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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양지는 안 보고 음지만 봐요”...보험사기 의심 현장 급습했더니

 
[별별 금융인②]김현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부 특수조사실장
 
“아니 글쎄 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사무총장 그 놈이 환자도 받고 보험금도 청구하고 계좌도 관리하고 다 했어요. 내가 알았으면 가만히 있었겠어요?”
 
지난 12일 오전 수도권 모처의 한 공원 벤치. 김모씨가 김현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부 특수조사실장 앞에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씨는 조합원을 허위로 모집해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설립한 뒤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운영했다는 의심을 받는 전직 공무원이다.
김현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부 특수조사실장이 12일 오전 8시 30분 수도권 모처의 한 공원에서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며 의료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일삼았다고 의심받고 있는 김모씨 일행을 만나 면담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김현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부 특수조사실장이 12일 오전 8시 30분 수도권 모처의 한 공원에서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며 의료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일삼았다고 의심받고 있는 김모씨 일행을 만나 면담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김 실장은 김씨가 수익을 남기기 위해 환자 알선, 허위ㆍ과다 청구 등 의료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일삼았다는 제보를 받았고 김씨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김씨는 의료생협 아래 두 곳의 병원을 차려놓고 1년 5개월 동안 여러 보험사로부터 수억 원을 부당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면담은 한 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던 김씨는 김 실장이 사전에 준비해온 자료의 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우리 병원이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해왔는지 아느냐”며 자꾸 본질과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앞으로 자주 얼굴을 보거나 같이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좋게 넘어가 달라”며 김 실장을 회유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김 실장은 “병원이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도 잘 알겠고, 이사장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잠깐 대화만 해봐도 다 느낄 수 있겠다”라면서도 “그런데 난 양지는 안 보고 음지만 보는 사람이다. 오늘은 불법 행위로 보험금을 부당수취한 것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자”고 잘라 말했다.
 
김 실장은 18년 차 베테랑 보험사기조사원(SIU)이다. 2001년 현대해상 입사 전엔 13년 동안 경찰로 일했다. 김 실장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경찰로 일하다가 보험사에서 일하니까 어떠냐”는 것이다.
 
김 실장은 그런 질문에 “예나 지금이나 일하는 방식과 목적은 똑같다”고 답한다. 경찰이었을 때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면 지금은 보험계약자들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현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부 특수조사실장은 "경찰이었을 때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면 지금은 보험계약자들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현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부 특수조사실장은 "경찰이었을 때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면 지금은 보험계약자들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졌다. 지난 18년 동안 보험사기 수법은 점차 대담해지고 지능화됐다. 과거엔 경미 교통사고 후 장기입원을 하는 식의 단순 수법이 대부분이었다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살인ㆍ자해 등 강력사건과 결부되는 사건 비중이 커지고 있다. 여러 명의 공범을 가담시켜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등장한다.
 
대부분의 보험사기는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다. 얼마 전엔 수도권 모처에서 차 대 차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여러 미심쩍은 정황이 있었다. 심야 시간대에 유흥가에서 법규위반 차량을 상대로 낸 사고라는 점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충분히 운전대를 돌려 피할 수 있는 접촉이었는데 보험계약자 A씨는 이를 피하지 않았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고의 사고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김 실장은 피해자의 신원 정보로 교통사고이력조회도 해봤지만 과거 전력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A씨가 보험금을 타간 계좌번호로 과거에도 여러 사람이 보험금을 받아갔다는 점. 의심을 가지고 보니 이상한 게 또 발견됐다. 사고 차량에도 과거 수 차례 접촉사고 이력이 있었다. 김 실장은 ‘운전자 바꿔치기’임을 직감했다. 사고가 사건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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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은 경찰과의 공조로 이 사고가 보험금을 노린 사기 사건임을 밝혀냈다.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 다른 사건들까지 모아놓고 보니 전체 편취 금액이 4억6000만원에 달했다. 경찰은 A씨 외에도 A씨에게 인적사항을 빌려준 지인 6명을 함께 구속했다.
 
김 실장은 이러한 조사 과정이 누적되면 큰 틀의 금융 질서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김 실장은 “보험사기 혐의가 있다면 여러 수단을 동원해 그 정황을 면밀히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경찰에 수사까지 의뢰해가면서 끝까지 추적한다”며 “‘상호 신뢰’라는 금융 질서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보험사기 사건의 종류와 수법이 다양해지다보니 SIU 채용 기준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엔 보험사들이 교통경찰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지능범죄수사팀, 강력계 등을 선호한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SIU들이 한 데 모여 열심히 노력해도 수면 위로 드러나는 보험사기 건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7302억원이었다. 지난 2015년 금감원은 2014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보험사기 규모가 3조9142억원에서 최대 5조456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김 실장은 “우리가 조사하면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적발 가능한 보험사기 건은 1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장에서 뛰는 실무자들은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 규모가 최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누수 보험금이 결국엔 보험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데 있다. 지급 보험금 규모가 커지면 손해율(소비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을 소비자가 납부하는 보험료로 나눈 수치)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손해율은 보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적정 보험료 판단 기준이다.
 
김 실장은 눈앞에서 보험사기를 놓칠 때마다 아쉬움에 밤잠을 설친다고 말한다. 대개의 경우 민원이 그 원인이다. 혐의자들이 금감원에 악성 민원을 넣으면 SIU로선 더 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SIU에겐 법이 보장하는 조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건을 경찰로 넘기는 것 외엔 별다른 도리가 없다.
 
김 실장의 바람은 하루빨리 민간조사업법(탐정법)이 제정돼 SIU가 법의 보호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다. 법이 보장하는 조사권을 쥐고 조사를 할 수 있어야 경찰과의 업무 중복 문제도 해소할 수 있고 보험사기 혐의자들과의 불필요한 마찰도 줄일 수 있다. SIU가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게 된다면 10조원에 달하는 보험금 누수액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김 실장은 ”민간조사업법을 통해 ‘꼭 필요한 업무에 한해’ ‘자격을 갖춘 소수 인력’에게 조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34개국이 신고제 또는 허가제로 민간조사원 제도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이 제도가 막혀있다는 점이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김 실장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더니 “지금도 어디에선가 두 다리 뻗고 지낼 보험 사기범들에게 한 마디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 실장은 이들에게 “지금 당장 조사원들이 혐의점을 밝히지 못한 채 넘어갔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어 “같은 혐의점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면 잘 훈련된 조사원들이 끝내는 이를 밝혀내고 만다”며 “보험사기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금융인이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말끔한 수트 차림에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 앉아 재테크 상담을 해주는 모습이 그것이다. 하지만 금융업계에 존재하는 업종은 생각보다 종류가 많고 범위도 넓다. 중앙일보는 열심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금융 산업과 국가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숨은 금융인들을 ‘별별(別★) 금융인’이라 칭하고 기회가 닿는대로 이들의 활약상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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