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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껏 마시고 싸움판 벌이던 추석이 그리운 까닭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47) 
한복만 입으면 절하는 걸로 아는 꼬마들. 명절 때만이라도 한복 입고 예쁜 짓 하는 손자·손녀다. [사진 송미옥]

한복만 입으면 절하는 걸로 아는 꼬마들. 명절 때만이라도 한복 입고 예쁜 짓 하는 손자·손녀다. [사진 송미옥]

 
큰 명절이 또 다가온다. 젊은 시절엔 명절이 다가오면 피곤함이 먼저 밀려오고 또 지나고 나면 몸만 바빠서 피곤함이 먼저 인사했다. 그런데 이젠 대부대가 쳐들어온 듯 난리를 치며 명절을 맞아도 피곤함보다는 아쉬움이 먼저 마음에 인사한다.
 
‘좀 더 맛있는 걸 대접할걸.’ ‘좀 더 많은 대화로 서로를 격려해 줄걸.’ 나이 드니 이런 생각이 우선이라는 것이지 오는 손님이나  주인이나 힘들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래도 어차피 이 땅에 사는 동안은 겪어야 하는 시간이라 오래전 명절 이야기를 생각하며 추억을 그려본다.
 
어린 시절 대구에 살 적에는 부모님 고향이 강원도라 명절이 오기 며칠 전부터 아버지는 가까운 이모님 댁으로 달걀 한 꾸러미를 싸주시며 인사를 보냈다. 친정에서의 명절은 간소하고 조용했으며 명절은 새 옷이랑 용돈이 많이 생긴 날이라고만 기억한다.
 
시집을 와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거의 일가친척인 집성촌이었다. 10촌 너머까지 거의 한마을에 살았던 것 같다. 하여, 명절만 되면 30~40명이 몰려다니며 집안 어르신께 큰절하고 종손인 당숙님 댁부터 시작해 큰 작은집, 작은 큰집 대여섯집을 돌아가며 차례를 지냈다. 추석 명절엔 종손의 지시에 한복차림을 하고 성묘도 다녀야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어깨너머로 명절 예절을 배웠다.
 
추석 다음 날이 남편의 기일이다. 해마다 추석 다음 날이면 가족 소풍 가듯 남편 묘지에 들른다. 손녀와 손자가 할아버지가 가장 즐겨 드시던 술을 따르며 인사한다. [사진 송미옥]

추석 다음 날이 남편의 기일이다. 해마다 추석 다음 날이면 가족 소풍 가듯 남편 묘지에 들른다. 손녀와 손자가 할아버지가 가장 즐겨 드시던 술을 따르며 인사한다. [사진 송미옥]

 
그리고 그 시절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명절만 되면 많은 친인척이 모여 술판이 벌어지는데 이게 싸움판이 된다는 것이다. 친척이 모여서도, 각자 집으로 돌아와 형제들이 모여서도, 처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서서히 어디론가 사라지고 술 힘에 모두 슈렉이 되고 헐크가 되어 마지막은 늘 싸움판이 됐다. 남자 형제가 많은 집은 더 심했다고 전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무것도 아닌 건데 그땐 무엇이 그리도 서럽고 기분 나쁘고 섭섭했는지 나이 어리고 소심한 새댁이었던 나는 저 사람 중에 한놈은 얻어터져서 내일 아침이면 죽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의아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속을 다 털어내고 울고불고 멱살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한바탕 쇼가 지나고 나면 제풀에 취해 쓰러져 잠을 자는 팀, 오락(화투)하는 팀, 수다 떠는 팀으로 나뉜다. 웃기는 것은 전쟁이 지나간 다음 날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사이로 변해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할머니가 되고 보니 그 시절이 참 그립다. 세월이 바뀌어 이제는 이런저런 핑계로 자고 가는 이도 없고 모두가 바쁜 걸음으로 일어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말처럼 힘들었던 젊은 그 시절은 다 지나가고 추억으로만 남았다. 서럽고 섭섭한 그 많은 사연이 곧 사랑이었으니 아무리 싸우고 싶어도 사연이 없고 아무리 함께 떠들고 싶어도 모두가 바쁘다.
 
시아버지, 친정아버지가 모두 국가유공자다. 지난해 겨울 대전 현충원에 모신 시부모님 묘소에 갔다가 나를 엄청 챙겨주는 시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송미옥]

시아버지, 친정아버지가 모두 국가유공자다. 지난해 겨울 대전 현충원에 모신 시부모님 묘소에 갔다가 나를 엄청 챙겨주는 시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송미옥]

 
늘 그랬듯 이번 명절에도 온 가족이 다 모일 것이다. 당연히 좁은 우리 집에도 큰댁이라는 이유로 최신부대가 쳐들어올 것이다. 만나기 전까지는 모두가 바쁘고 소원하고 연락도 없는 우리는 모두 각자 마음이 메말라 있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로 투덕거린 일이 눈덩이같이 커져서 감정이 큰 형제도 있고, 돈 문제로 영~ 안 볼 것 같이 투덕거렸던 형제도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가지만 남은 우리끼리라도 뿌리를 내려 잘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이번 명절은 씨름판이라도 되기를 바라본다.
 
시골집 좁은 방에서 어린 시절 치고받았던 형제들같이 옛날이야기가 중간중간 양념이 되어 한잔 술에 시끄러운 투덕거리기라도 했으면 한다. 그래서 스르르 감정도 녹고 마음속 응어리도 녹아 서로 격려하고 웃고 떠들다가 돌아갔으면 참 좋겠다.
 
바쁘고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 그나마 명절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유지해주는 유일한 끈 같다. 살다 보면 또다시 서운하고 밉고 꼴 보기 싫고 더럽고 치사한, 보는 사람만 없어도 버리고 싶은 내 형제, 내 자식, 이웃이 또 생길지라도 다음 명절로 연결해줄 끈을 향해 열심히 살아볼 것이다. 가을의 풍성함이 마음의 풍성함으로 채워지는 한가위가 되길 기원해본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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