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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쁜 것

요조의 책잡힌 삶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그때 나는 점심시간에 내 바로 뒤에 앉아있던 애들하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밥을 먹을 때를 빼고는 그 애들과 하루종일 말 한마디 섞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니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들과 전혀 친하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았는데 같이 밥을 먹게 된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어쨌든 점심시간이 되면 뒤를 돌아서 묵묵히 밥을 먹었다는 것. 같이 밥을 먹는 애들이 네다섯명 정도였다는 것.
 
어린 왕자

어린 왕자

그러던 어느 날의 점심시간, 여느 때처럼 뒤를 돌아 도시락 뚜껑을 열고 있을 때 어떤 애가 익숙하게 도시락을 들고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우리 반 애가 아니었다. 그렇게 밥을 같이 먹어왔으면서 같이 먹는 멤버 중에 다른 반 애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 애의 얼굴을 처음으로 그렇게 진지하게 쳐다봤던 것은 손에 『어린 왕자』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먼저 말을 걸었다.
 
"어린왕자네?”
 
"응… 이 책 좋아하거든.”
 
"나돈데.”
 
우리는 곧장 서로에게 달려들어 단짝이 되었다. 교환일기를 쓰고 집에도 같이 가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시시콜콜 떠들고 또 떠들었다. 정말 아름답게 글씨를 쓰는 친구였다.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좋았고 똑 부러졌고 나에겐 없는 듬직한 오빠도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두어번인가 만난 게 전부였다는 것은 그 애를 떠올릴 때마다 결국 늘 나를 무색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 애의 모든 것을  그토록 열렬하게 부러워하고 좋아했으면서.
 
얼마 전 그 애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를 잊지 않은 게 고마웠다. 놀랍게도 지금 호주라고 했다.
 
곧 한국에 갈 건데 만나줄 수 있겠냐고 했고 나는 좋다고 했다.
 
그 사이에 딸이 생겼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갈만한 곳을 우리 둘 다 잘 몰라서 그냥 묵고 있는 호텔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

그 애를 만나러 가기 전에 서점에 들렀다. 황현산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어린 왕자』 두 권을 골랐다.
 
호텔 방 앞에서 엄마와 아이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하나도 늙지 않았네 하고 생각하면서 머리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듬더듬 흰 머리가 많았다. 누가 어린애한테 장난으로 흰머리를 심어놓은 것 같아 재미있었다.
 
얼마 만이지. 10년만인가. 10년 더 되었을지도 몰라. 밀린 말들이 앞다투어 입안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책은 헤어질 때주는 게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개구쟁이처럼 뭐 먹을지를 고민하면서 배달 앱을 설치하며 부산을 떠는 가운데 그냥 뜻 없이 틀어져 있던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화면에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황현산 선생님이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짧은 클립이 방영되고 있었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깜짝 놀라자 엄마와 아이도 덩달아 놀랐다. 나는 주문을 하려고 잡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섬주섬 책을 꺼내놓았다.
 
"저분, 내가 너무 좋아하는 평론가이자 번역가셔. 그런데 저분이 번역하신 책 중에 『어린 왕자』가 있다? 우리가 그 책 때문에 친구가 됐잖아. 혹시 그때, 우리가 고등학생 때 함께 읽었던 그 책이, 혹시 저분이 번역하신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그래서 황현산 선생님이 번역하신 『어린 왕자』 두 권 사와 봤어. 우리, 다시 같이 읽자.”
 
우리 둘 다 헤어질 때 오히려 긴장을 했다. 그애는 ‘이모를 이제 또 언제 보니’라고,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면서 자꾸 딸한테 했다. 나는 쭈뼛거리면서 인사하고는 뒤돌아서 좀 걷다가, 내가 깜박하고 주지 못한 선물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호텔로 뒤돌아 달렸다. 그 애에게 ‘깜빡했어. 이건 아기 거야!’ 하고 모리야마 미야코의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를 안겨주었다. 정말로 오늘의 내 마음이었다. 오늘 나야말로 참 예쁜 것을 보았다.
 
요조 뮤지션 chaegbangmusa@gmail.com
뮤지션. 제주의 책방 ‘책방무사’ 대표.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등을 썼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장강명 작가와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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