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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의 시시각각] 바보야, 이것이 위기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경제 위기가 끔찍한 것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취약계층을 벼랑으로 내몬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20년 전 외환위기와 10년 전 금융위기에서 그걸 경험했다. 요즘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 두 차례 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지표들이 상황을 대변한다.
 
최근 몇 가지 통계가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우선 보험 해약 수치다. 생명보험사들이 올 상반기 보험을 해지한 가입자들에게 돌려준 돈이 12조9000억원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선 21% 늘었고, 연간으론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태세다. 서민들에게 보험은 울타리다. 보험엔 고달픈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미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험을 중간에 해약하면 원금보다 적게 돌려받게 돼 금전적 손해가 상당하다. 어지간하면 보험에 손을 대지 않고 버티는 이유다. 하지만 생계가 벼랑으로 치달으면 도리가 없다. 서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보험을 깬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당시 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은행 적금이나 저축성보험을 해약한 경우가 10가구 중 3가구를 넘었다(35.6%).
 
보험 약관대출 증가도 심상치 않다. 보험료를 담보로 빌리는 이 대출은 금리가 연 7~10%에 달한다. 그런데도 상반기에 전년 대비 9% 가까이 불어나 60조원을 넘었다.
 
더 불길한 것은 금리가 연 14~15%나 되는 카드론의 급증세다. 7개 전업 카드사의 올 상반기 카드론은 17%가 늘어 21조원에 육박했다. 급전이 필요하지만 은행의 저리 대출을 쓸 수 없는 이들이 갑자기 늘었음을 보여준다.
 
보험 해약, 약관대출, 카드론의 공통점은 불황일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불황형 상품이다. 불황의 도래를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 할 만하다. 한국 경제가 불황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고, 민생이 병들고 있다는 경고음이 강하게 울리고 있는 것이다.  
 
불황형 대출 확대가 우려스러운 것은 대출자들이 밟게 되는 다음 수순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신용불량자가 되고 노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호경기엔 금리가 높아도 벌어서 갚을 길이 많지만 불경기에 고금리 대출을 쓰면 갚기가 쉽지 않다. 이자 내기도 어려워지면 카드 돌려막기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보험 해약과 카드론 급증의 이면엔 고용 참사가 있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나 수입이 들어오는 이들은 고금리 급전을 구해야 하는 지경에 좀처럼 내몰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에서 떨려나게 되는 순간 상황은 180도로 달라진다.
 
8월에 신규 일자리가 3000개밖에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이다. 이번 고용 동향은 실업자 100만 명 시대가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일자리를 만드는 ‘고용 공장’이 멈춰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계가 막막해진 서민들이 보험을 깨고 고리 대출에 매달리는 경우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이미 목격한 악순환이다.
 
이쯤 해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멀쩡하던 경제가 왜 이렇게 망가지고 있느냐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만큼  바깥 환경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것은 경제 정책의 실패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장 취해야 하는 몇 가지 조치가 있다. 우선 지금의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가져온 폐해와 문제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해법이 보인다. 시장의 현실과 힘겨루기할 때가 아니다. 동시에 이런 고용 참사를 초래한 정책의 장본인들, 고용 사정이 개선될 것이라고 허위 보고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민간에서도 부도낸 경영진을 그대로 두진 않는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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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