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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지난주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재판에서 검찰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감정적 표현까지 썼다. “새빨간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17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국민들의 자존심까지 긁어 놓는 역시 검사스런 말이었다. 문제는 “나의 전 재산은 집 한 채뿐”이라는 MB는 반박이었다. 국민들의 뇌세포는 “내가 가진 재산은 통장 잔고 29만원”이라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으로 향했다. MB의 실수 아닌 실수는 검찰의 무례함을 지적하려던 여론을 걷어차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MB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장본인 중 한 명인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MB의 대학동문인 그는 검찰에 압수된 비망록에서 MB 측에게 22억5000만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뇌물의 대가로 그가 바랐던 것은 금융사 회장을 비롯해 금감위원장, 국회의원 등이었다. 전형적인 매관매직(賣官賣職) 아닌가. 아주 작은 회사의 취업비리를 수사하겠다며 난리를 피워대던 검찰이 어째 이팔성 앞에서만 그리 관대해지는가. 더욱이 이팔성이 MB에게 준 돈 중 8억원은 부도가 난 성동조선에서 지원받은 것이다. 돈의 출처까지 나온 상황에서 돈을 받은 경위, 대가관계 등은 왜 수사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엄청난 돈을 주고 금융회사 회장이 된 사람이 본전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15권 노트 분량의 비망록을 통해 전직 대통령을 옭아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도 그는 언론을 피해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검찰도 이 부분엔 말이 없다. 우리에게 플리바겐 제도가 있었던가. 그러니 뜨뜻미지근한 법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검찰이 최근 한 홈쇼핑 업체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서울중앙지검과 남부지검까지 동원됐다. 채용비리부터 시작해 횡령, 배임, 입찰비리 등 다양한 혐의가 망라됐다. 중소기업중앙회까지 파편이 튀었다. 계좌를 샅샅이 뒤져 수백만 원짜리 횡령 의혹까지 찾아냈다. 검찰은 “깊숙한 곳에서 제보가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진짜 속사정은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는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숨어있었다. 그는 지금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이인규가 고교 동문인 홈쇼핑 사장을 통해 인척을 부당하게 취직시켰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MB 정부 때 법무차관을 지낸 황희철 변호사도 조사 대상이 됐다. 그 역시 홈쇼핑 사장과 고교 동문이다. 주식 취득 과정에 불법이 있었는지를 알아본 것이다. “모든 사건에는 꼬리가 있다”는 말이 입증됐다. 왜 이렇게 구차하게 수사하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최근 인사청문회 대상이 된 이석태·김기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놓고 법원에선 뒷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재야 변호사 출신인 이석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 대법원장의 직계 후배인 김기영은 민주당이 내세운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대법원장이 왜 자기 식구를 제쳐두고 멀리 있는 변호사를 챙길까. 이석태는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일 때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인연이 있다. 김기영은 김명수가 한때 몸담았던 국제인권법 연구회 소속으로 절친한 후배로 알려져 있다. 위장전입을 여덟 차례나 한 이은애 판사를 놓고 청와대는 ‘삼권분립’을 주장하며 빠져나갔다. 정말 그럴까. 짬짬이 인사를  의심하는 게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자기 식구 챙기기의 코드 인사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법원 집행부가 그토록 비난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 농단’ ‘사법 거래’와 뭐가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고위 법관들이 검찰에 불려 나가고 법원은 쑥대밭이 됐는데도 사법부 수장에게선 리더십을 찾을 수 없다. 왜 그럴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J노믹스, 대북 정책과 함께 적폐 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양보할 수 없는 국정과제다. 하지만 적대적이고 옹졸한 사정(司正)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어쩌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은밀히 숨어서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방해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 있다”고 말한 것처럼 법원과 검찰은 딥스테이트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탄핵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강일원 재판관이 퇴임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정의는 본인만 정의로워서는 안 되고 겉으로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 댓글 조작 사건으로 나라는 흔들어 놓고도 마치 선거운동에 나선 것처럼 특검에 출두하는 ‘벼락 권력’을 보면서 시민들은 우리의 법은 정의롭다고 생각할까. 사법부 창립 70주년을 맞아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법조계 수장들에게 질문한다. “보수정부 때나 진보정부 때나 우리의 서초동 풍항계는 어찌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가” 혹시 삶이 그대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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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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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