다. 디자인그룹 오즈건축사사무소가 일을 맡았다. 해법을 찾았다. 옛 마을과 골목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기존 주택 중 세 채를 남겼다. 커튼월 공법으로 세 채를 감싸고 아연판 마감 건물을 덧댔다. 집 여덟 채 공간과 골목길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골목과 동네 어귀 손때 묻은 옛집의 추억이 도서관의 풍경으로 되살아났다. 2015년 6월이었다.
 
도서관마을이 들어서기 전 옛 모습. 붉은 선 안의 여덟 채를 구입해 이 중 세 채를 도서관 내부로 넣었다.

도서관마을이 들어서기 전 옛 모습. 붉은 선 안의 여덟 채를 구입해 이 중 세 채를 도서관 내부로 넣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도서관마을 모습. 동네 골목길과 주택을 내부에 감싸 안았다. 김상선 기자

위에서 내려다 본 도서관마을 모습. 동네 골목길과 주택을 내부에 감싸 안았다. 김상선 기자

“강남이었으면 이런 건축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모두 부수고 새로 지었을 테니까요. 구산동이기 때문에 옛집을 보존하면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신 관장의 안내로 내부로 들어서자 천장이 5층까지 뻥 뚫린 마을 광장이 나왔다. 예전에 골목길이었던 곳이다.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가 손님을 맞았다. 광장 위쪽으로는 과거 다가구 주택의 발코니가 살아 있는 감시탑처럼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2550㎡. 공간을 알뜰살뜰 쓴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미디어 자료실, 어린이 자료실, 청소년 자료실, 마을 자료실이 층마다 들어섰다. ‘만화의 숲’이라는 만화 자료실도 공간을 빼곡히 채웠다. 골목길 양쪽 벽을 따라 책의 숲이 펼쳐졌다. 
 
곳곳에 자리 잡은 55개 열람실ㆍ토론실 등은 옛집의 방이었다. 하루 1800명 정도가 도서관 마을을 찾는다. 은평구 주민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김영미 문화사업팀장은 “지구에 사는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산동의 문화와 역사 자료를 볼 수 있는 마을 자료실. 김상선 기자

구산동의 문화와 역사 자료를 볼 수 있는 마을 자료실. 김상선 기자

 
김건혁(구산중 1년)군은 “문화 탐방 과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자주 찾는다”며 “도서관이 독서실이 아니고 책을 찾아보고, 강의 듣고, 토론도 하는 곳이라서 좋다”고 말했다.  
 
도서관마을은 사실상 마을의 문화센터다. 올해만 김탁환 작가, 강신주 철학자,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의가 이어졌다. 만화동아리, 탐구아리, 책마을 등 주민 동아리 활동도 도서관마을에서 이루어진다. 
 
구산동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주민 차수진씨는 “관에서 지은 도서관이 아니라 주민이 힘을 합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도서관은 진짜 마을”이라고 말했다.  
강연, 음악감상, 영화감상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홀. 김상선 기자

강연, 음악감상, 영화감상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홀. 김상선 기자

 
이런 골목 도서관이 앞으로 주민 곁으로 더 다가간다. 생활 SOC 사업의 과녁이 됐기 때문이다. 종전의 SOC 투자는 대규모 사업 중심이었다. 고속도로를 닦고, 철도를 놓고, 공항을 짓는 일은 국가 전체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였다. 
 
지역으로 시야를 좁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골목에 사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 내 삶의 질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체감하기 힘들었다. 도서관 구경하기 힘들고, 체육센터 없는 동네에서 삶의 질을 논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이제 방향을 튼다. 도서관 같은 주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골목 인프라를 확충하는 쪽이다.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는 29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사서만 22명이다. 절반은 지역 주민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도서관마을의 마을 광장. 벽에 서삼재라는 글이 쓰여 있다. 김상선 기자

위에서 내려다 본 도서관마을의 마을 광장. 벽에 서삼재라는 글이 쓰여 있다. 김상선 기자

도서관 운영은 마을 공동체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맡았다. 신 관장은 “도서관이 들어서면서 근처 편의점, 카페, 분식점 등에서 장사가 잘된다는 얘기를 한다. 도서관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몫을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생활 SOC 예산으로 내년에 올해보다 50% 늘린 8조7000억원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이 중 도서관 조성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1051억8100만원이다. 올해(711억8100만원)보다 47.8% 증가한 규모다. 
 
전국 229개 시ㆍ군ㆍ구에 작은 도서관이 새로 생긴다. 2022년까지 도서관 1관당 인구수를 선진국 수준인 4만명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도서관마을 전경. 동네 건물과 어깨가 맞닿아 있. 김상선 기자

도서관마을 전경. 동네 건물과 어깨가 맞닿아 있. 김상선 기자

 
하지만 도서관을 짓는 게 다가 아니다. 문제는 운영이다. 현재 전국 공공도서관은 1050개, 작은 도서관은 6400개. 공공도서관은 지자체에서 직접 운용하거나 위탁 운영하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 구산동 도서관마을도 공공도서관이다.
 
 작은 도서관은 면적이 33㎡ 이상~264㎡ 미만이다. 사서가 없어도 된다. 자원봉사자에 기대다 보니 운영이 쉽지 않다. 신 관장은 “도서관을 건립하는 게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지역 공동체에 녹아들고 주민과 함께 운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도서관마을 광장 벽에는 고(故) 신영복 교수가 쓴 ‘서삼독(書三讀)’이라는 글이 있다. ‘책을 세 번 읽되 먼저 텍스트를, 다음으로 저자를, 마지막으로 자신을 읽어야 한다’. 나를 읽을 수 있는 공간, 도서관. 꽃은 더 피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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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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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