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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죽겠다 싶도록 공부했다…미스 양서 양향자씨 됐다"

“전례가 없다고요? 제가 전례가 될테니 기회를 주십시오.”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51)이 삼성전자를 다니던 시절,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을 때 회사를 설득하며 힘주어 했던 말이다. 그는 여성 고졸 신화의 상징같은 인물이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1985년 삼성반도체에 '연구원 보조'로 입사했다. 입사 초기 책상 닦기, 커피 타는 게 주 업무였던 그는 재직 기간 내내 전례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며 유리천장을 돌파했다. 2013년 12월 삼성전자에서 처음으로 호남 출신 고졸 여성 임원이 됐다. 그런 양 원장을 정치권에서도 눈여겨봤다. 2016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나서 영입했다. '학력·지역·성별 차별'을 극복한 인물로서다. 민주당에선 최고위원·전국여성위원장을 했다. 13일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인재개발원 글로벌 캠퍼스에서 양 원장을 만났다. 
 
 지난달 31일 취임한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은 "후배들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31일 취임한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은 "후배들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인재개발원장 발탁 배경을 뭐라 보나.
“공무원들은 이미 조직·행정 분야의 전문가다. 이들과 비슷한 경력의 선배 공무원이 원장을 맡는다면 실무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출 거라 생각했다. 나는 지난 30년간 반도체 산업에서 일했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세계 산업 트렌드가 어떻게 급변하고 있는지 최일선에서 경험했다. 공무원들에게 전혀 다른 시각, 혁신의 DNA를 심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양향자 원장만의 차별화된 커리큘럼은 어떤 게 있을까.  
“전체 교육의 30%를 실무와 무관한 커리큘럼으로 편성할 계획이다. 내가 삼성에서 임원 교육을 받을 때 국가대표 양궁 감독의 강의를 들었던 것도 좋은 예다. 세계 1위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선수들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견디는지 설명을 들었다. 선수 목에 구렁이를 감고, 한밤중에 공동묘지에 혼자 버려놓기도 한다더라. 그런 교육을 통해 ‘세계 1위’라는 말의 무게와 의미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
 
지금껏 유리천장을 돌파해온 비결은.
“나는 호남 출신의 고졸에 여성, 이른바 '고호녀'다. 별다른 비결은 없다.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유리천장을 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
“광주여상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개발 부서에 연구원 보조로 취업했다. 주산·부기·타자밖에 모르는 나는 그저 커피타고 책상 닦고 복사하는 ‘미스 양’일 뿐이었다. 연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이 방법이 없었다. 그때 내가 늘 복사해서 연구원 책상 위에 올려놓던 서류가 일본어로 된 반도체 기술 논문들이었다. 연구원들도 일본어를 몰라 해석에 애를 먹고 있었다. 3개월간 독하게 일본어를 공부해 복사한 자료 밑에 0.5㎜짜리 볼펜으로 깨알같이 해석을 달아 나눠줬다. 그날 처음으로 미스 양이 아닌 양향자씨라고 불렸다. 그 작은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출발점이었다”
 
반도체 기술은 어떻게 배웠나.  
“내 좌우명이 유지사성(有志事成·뜻이 있으면 일이 이루어진다)이다. 반도체 기술을 배우고 싶어 고민할 때, 삼성에서 기술대학을 설립했다. 반도체공학과에 지원했는데 회사에선 안된다며 막았다. 처음에는 고졸이라서, 다음에는 여사원이라고 안된다고 했다. 연수 담당자에게 1년간 사정사정했다. 겨우겨우 꼴찌로 들어가 결국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양 원장은 성균관대 석사까지 마쳤다)
 
이과 출신도 어려운 반도체 공부를 어떻게 했나.
“대학에서 2년 6개월 공부할 때 '이러다 죽겠다' 싶을 만큼 공부했다. 수학Ⅱ, 유기화학, 고체물리 등 모든 과목이 너무 어려웠다. 내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용어들이었다. 처음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도 열심히 했지만, 같이 일하는 연구원들이 정말 많이 가르쳐줬다. 특히 당시 옆 부서 부장님은 수학을 개인과외 시켜주다시피 했다. 공부시간을 더 내려고 그분이 사는 아파트 아래층으로 이사가 틈나는 대로 가서 배웠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보조’에서 연구원으로 전환이 쉽진 않았을 텐데
“선배들이 이끌어줬다. 당시 부서장이 임형규 SK텔레콤 고문이었다. 그분이 보조로 일하면서 연구원이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는 나를 개발팀으로 끌어당겨 줬다. 한번은 임원 비서가 한명 그만뒀는데, 회사에서 후임자를 찾다가 상고 출신에 일본어 자격증이 있는 나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 임 부서장이 ‘니는 저 자리에 안 맞다’고 딱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해주셨다. 기술 연구원으로 커야 하는 데 비서로 가면 안 된다는 거였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 결정적인 순간에 조언해주고 이끌어준 분들 공이다.”
 
학구열이 대단한데, 왜 상고에 진학했나.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계셨고 생계는 오로지 엄마 몫이었다. 중학생 때 아침마다 어머니에게 학교 갈 차비 65원 달라고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교수가 되고 싶었다. 원래 인문계 고교에 지원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원서 마감 하루 전에 아버지가 유언처럼 '엄마와 할머니, 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다음날 학교 가서 원서를 수정해 광주여상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내가 광주여상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양향자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장. 양 원장은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을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상선 기자

양향자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장. 양 원장은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을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상선 기자

 
기업 출신이다. 현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  
“말하기 조심스럽다. 솔직히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기업인들 사이에서 ‘우리가 무슨 죄인이냐’는 통탄이 나온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고 투자를 지원하는 대신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면서 적폐 취급을 한다는 거다.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지난 20대 총선과 6·13 지방선거 때 모두 광주에서 출마했다. 다음 총선(2020년) 때도 광주에 출마하나.
“지금은 인재개발원장을 맡았으니 여기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정치 인생 30년 비전’을 세웠다 말한 적이 있다. 30년 후 모습은.  
“정치란 공동체를 위해 이타적인 삶을 사는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불가능해 보여도 가치 있다면 과감하게 몸을 던지겠다. 또 후배들이 많이 찾아오는 선배가 되고 싶다. 여기선 ‘다만원’이 되고 싶다 ‘다시 만나고 싶은 원장’이라는 뜻이다. 날 만나러 오는 사람에게 다 만원씩 줄 작정이다(웃음).”
 
염태정·박형수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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