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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때 돌멩이 1개 던져 징역 산 20대, 재심서 ‘무죄’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사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연합뉴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사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연합뉴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때 돌 1개를 파출소를 향해 던져 당시 징역형을 받았던 20대 남성이 판결 39년 만에, 숨진 지 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무죄 선고 8년 전인 2010년에 55세의 나이로 숨졌다.
 
부산지법 형사7부(부장 김종수)는 부마항쟁 때 파출소에 돌 1개를 던져 군중 소요 행위에 가담한 혐의(소요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최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최씨는(당시 24세)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생 5000여 명이 유신철폐, 민주회복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과 함께 부산 전역에서 시위를 벌인 부마민주항쟁에 가담했다. 최씨는 이날 오후 8시30분쯤 부산 초량동에 있던 중부파출소 앞에서 파출소를 향해 돌멩이 1개를 던졌고 계엄보통군법회의에 회부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옥살이를 해야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군 병력을 투입하는 위수령을 발령해 최씨는 일반 법원이 아닌 군법회의에 회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17일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형법이 규정한 소요죄의 구성요건적 행위로서의 폭행ㆍ협박ㆍ손괴는 한 지방에 있어서의 공공의 평화ㆍ평온ㆍ안전을 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며 “그러나 최씨를 포함한 시위대가 행한 폭행 등이 그 정도 수준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이어 “부마항쟁 시위의 목적, 배경 등에 대해 부산지역 시민들 사이에서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이 사건 시위가 시민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초래하는 정도는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허가받지 않은 학생 집회ㆍ시위 등을 금지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자 부산, 마산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한 유신체제 반대 시위였다. 최근 청와대가 폐지한 위수령이 마지막으로 발령됐던 항쟁이기도 하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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