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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 쌓인 우리밀 1200t···"한톨도 못팔고 폐기할 판"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송정동 송정농협 창고(250평)에 지난해 수확한 우리밀 1200t이 톤백(1t짜리 가마니)에 담긴 채 4단으로 쌓여 있다. 우리밀농협 측이 한 달 보관료로 200만원씩 내고 빌린 창고다. 100㎏에 가까운 김태완(53) 우리밀농협 상무가 가마니 위에 서 있는데 작아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송정동 송정농협 창고(250평)에 지난해 수확한 우리밀 1200t이 톤백(1t짜리 가마니)에 담긴 채 4단으로 쌓여 있다. 우리밀농협 측이 한 달 보관료로 200만원씩 내고 빌린 창고다. 100㎏에 가까운 김태완(53) 우리밀농협 상무가 가마니 위에 서 있는데 작아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송정동 송정농협 창고(250평)에 지난해 수확한 우리밀 1200t이 톤백(1t짜리 가마니)에 담긴 채 4단으로 쌓여 있다. 우리밀농협 측이 한 달 보관료로 200만원씩 내고 빌린 창고다. 100㎏에 가까운 김태완(53) 우리밀농협 상무가 가마니 위에 서 있는데 작아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송정동 송정농협 창고(250평)에 지난해 수확한 우리밀 1200t이 톤백(1t짜리 가마니)에 담긴 채 4단으로 쌓여 있다. 우리밀농협 측이 한 달 보관료로 200만원씩 내고 빌린 창고다. 100㎏에 가까운 김태완(53) 우리밀농협 상무가 가마니 위에 서 있는데 작아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추석이 돌아와도 명절 쇨 돈도 없어. 밀값을 줘야 명절을 쇠쟤. 수매는 허도 못 허고, 밀은 저렇게 (가마니에) 담아져 있고…."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의 한 우리밀(국산밀) 농가.
홍향순(57·여)씨가 100평(330㎡) 규모의 창고 안에 쌓인 우리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6월 수확한 밀 40t 일부가 톤백(1t짜리 가마니)에 담긴 채 방치돼 있다.  
 
30년간 우리밀을 재배해 온 홍씨는 현재 논 300마지기(6만 평)를 빌려 벼와 우리밀을 이모작(二毛作)하고 있다. 해마다 벼 수확이 끝나는 10월에 우리밀을 파종해 이듬해 6~7월에 거두는 식이다. 홍씨는 "나락(벼) 값이 싸니까 밀농사를 지어서 돈이 들어오면 벼농사 때 기계 삯이나 인건비 등을 충당한다"고 했다.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에서 우리밀을 재배하는 홍향순(57·여)씨가 창고에 쌓여 있는 우리밀을 가리키며 "추석은 다가오는데 수매가 안 이뤄져 막막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에서 우리밀을 재배하는 홍향순(57·여)씨가 창고에 쌓여 있는 우리밀을 가리키며 "추석은 다가오는데 수매가 안 이뤄져 막막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하지만 홍씨는 "올해는 종자값·비료값·인건비 등 생산비도 못 건지고 빚만 잔뜩 졌다. 남의 땅이라 마지기(200평)당 20만원을 임대료로 줘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푸념했다. 그동안 계약 재배를 해 왔는데 올해는 판로가 막혀 수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홍씨는 "작년에도 밀만 가져가고 (수매 대금) 정산은 못 했다"고 했다. 올해는 냉해까지 덮쳐 밀 수확량이 지난해의 반 토막이 났다고 한다. 홍씨는 "1마지기당 평소 40㎏짜리(가마니)가 7개(280㎏)는 나와야 하는데, 올해는 3~4개(120~160㎏)밖에 안 나왔다"고 했다.  
 
홍씨보다 사정이 심각한 농가들도 적지 않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서 20년 가까이 밀농사를 지어 온 김재국(48)씨는 "농사는 하늘에 달린 거라 해가 좋으면 이득을 많이 보고, 흉년이 와도 수매를 해 가면 큰 손해는 안 봤다"며 "하지만 올해처럼 한 톨도 못 판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김씨가 지난 6월 수확한 밀 18t은 50평(165㎡)짜리 창고 안에 넉 달째 방치돼 있다. 김씨는 "밀은 수분에 민감해 보관 기간이 길어지면 벌레가 많이 끓고 금방 상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수확한 밀은 늦게라도 수매가 됐지만, 올해는 아예 수매가 안 돼 생산비 2000만원을 모두 날릴 판"이라고 토로했다. 고창 지역 밀 농가들은 급기야 '전량 폐기'를 고심하고 있다. 김씨는 "추석이 지난 다음 달부터 나락을 베야 하는데 벼를 둘 데가 없어 창고에 쌓아 둔 밀은 버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우리밀 농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광주광역시 송정동 송정농협 창고(250평)에 지난해 수확한 우리밀 1200t이 톤백(1t짜리 가마니)에 담긴 채 4단으로 쌓여 있다. 우리밀농협 측이 한 달 보관료로 200만원씩 내고 빌린 창고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 송정동 송정농협 창고(250평)에 지난해 수확한 우리밀 1200t이 톤백(1t짜리 가마니)에 담긴 채 4단으로 쌓여 있다. 우리밀농협 측이 한 달 보관료로 200만원씩 내고 빌린 창고다. [프리랜서 장정필]

국내 우리밀 재배 농가들이 시름에 잠겼다. 팔 곳이 없어 애써 수확한 밀을 창고에 묵히거나 폐기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밀 생산 기반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우리밀 자급률을 2020년 5.1%, 2022년 9.9%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우리밀 자급률은 2008년 0.2%에서 2016년 1.6%로 8배 늘었다. 하지만 경기 불황 등의 여파로 소비가 줄어 지난해 0.9%로 추락했다.  
 
현재 국내 밀 시장은 수입밀이 99% 독점하는 구조다. 수입밀은 연간 420만t(식용 200만t, 사료용 220만t)이 국내로 들어오는 반면 우리밀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3만7000t에 그치고 있다. 우리밀은 수입밀과 달리 방부제와 농약을 거의 쓰지 않아 '안전한 먹거리'라는 평가를 받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린다. 우리밀 가격은 관세가 면제되는 수입밀보다 4배가량 비싸다. 지난해 밀의 원곡 가격(40㎏ 기준)은 수입밀이 1만2000원, 우리밀은 4만원이었다. 올해 우리밀 값은 3만9000원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한국우리밀농업협동조합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한국우리밀농업협동조합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우리밀 수매 단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수매 단체 중 규모가 제일 큰 한국우리밀농업협동조합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04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문을 연 우리밀농협은 전국 밀 농가 2036곳과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농가에서 사들인 우리밀로 밀가루와 빵, 국수, 통밀쌀, 라면, 과자 등 50여 종의 제품을 만들어 팔고, 여기서 번 돈으로 농가에 수매 대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경기 악화로 우리밀농협에는 2016~2017년산 우리밀 6810t이 재고로 남아 있다.  
 이날 찾은 광주 송정동 송정농협 창고(250평)에는 지난해 수확한 우리밀 1200t이 톤백에 담긴 채 4단으로 쌓여 있었다. 우리밀농협 측이 재고 밀을 보관하기 위해 한 달에 200만원씩 주고 빌린 창고다. 경영난에 빠지면서 우리밀농협은 지난해 수매 대금 총 85억원 중 16억원을 아직 농가에 못 줬다. 우리밀농협은 올해 수매량(4500t)까지 포함해 1만1310t을 처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김태완(53) 우리밀농협 상무는 "밀이 안 나가니 조합원(농민)들한테 수매 대금을 못 주고 지난해 농협에서 빌린 수매 대금도 못 갚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올해 수매 대금도 농협에서 대출을 못 받았다고 한다. 김 상무는 "조합 운영 자금까지 투입할 정도로 자금 압박이 심하다"고 털어놨다.  
 
우리밀 알곡. [프리랜서 장정필]

우리밀 알곡. [프리랜서 장정필]

국산밀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우리밀 전체 수매 예상량은 2만3700t이다. 재고량은 2016년산부터 1만8000t이 창고에 쌓여 있다. 국산밀산업협회는 우리밀농협과 (주)우리밀, 아이쿱 생협, (주)밀다원 등 우리밀 수매 단체를 회원사로 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사단법인이다. 우리밀 재고가 넘치는 악순환이 반복되자 수매 단체들은 올해 수매량을 대폭 줄이거나 우리밀과 밀다원 등 일부 단체는 아예 수매를 포기했다.  
 
우리밀 농가와 수매 단체들은 ①원곡 적체 ②창고 부족 ③자금 압박 등 3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자구책으로 우리밀 파종 면적 축소 및 생산량 감소를 추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농식품부는 올해 초 한시적으로 농협중앙회를 통해 소주 등 주정 원료에 쓰일 우리밀 5000t을 수매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다.  
 
앞서 2013년 '쌀 이외에 밀·콩으로 공공비축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됐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기획재정부가 "근거가 부족하다"며 예산을 삭감해서다.
 
우리밀농협에서 만든 우리밀 제품들. 밀가루와 빵, 국수, 통밀쌀, 라면, 과자, 만두 등 50종이 넘는다. [프리랜서 장정필]

우리밀농협에서 만든 우리밀 제품들. 밀가루와 빵, 국수, 통밀쌀, 라면, 과자, 만두 등 50종이 넘는다. [프리랜서 장정필]

국산밀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밀 재배 면적은 지난해 기준 9282ha로 2010년 1만2548ha에서 8년간 1만ha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잉여곡(남는 밀) 처리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우리밀 재배 면적은 급격히 줄어들 위기에 놓였다.  
 
우리밀 업계에선 ▶재고 물량에 대한 상시적인 주정 원료(연간 1만t)  처리 ▶국산밀의 공공비축(연간 1만t) 제도 도입 ▶군대·학교 급식 등 대형 소비처 공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밀을 살리겠다"면서도 구체적인 해법은 제시하지 않아 농가와 수매 단체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그나마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의원인 이 장관은 장관에 발탁되기 전인 지난해 12월 '국산밀산업 육성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공공비축밀 제도 및 국산밀 사용 인증 제도 도입 등 우리밀 농가들의 요구가 담겨 있다. 당시 이 장관은 "밀은 1인당 연간 소비량이 32.1㎏으로 양곡 중 쌀(61.9㎏) 다음을 차지하는 제2의 주식이지만 밀 자급률은 1.8%(이상 2016년 기준)로 낮은 실정"이라며 "국제 곡물 수급에 따른 가격 변동과 천재지변, 전쟁 등의 비상시에 대비하고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한 국산밀 산업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창고에 가득 쌓인 우리밀. [프리랜서 장정필]

창고에 가득 쌓인 우리밀. [프리랜서 장정필]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가 공전하면서 상임위(농해수위)조차 통과 못하고 발이 묶여 있다. 우리밀 업계에선 "해당 법안이 정당 및 부처 간 이해 충돌이 없어 이번 정기 국회에서는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천익출(71) 우리밀농협 조합장은 "9월이면 우리밀 파종 규모와 내년도 수매 계획이 나와야 하는데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어 차질을 빚고 있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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