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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이 갚지 않은 3조5000억원 … 대규모 추가 경협 걸림돌

대북차관 둘러싼 ‘국고손실’ 논란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북핵 폐기를 목표로 한 ‘완전한 비핵화’ 등 지난 4월 판문점 첫 만남에서의 합의를 이행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분위기다. 눈에 띄는 건 우리 기업인과 경제계 인사 17명이 포함된 대목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가 평화’라는 취지로 설명한다. 특히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대북 인프라(SOC) 지원 성격의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유엔 대북제재 말고도 또 하나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이 갚지 않고 있는 철도·도로 건설 자재 등 3조 5000억원 규모의 대북차관이다. 이 문제를 유야무야하면서 또 다른 대규모 추가 투자를 밀어붙였다가는 국민 혈세를 퍼주기 한다는 비판이 거세질 수 있다.
  
신용은 현대 사회의 최고 덕목 중 하나다. 개인은 물론 나라 사이나 국제거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북관계에서는 이런 상식이 좀체 통하지 않는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의 첫 만남 이후 총 5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바로 북한의 약속 불이행 문제다. 대남 도발이나 핵·미사일 개발을 않겠다는 합의를 깨는 건 여전히 다반사로 여겨진다. 국제사회가 규율하고 있는 차관 거래의 기본 질서마저 유린하는 일이 벌써 6년 동안이나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이상 조짐을 보인 건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3월께다. 2007년부터 2년간 북한에 차관(5년 거치 10년 상환) 형태로 지원한 경공업 원자재 대금 8000만 달러(약 914억원, 이하 당시 환율 기준)를 갚아야 할 시기가 됐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옷과 신발·비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해 건네준 물품이다. 이 가운데 3%인 240만 달러를 아연괴 1005톤으로 현물 상환했지만 7760만 달러(887억원)는 남은 상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식량차관 문제도 심각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 북한에 태국산 쌀 30만 톤 등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모두 240만 톤의 쌀이 북한에 보내졌다. 40kg짜리 포장으로 모두 6000만 포대 분량이다. 북한은 2012년 6월 첫 상환 기일이 닥쳤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통일부가 북한에 전통문을 보내 차관 상환에 임할 것을 촉구하려 했지만 아예 전통문 수령조차 거부했다.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공사를 위해 북측에 넘어간 자재와 장비에 대한 차관제공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북측 구간 공사에 들어간 돈은 1494억원이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에서 나온 돈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공사가 끝나 몇 차례 시험운행까지 했지만 곧 중단됐다. 정부 당국자는 “당시 철도 연결이란 의미를 부각시키려 시험운행을 서둘렀고, 화물을 싣지도 않은 채 남북 간을 오가는 바람에 ‘깡통열차’라는 비판여론이 일었다”고 말했다. 상환시기를 ‘공사 완료 후 10년 거치 20년 상환’이라고 못 박았지만 북한은 답이 없다.
 
철도·도로 연결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건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다. 판문점 선언은 제1조에서 ‘끊어진 민족의 혈맥 잇기’를 강조했다. 이 맥락에서 10·4 선언에서 합의했던 사업 중 1차적으로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자고 합의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의 환담에서 북한의 철도 사정과 관련해 “불비(不備,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음)하다”고 토로하면서 우선 순위로 당겨진 의제다.
 
이후 철도·도로 연결은 남북 간 핫이슈로 자리했다. ‘평화, 새로운 미래’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이번 정상회담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수행원으로 간 건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 지난 7월 남북 철도 연결구간에서 공동점검을 벌였고, 8월에는 경의선 북측 구간을 현지조사하는 등 속도를 낼 기세다.
 
이런 움직임에 우려도 제기된다.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마찰음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국책 연구기관과 전문가를 동원해 대북제재의 틀을 비껴갈 사업추진 묘안을 짜고 있다. 대북 인프라 건설이 북한 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경제에 필요한 사업이란 논리가 핵심이다. 특히 철도·도로 등 남북 교통망 연결은 동북아와 유라시아에 걸친 철도·물류 공동체로 발전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정상회담 설명자료에서 “TSR(시베리아횡단철도), TCR(중국횡단철도)로의 연결은 북한이 아닌 우리에게 절실한 사업”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난 11일 국회에 제출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에서 정부는 1차적으로 내년에만 4712억원의 사업비가 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철도·도로 연결에 무상 1864억원, 차관 1087억원이 투입된다. 앞서 통일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선언 때 개성~신의주 철도·도로 개보수 등 합의이행에 8조6700억원이 든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정부는 철도·도로 등 남북 교통망 연결을 통해 동북아와 유라시아에 걸친 철도·물류 공동체 건설을 강조한다. 호혜성에 기반한 남북 경제통합으로 평화를 촉진하고 우리 경제의 회생도 모색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핵 폐기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구체적 약속이나 실행 로드맵이 빠진 상태라면 곤란하다. 북한을 도발에서 대화로 돌려세운 원동력인 대북제재와 충돌한다면 더욱 그렇다. 자칫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수 있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대북 퍼주기라는 전철(前轍)을 밟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렇게 그동안 쌓인 철도·도로와 식량, 경공업 원자재 등 직접적인 대북차관 외에도 거액의 혈세가 투입된 공사가 있다. 바로 북한의 핵 개발로 도중하차한 대북 경수로 건설에 쓰인 2조3063억원의 사업비다. 이 천문학적인 자금 역시 회수가 막막한 상황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남북 경협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나라의 금고에서 3조5000억원이란 돈이 북한으로 흘러가 떼일 위기에 처했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건 비정상이다. 한 푼의 세금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챙기는 공복(公僕)의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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