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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출산’ 수난시대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출산’ 수난시대다. 아이를 낳는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단어 자체로서 ‘출산’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다는 갈등의 대상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여성이 일생 동안 평균 몇 명의 자녀를 낳는지 알려주는 ‘합계 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200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국민의 ‘출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거기에 몇 년 전 정부가 만든 출산지도는 관심을 경악으로 바꾸어 놓았다. 최근 페미니즘 사고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면서 ‘출산’은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보는 시각이라는 해석이 등장했고, 이제는 정치적으로 옳지도 않고 사용해서도 안 되는 단어처럼 돼 버렸다.
 
사실 학술적으로 보면 ‘출산’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수난을 받는 것은 좀 억울하다. 학술적으로 이 단어에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는 전혀 없다. 인구학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혹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현상과 관련된 사회의 제반 사항을 통틀어 출산력(fertility)이라 일컫는다. 예컨대 합계 출산율, 한 나라의 출산 수준, 출산될 때 남아와 여아의 성비 등과 같이 사회적 의미로서의 출산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용어가 바로 ‘출산력(出産力)’이다.
 
그런데 출산이라는 단어도 듣기 싫은데 여기에 힘력(力)자까지 붙인 출산력에 대한 시각이 원래의 학술적인 뜻이 뭐든 간에 좋을 수가 없다. 국가는 4년에 한 번씩 전국 출산력 조사를 한다는데, 왜 국가가 앞장서서 ‘애 낳는 힘’을 조사하느냐는 웃지 못할 비아냥거림까지 등장할 정도다.
 
조영태칼럼

조영태칼럼

그렇다면 과연 학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출산’이란 용어를 사회와 언론에서 계속 사용해도 괜찮을까? 학자의 입장에선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다. 하지만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 용어의 사용에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우리는 과거 강력한 가족계획 정책을 추진했고, 자녀수의 변화로만 보면 이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라 평가받았다. 하지만 가족계획의 과정에서 피임도, 터울 조절도, 심지어 아들이 선호되던 시기에 아들을 낳는 것까지도 모두 여성의 몫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만이 출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이 강조된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일련의 과정이 가족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가족에는 남편과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역할만을 주로 부각한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은 결과가 아닌 과정 측면에서 혹평을 면치 못했다. 2002년 이후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들이 추진됐다. 과거 산아제한정책 시기 여성들은 주로 가정주부의 역할을 담당했다. 2002년 이후 젊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두드러졌고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서 남녀 차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정은 여전히 여성이 담당했고, 사회는 출산장려정책을 통해 가정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자녀의 출산임을 강조했다. 과거 산아제한이 출산장려로만 바뀌었을 뿐 출산의 책임은 여성에 있다는 정책 프레임은 그대로 유지된 채로.
 
이처럼 지난 50년간 인구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출산력’이 지닌 학술적인 의미는 희석되고 출산은 여성만 하는 것이라는 표면적인 의미만 대중에 각인돼 남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출산을 여성 비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단순한 오해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가 강한 ‘출산’이라는 용어를 아이가 태어난다는 뜻을 가진 ‘출생’으로 대신하는 것을 제안했다.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아이를 잉태하고 낳고 돌보는 과정에서 남성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정책과 제도들이 마련되고 실천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특히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서 남성의 참여와 역할이 더 강조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조만간 ‘출산’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삭제해야 할 것이고, 아이를 기대하는 꿈도 꿀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족 하나만 달자. 최근 한 유력 정치인이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총 1억원을 주어 ‘출산주도 성장’을 유도하자고 제안했다. 지금까지 정책 효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체감도 높은 정책을 마련하자는 의미에선 환영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은 ‘○○주도 성장’이라는 용어에 피로하다. 지금은 환영받지 못하는 두 단어를 조합하기보다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때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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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