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삶의 향기] ‘연애하기 좋은 나라’부터 만들라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으시는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게 신경학자들의 말이다. 마음에 드는 상대와 마주치는 순간 우리 뇌의 각 부분은 즉시 긴밀한 상호 작용에 돌입한단다. 그리곤 불과 0.2초 만에 도파민·옥시토신·바소프레신·아드레날린 등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온갖 화학물질과 호르몬을 샘솟게 한다는 거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들여다보면 그때 뇌의 모습이 흡사 마약을 흡입한 경우와 다를 바 없다니 얼마나 강렬한 행복감을 선사하는지 짐작할 만하다.
 
안타깝게도 그런 불꽃 튀는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로맨스와는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청년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중·장년층 모임에 가보면 아들딸이 ‘양심적 결혼 거부자’라는 한숨 섞인 고백을 종종 듣게 된다. ‘초식녀’ ‘건어물녀’를 자처한다는 딸을 두곤 “남자는 물론 여자도 좋고, 외계인이라도 상관없으니 제발 혼자 늙어가지 말고 아무라도 좀 사귀면 좋겠다”는 하소연까지 할 정도다.
 
이런 부모들의 속앓이는 아랑곳없이 요즘 청춘 남녀들은 연애에도, 결혼에도 그리 목을 매는 기색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청년 실업 탓이 클 게다. 그 유명한 ‘삼포 세대’가 포기한 세 가지가 바로 연애·결혼·출산 아닌가. 그렇다고 경제적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적지 않은 청년들이 ‘미혼(未婚)’이 아닌 ‘비혼(非婚)’을 선택하는 가장 큰 동기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를 꼽았다(2018년 4월 12일 잡코리아-알바몬 조사). 시간과 돈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거나, 집안 대소사에 얽매이는 게 싫다는 답이 그 뒤를 이었다.
 
나이가 차면 짝을 만나고, 어지간하다 싶으면 식을 올리고,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던 부모 세대 입장에선 도통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태가 이리 달라진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26만4500건. 6년째 계속 감소세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도 5.2건으로 통계를 낸 지 47년 만에 최저치다. 이렇다 보니 국가적 재앙으로 떠오른 저출산을 해결하려면 ‘아이 낳기 좋은 나라’에 앞서 ‘결혼하기 좋은 나라’부터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설프게 일을 벌이려 들다간 자칫 ‘출산주도성장’처럼 비아냥만 사기 십상이다.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복잡다단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부터 하는 게 순서다. 정부에 뭘 기대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노력하려 한다. 너무 바빠서 누굴 만날 틈이 없다는 후배들한테 “올림픽 앞둔 김연아 선수도 연애를 하고 전쟁통에도 애를 낳는데 어디 바쁘다고 핑계를 대느냐”고 빈정댔던 것, 반성한다. “일이 좋아서 회사와 결혼했다”고 둘러대기라도 하면 “회사는 너랑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왜 혼자서 짝사랑하고 난리냐”고 ‘팩트 폭격’했던 것도 사과한다. 모두 모두 미안하다.
 
앞으론 꼰대 같은 잔소리 따위 집어치우고 잠자코 응원만 하려 한다. 일단 회사 후배들에겐 주당 52시간 근무를 칼같이 보장하고 잦은 야근과 회식을 뿌리 뽑아서 ‘연애하기 좋은 일터’부터 만들어주려 한다. 날이 이리 좋고 바람도 산들산들한데 틀어박혀 일만 하라 하기엔 그들의 젊음이 너무 아깝다. 해봐서 아는데 사실 ‘러브’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통성명과 악수, 허그(hug)로 끝이라면 누군들 못할까. 서툴러서 상처만 잔뜩 주고받는 경험이 쌓이고 쌓여야 자신을 낮추지 않아도 상대를 높일 줄 아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번 명절엔 쓸데없이 결혼이니 출산 얘기로 괴롭힐 생각 말고 어찌하면 청년들이 연애하기 좋은 나라가 될지 각자 궁리부터 해볼 일이다. 혹 길에서, 공원에서, 지하철에서 공개적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과 마주쳐도 눈살 찌푸리는 대신 흐뭇한 미소를 지어주고 말이다. 그들은 지금 온갖 냉소와 편견과 계산을 뛰어넘어 그 어렵다는 사랑에 빠지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으니!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