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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멈은 남편이 있잖아" 홀로 된 할머니의 질투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45)
휴일에 동생과 딸이 와서 고추 꼭지 따기를 거들었다. [사진 송미옥]

휴일에 동생과 딸이 와서 고추 꼭지 따기를 거들었다. [사진 송미옥]

 
가을이면 친구들의 겨울준비를 위해 고추 장사를 한다. 날을 잡아 고추 꼭지를 따기 위해 이곳에서도 동네 할머니들을 섭외해 놓는다. 어르신들은 가벼운 일거리를 만들어 불러주면 매우 좋아하신다. 그 힘든 몸을 이끌고 밭에 나가시는 이유도 마주 보고 대화하고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이유 때문이다. 힘듦보다 더 힘든 것이 외로움인 것 같다.
 
시골 살 적에도 당연히 고추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친구들이 몽땅 팔아 주었다. 그때도 할머니들을 동원해서 수다 떨며 꼭지를 따고 나면 모두 모시고 나가 함께 짜장면을 먹고 드라이브를 하고 들어오곤 했다. 가을이 오면 고추 꼭지 언제 따냐고 들락날락하시며 묻던 어르신들이 생각난다.
 
그때의 이야기이다. 영감과 사시는 구순 할머니가 자기 고추도 좀 팔아달라고 해서 갖고 오시라고 하니 좋아라 나가시며 고추 자루를 리어카에 실어 곧 영감을 보내겠다며 올라가셨다. 혼자 사시는 구순 할머니가 함께 계시다가 윗집 할머니 고추는 때깔이 별로라며 흉을 보셨다. 나는 웃으며 추임새를 넣었다.
 
“어머~ 진짜요? 그래요?”라며 할머니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해놓은 모든 농사 거리를 하나하나 들추며 별로란다. 부자면서도 짠돌이 영감할망이라고 하신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짠돌이 영감할매예요~ 흐흐.”
 
언젠가 오전에 팥을 고르고 있으려니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내려오셨다. “이 새댁아~ 팥이 색깔이 별로다~ 그 집이 얼마나 알짜부자인데 이웃에게 이런 걸 주남? 니가 어리숙어서 그렇다~ 어쩌고저쩌고~” 이러시며 구시렁거리셨다.
 
“할매~ 그 할배 할매는 눈도 침침해서 잘 못 보시고, 또 두 분 다 허리가 기역으로 구부러져서 아무리 알곡 부자라도 할매만 못한 기라. 할매는 그래도 뒤에서 보믄 20대 아가씨같이 날렵해서 온산을 다 돌아 댕기잖수~ 그러이 너무 할매네 욕하지 마소야?” 했더니 내가 그분들 편을 든 것 같은지 삐쳐서 구시렁구시렁 계속 입에다 담아 놓고 팥을 고르셨다.
 
어휴~ 불편한 것. 그러면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가실 분이 나가질 않고 손이 더 빠르게 움직이셨다. 소녀같이 잘 삐치시는 마음만은 십팔세인 할머니셨다.
 
지난 10일 나는 출근하려고 나서는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여섯 분이 오셔서 고추를 다듬고 가셨다. 고추 꼭지를 따며 수다 떨고 드린 용돈으로 짜장면 시켜 드시고 놀다 가셨다고 한다. [사진 송미옥]

지난 10일 나는 출근하려고 나서는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여섯 분이 오셔서 고추를 다듬고 가셨다. 고추 꼭지를 따며 수다 떨고 드린 용돈으로 짜장면 시켜 드시고 놀다 가셨다고 한다. [사진 송미옥]

 
외떨어진 산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할매 부부와 혼자 사시는 할매는 친구같이 친하신데 같이 안 계실 때는 꼭 흉을 보셨다. 입을 내밀고 팥을 고르는 할매에게 넌지시 한마디 했다. “할매가 나이도 훨씬 적고 이쁘고 허리도 안 굽었고 일도 잘하고 도대체 뭐가 부러버서 그라요잉~~?”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 “그 할마신 영감이 있다 아이가~~~.” 헉! 긴 세월 살아온 고행의 세월 속에 몇 년 전에 떠난 남편의 빈자리가 그리 크고 허전하신가. 고독과 서러움과 한이 다 벤 한마디였다.
 
엄동설한에 아기를 낳아 불기 없는 방에서 벌벌 떨고 산후를 보내고 있을 때 미역 사러 간다며 나간 남편은 미역 살 돈까지 넣고 노름하다가 3일 후에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또 어느 자식 때는 딸이라고 호통쳐서 아이 낳고 오후에 바로 밭으로 향해서 호미질했다는, 팔 남매 자식에 얽힌 이야기가 옛날이야기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나쁜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아무리 점수를 주려고 해도 별로 안 보고 싶을 영감이구먼, 그 옛날의 어머니들에겐 남편은 무슨 일을 하던 하늘이었나 보다. 살다 보니 자식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한들 허리 굽어 힘없어도 우산 같은 그 그늘이 아주 부러웠나 보다. 땔감을 등에 지고 날라줄 때도, 함께 밥 먹는 모습을 볼 때도, 호통을 치며 싸우는 것도, 힘들게 마주 보며 일할 때도…. 누군가 바라봐 준다는 것이 삶의 힘이 아니었을까.
 
“할매~ 조만간에 우리 같이 영감 하나 구하러 장터 나가 봅시데이~ 헤헤.”
 
오늘 고추 자루를 펴며 할머니들을 부르자니 시골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투덕거리고 웃으며 지냈던 시간이 생각이 났다. 그러고는 잠시 옛날 남편들은 참 살기 좋았겠다 생각하니 요즘 남편들이 너무 애처롭다. 하하하.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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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