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현상의 시시각각] 이젠 전월세가 문제다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집은 살 때보다 팔 때가 중요한 거 아닌가?”
 
무주택 전세로 지내는 대기업 임원 A씨를 만나 집을 안 사는 이유를 물었더니 ‘소신 있는’ 답이 돌아왔다. 천정부지 집값이 언제까지 가겠느냐는 것이다. 연봉 많기로 소문난 대기업 임원이 돈이 없어 집을 안 산 건 아닐 것이다. 나름의 판단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리라. 이유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이 임원은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을 믿고 따른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값은 내려가고 전세가는 오르자 ‘빚 내서 집 사라’는 대책을 내놨다. 이를 믿고 ‘과감히 질렀던’ 사람은 지금 쏠쏠한 보상을 받았다. 현 정부는 반대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덥진 못하지만 만약 대책이 성공해 집값이 하향 안정된다 치자. A씨는 어떤 보상을 받을까. 집을 싸게 살 기회? 혹은 집값 불안 없이 느긋하게 전세를 계속 사는 것? 합리적으로는 후자의 보상을 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집값 오를 가능성도 적은데 세금 부담까지 높아졌으니 집을 왜 사겠는가.
 
그러나 이런 합리적 기대는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보유와 전세가 얽힌 집값 구조 때문이다. 전세는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전제로 성립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집주인은 오르는 집을 확보하기 위해 세입자의 목돈을 이용하고, 대신 세입자는 보유보다 싼 비용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 집값이 장기 안정화되면 집값과 전세금은 수렴할 수밖에 없다. 아예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로 재편될 가능성도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기 때 경험했던 상황이다.  
 
전월세가 불안해지면 세입자들은 단번에 잠재적 매매 수요자로 바뀐다. 집값 불안과 전월세 불안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물론 대한민국 상위 1%인 대기업 임원의 사정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층에게도 닥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가구의 57%, 전국 가구의 42%가 전월세를 살고 있다. 임대시장이 불안해지면 서민층과 청년층, 주거 취약층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지금 정부가 펼치는 주택정책은 ‘건전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꿈에 맞춰져 있다.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투기꾼과 다주택자들이라는 인식으로 강도 높은 규제를 펼치고 있다. 전세 안정화를 꾀한다며 활성화에 나서던 임대주택사업자 정책은 하루아침에 방향을 바꿨다. 다주택자의 투기 수단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취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영 미덥지 않은 것은 ‘손 따라 두는 바둑’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주거안정이 꼭 내 집 마련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가 주거율이 70~80%에 이르는 영국과 아일랜드는 1980년 이후 추세적으로 집값 폭등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에 자가 주거율이 40%에 불과하고 민간 임대가 50% 가까운 독일은 선진국 중 가장 안정적인 집값 추이를 보인다. 자가 소유에 대한 중산층의 열망이 집값 인상 심리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임대시장 안정화가 집값 안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유세 인상을 주 내용으로 하는 9·13 대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전월세 안정책은 필요하다. 세금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경우 정책은 무위로 돌아간다. 살고 싶은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공급 확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공공임대 확충은 기본이다. 선진국처럼 세입자에게 계약 갱신 청구권을 주거나 임대료 상승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등의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집값 안정이라는 당면 목표에 매달려 주거 안정이라는 근본 목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전월세 안정이 없으면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것’이라는 구호는 그저 빈말일 뿐이다. 
 
이현상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