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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88 서울올림픽, 그 후 30년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눈부시게 푸른 가을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햇살이 따사로웠다. 1988년 9월 17일.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날이었다. 오늘은 그로부터 꼭 30년이다.
 
‘86’과 ‘88’은 전 국민의 이벤트였다. 그땐 그랬다. TV만 틀면, 라디오만 켜면 86과 88을 이야기했다. 86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88은 88년 서울올림픽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국민들이 원했던 건 아니었다. 당시 총칼로 권력을 잡은 군사 정권은 86과 88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국민들의 시각을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한국체육언론인회가 서울올림픽 30주년을 맞아 발간한 『쎄울! 꼬레아!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책을 들여다봤다.
 
“개발도상국 시절의 국제 종합경기대회 유치는 대통령의 통치 행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경우는 내각, 서울시, 경제계가 모두 반대했지만 대통령의 결단 하나로 추진된 아이러니가 있다. (중략) 81년 9월 3일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보대책회의에서 단호한 유치결의를 피력했다. 그동안 미온적이던 박영수 서울시장에게는 자리를 걸고 총회에 임하라는 특별지시도 내렸다. 국가 통치권자의 이 한마디로 모두들 좌고우면할 수가 없었다.”
 
많은 기업인이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동원됐다. 당장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끌어들였다. 81년 9월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이번엔 메달 사냥을 위해 많은 대기업을 압박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고교 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다는 인연으로 레슬링 단체장을 맡았다. 한화는 복싱 애호가인 김승연 회장의 의중에 따라 복싱협회를 맡았다.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은 고교 시절 탁구 선수를 했다는 이유로 대한탁구협회장에 취입했다.
 
그렇게 88 서울올림픽은 시작됐다. 6200억원을 들인 축제에는 미국·소련을 포함한 160개 나라가 출전했다. 서방국가와 공산주의 국가가 각각 보이콧한 탓에 반쪽 대회로 열렸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84년 LA 올림픽과는 달리 88 서울올림픽에는 사상과 이념을 넘어 전 세계 국가가 출전했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2개를 따내 종합 4위에 오른다. 레슬링의 김영남이 첫 금메달을 따냈고, 양궁의 김수녕, 복싱의 김광선, 유도의 김재엽 등이 서울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들이다. 군사 정권의 불순한 의도로 출발한 건 분명하지만, 서울올림픽은 결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스포츠 이벤트로 끝났다.
 
2018년 9월 17일. 대한민국은 30년 사이 많이 변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렸다. 대통령도 잘못하면 민의에 따라 권력에서 내려와야 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현대차와 대우차 일색이던 도로에는 벤츠와 BMW 승용차가 넘쳐나고, 허허벌판에 가깝던 강남에는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30년이 된 올해 2월엔 강원도 평창에서 겨울 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런데 나라가 부강해진 건 맞는데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사람들은 이제 올림픽 4위 입상이 행복지수 4위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예전에는 영·호남 갈등이 심했는데 요즘엔 좌와 우로 나뉘어 싸운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물어뜯는다. 남자와 여자가 젠더 평등을 놓고 싸운다. 젊은이와 노인이 (일)자리를 놓고 다툰다. 한반도의 내부 갈등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이라는 뉴미디어 촉매제를 타고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30년 전 군사정권에 반대하며 독재 타도와 올림픽 개최 반대를 외쳤던 대학생들은 지금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이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역사는 아이러니다. 도도한 역사의 물결은 그렇게 흘러만 간다.
 
정제원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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