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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만경대 고향집은 초가집 맞을까

우리 역사 연구의 최전선
한국사, 한걸음 더

한국사, 한걸음 더

한국사, 한걸음 더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푸른역사
 
역사학자 63명이 쓴 글 70편을 모았다. 한국역사연구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뜻을 담았다. 책을 마주하는 순간 선입견부터 들었다. 그렇고 그런 역사 에세이 성격 글을 계통 없이 모아서 낸 책 아닐까. 목차를 보지도 않고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한 편을 읽자마자 선입견이 무너졌다. 그리고 든 생각은 이러했다.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이런 책이 나오면 참 좋겠다.’
 
아무렇게나 펼쳐서 처음 읽은 글은 김대현이 쓴 제법 긴 제목의 글, ‘한국의 성소수자에게 역사라는 이름의 계보적 성원권을!’이다.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 역사를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성소수자라는 개념과 인식 자체가 1990년대 이후부터 생겼기 때문이다. 다만 80년대 이전 ‘성소수자에 대한 역사’를 쓰는 것은 가능하다. 신문과 잡지, 의학 논문 등에 간헐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챙길 틈과 여유조차 없이 현재의 역동에 몸 맡기고 충실히 살아가는 내 곁의 사람들에게, 역사라는 이름의 계보적 성원권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마땅히 자신의 존재와 더불어 그들이 싸우고 있는 억압에 대해 깊은 차원의 설명을 제공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
 
김대현의 말에서 볼 수 있듯 책에 실린 글들은 역사학자들의 자기 성찰이자 연구사적 반성과 고민이며 연구 계획서이기도 하다.
 
북한사를 연구하는 김광운의 학문적 고민은 깊었다. 해방 후 북한 토지개혁에서 농민에게 부여한 권리가 소유권이 아니라 경작권에 불과했다면? 1946년 평양 보통강 개수공사가 강제동원으로 가능했던 것이라면? 김일성의 만경대 고향 집이 체제 선전과 달리 기와집이었고, 북한 문화예술인들이 이를 왜곡한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 수립 7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전시 장면. 바라보는 입장과 시점에 따라 역사 해석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중앙포토]

정부 수립 7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전시 장면. 바라보는 입장과 시점에 따라 역사 해석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중앙포토]

고민이 깊어지면서 김광운은 무엇보다 사료 수집과 정리에 집중했다. 그는 북한 관련 사료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1000권 분량 자료집을 만들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나 통일부 등의 기존 자료에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북한 관련 지식정보 검색 기능을 갖춘 데이터베이스도 준비 중이다. 책에 실린 그의 글 제목은 그래서 ‘No Record, No History’, 즉 ‘사료 없인 역사도 없다’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글도 많다. 조경철의 ‘한국사 속 건국연대에 관한 고찰’이 대표적. 내년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지 않겠는가. 조경철은 고조선, 삼국, 발해, 후고구려, 고려, 조선 등의 건국 연대를 살핀 뒤 대한민국 건국을 논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목적은 나라를 되찾는 데 있었다. 그래서 1948년 나라를 되찾고 대한민국 정부를 세웠을 때 그 연원을 1919년에 두었다. 그러나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의 목표는 민주국가 실현이고 통일 한국의 완성이다. 언젠가 민주국가와 통일 한국을 이뤄낸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연대는 1948년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부분만 보고 찬반 격론의 핏대를 올리지는 말자. 조경철은 2019년 100주년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보며, ‘건국절’ 논란으로 국론을 분열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현대사를 살폈으니 조선으로 올라가 본다. 오항녕은 ‘시(詩), 버려두었던 일기’에서 조선과 중국에서 시는 시 쓴 사람이 남긴 생생한 일기라는 점을 발견한다. 역사학계에서는 그러나 시를 ‘허구의 문학작품’으로 보고 한시 자료를 건너뛰곤 하였다. 시를 일기라 생각하고 다시 읽어보니 시를 지은 사람의 일생이 보이더란다. 흥미로운 점은 시가 일기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로 오항녕 자신도 가끔 한시(漢詩)로 일기를 쓴다는 것. 예컨대 군에서 휴가 나왔던 둘째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  
 
‘완산 학교(전주대학교) 가는 길 전화 소리 잊었다가(完山登校忘電跡) 아이가 감나무 밑 도착했음 문득 알았네(纔覺二兒到枾下). 징발된 님 그리는 시 대충대충 넘겼는데(詩云征夫泛泛看), 지금도 군대 가는 일 그 맘보다 더한 듯(役是當今有甚焉).’
 
이제 고려로 올라가 보자. 마침 올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으로 다양한 관련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고려 태조 때 거란이 보낸 낙타를 굶겨 죽인 만부교 사건을 고려 초기 외교 정책과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김순자는, 한국사학자들의 한국사 서술에서 고려시대사가 하나의 성역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고구려 옛 영토 수복을 위한 ‘북진정책’과 그 정당성, 발해와의 동족 의식, 그에서 연장된 거란 적대정책의 정당성도 이 성역에 포함될 것이다. 이들 성역은 무슨 주의, 주장처럼 해방 이래 지금까지 한결같이 서술되어 왔다. 그러나 논증되지 않았거나 논증이 취약한 문제가 남아 있다.”
 
이제 고대사다. 이승호는 부여·옥저·동예·말갈 등이 연구자들의 시선 밖으로 내몰리게 된 이유가 사료 부족 탓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고구려를 강조하며 그 역사상을 정립해나갈수록 고구려와 병존했던 종족들은 역사적 주체성을 상실하거나 타자화되는 방향으로 배제되었다. 다만 고구려의 ‘발전’을 증명하는 피지배 종족으로 서술되어왔던 것이다.
 
“부여·옥저·동예·말갈의 역사를 온전히 바라보기 어렵게 만들었던 굴절의 시선,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사’라는 강박의 틀에서 한 걸음 벗어나 고대 동북아시아를 누볐던 수많은 종족들에 대한 개별 역사를 하나하나 구체화해 나갈 때, 비로소 ‘주변’이 된 이들에게 온전한 그들의 역사를 찾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거의 다 읽고서야 눈치챘다. 현대, 근대, 조선, 고려, 고대사 순서라는 것. 무슨 뜻일까?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을 떠올려 본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이 책은 한국사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한국사를 ‘한 걸음 더’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며, 역사학자들은 도대체 뭘 하는지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이다. 한국사 연구의 최전선과 좌표를 확인하고 방향을 가늠하는 데에도 요긴하다. 학술논저 글쓰기에 갇혀야 하는 학자들이 이 책에서처럼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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