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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상도 유치원 붕괴 뒤에 숨은 ‘싸게, 빨리’의 유혹

함인선 건축가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함인선 건축가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오피스텔 공사 현장의 땅 꺼짐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난 지 1주일 만에 동작구 상도동 다세대주택 공사장 옆 유치원이 붕괴했다. 둘 다 공사장 흙막이 붕괴가 원인이다. 전체 건축 공정에서 흙막이 공사는 사고에 가장 취약한 단계다. 안전과 비용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종잡을 수 없는 흙을 다루려면 안전도를 최대한 높게 확보해야 하지만, 흙막이는 완공 후에는 필요 없는 임시구조물이므로 비용절감의 주요 대상이기도 하다. 이 모순에 의해 흙막이 관련 사고가 계속된다.
 
거푸집·동바리·비계·흙막이 등 공사용 임시구조물을 짓는 것을 가설공사라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이전 10년간 건설업 전체 사망자 3434명 중 가설공사 관련은 48%인 1647명이다. 저가 입찰로 수주한 공사에서 직접비를 건드리지 않고 이윤을 확보하려면 가설공사 같은 간접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특히 흙막이는 계륵(鷄肋)과 같다. 안전에 치중하자니 아깝고, 대강하려니 찜찜하다. 웬만해서는 흙이 ‘변심’하기 전에 빨리 본 구조물을 짓고 보자는 유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흙은 액체와 고체 중간의 성질을 띤다. 고체는 수직으로 쌓을 수 있고 액체는 수평으로 펴지지만, 흙은 그 중간인 경사면을 만든다. 주변의 산 모양이 다 그렇다. 경사면이 되려는 이 힘이 토압을 만들어 흙막이를 무너뜨린다. 더욱이 흙은 미네랄·물·공기·공극(孔隙, 토양 입자 사이의 틈) 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스펀지처럼 줄어들기도 한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도 한쪽 땅이 눌려서 된 경우다.
 
흙의 공극에 일단 물길이 생기면 지난 7월에 발생한 라오스 댐 붕괴 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1990년 대홍수 때 경기도 고양시 부근 한강 둑이 무너진 것도 들쥐가 판 구멍으로 물이 들어와서 생긴 일이다. 이런 현상을 세굴(洗掘·scouring)이라 부른다. 지하철 공사나 상하수도관 파열에 의한 싱크홀도 모두 이런 현상에 의한 것이다. 성격 까칠한 흙을 다루려면 본 구조물보다 더 높은 안전판을 둬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시론 9/12

시론 9/12

이번 상도동 유치원 붕괴사고는 아찔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이 사고를 보면서 필자는 1963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바이온트(Vajont)댐 참사를 떠올렸다. 5000여 명이 숨진 당시 사고는 2008년 유네스코가 ‘행성 지구의 해’를 맞아 정한 ‘인류가 잊지 말아야 할 5대 비극적 교훈’에 넣었다. 무려 250m 높이의 파도가 댐을 넘어 5개 마을이 6분 만에 사라졌다. 이 ‘메가 쓰나미’의 원인은 산사태였다. 댐 옆의 산에서 2억6000만㎥의 토사와 바위가 시속 110㎞의 속도로 무너지며 댐의 물을 밀어냈다.  
 
전기회사 SADE는 댐 후보지의 지질이 물에 약한 석회암과 점토층인데다 기울어졌기 때문에 댐 건설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무시한 채 건설을 강행했다. 미끄러운 치즈가 들어간 햄버거를 기울여 보시라. 사고 한 달 전에는 하루에 25cm씩 땅이 움직였음에도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이때 충격파 에너지가 일본 히로시마 원폭의 2배 규모였다니 주민을 그냥 둔 채 원폭실험을 한 셈이다.
 
상도동 유치원도 이미 5개월 전 편마암 단층이 경사져 있어 붕괴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 진단이 있었다. 하루 전에는 건물이 기운다는 사실을 동작구청에도 알렸다고 한다. 구조물도 변형과 균열을 통해 스스로 붕괴를 막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런 사전 경고를 애써 무시하는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 하루 전날 틈이 벌어진다는 시민 신고에 서울시청 관계자들은 한밤중에 철판을 깔았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일 아침에 건물에서 물이 새고 우르릉 소리가 나는데도 영업을 계속했고 결국 502명(실종자 6명 별도)이 숨졌다.
 
붕괴의 전조를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너질 리 없다고 믿고 싶은 확증편향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안전 비용을 유예함으로써 얻는 효용에 대한 합리적 타산이 숨어있다. 이런 태도를 ‘안전불감증’ 같은 병리적 증세로 비난해봐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방법은 단 하나, 안전에 대해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뿐이다.
 
한국의 1㎡당 건축공사비는 163만원으로 62개 주요 국가 중 26위다. 1위인 영국의 2.8분의 1이다. 소득수준을 반영한 산재 사망률은 한국이 압도적인 세계 1위이고, 영국의 26.3배인 사실도 이와 관련이 있다. 건설 산재는 전체 산재의 51.5%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됐으면서도 건설현장은 여전히 개발시대의 ‘싸게, 빨리’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부디 구조적인 처방을 찾길 바란다.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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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