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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그 승인에만 수개월···규제에 찔린 방위산업

방산업체 A사는 몇 년 전 중남미 국가에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방위사업청에 수출 예비승인을 신청했다. 방산물자는 기본적인 제원·성능을 담은 소개자료를 보낼 때라도 반드시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A사가 보내려 한 자료 역시 단순한 카탈로그 수준이라 간단하게 승인이 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방사청·국방부·군 등을 거치는 동안 몇 달이 지나며 제출 기한을 맞추기가 빠듯해졌고, 그나마도 인터넷 등에 이미 공개된 내용까지 다 소개자료에서 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A사 관계자는 “얼마나 뛰어난 기술인지 홍보하고 고객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영업의 기본인데, 검색 한 번에 알 수 있는 내용도 보안사항이라며 삭제하고 언제쯤 승인이 날지 기약도 없어 제대로 영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기체계 등을 생산하는 방위산업계에선 해외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규제 때문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방위산업이 성장 절벽에 맞닥뜨렸다. 정부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방위산업을 육성하겠다며 2009년 1월 방위산업 전문화·계열화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방위산업이 최근 위기에 직면했다. 각종 규제와 역차별로 기술 발전이 더딘 데다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 찍히며 업체들이 움츠러든 까닭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 총 매출은 2008년 7조2351억원에서 2015년 14조2651억원까지 늘었지만 이후 14조원대에서 정체 상태다. 수출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수출 실적은 2014년 36억 달러(약 4조620억원)에서 2016년엔 오히려 25억5000만 달러(약 2조8700억원)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도 31억9000만 달러(약 3조6000억원)에 그쳤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제외하면 매출 상위권 업체도 대부분 수출 비중이 10% 안팎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비리 수사가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산업 자체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혀 담당 부처와 업체 모두 얼어붙었고, 규제도 강화돼 해외 시장 개척이나 기술 개발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방산비리 수사는 검찰 방산비리합수단이 출범한 2014년 이후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국방권익연구소가 주요 방산비리 사건을 분석한 결과 2011년 이후 7년 동안 검찰이 구속기소한 피고인 36명 중 44.4%인 16명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반 형사사건의 구속 후 무죄율보다 10배나 높은 수치다.
 
비효율적 규제도 업계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방산업체는 해외와 거래하려면 복잡한 승인·허가를 거쳐야 한다. 제품 홍보나 수출 상담 때마다 예비승인을, 이후 입찰에 참여하려면 국제입찰참가승인을 얻어야 하며 계약 전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준도 매번 제각각이다. 정부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 해법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논란이 된 지체상금도 여전히 업계의 발목을 잡는다. 지체상금은 계약의 이행이 늦어지면 지체된 금액에 대해 하루 0.075%만큼 부과하는 벌금이다. 문제는 한국에 무기를 들여와 판매하는 외국 업체들의 경우 상한제가 있어 아무리 늦어도 사업비의 10%만 내면 되지만 국내 업체에는 상한이 없어 무한대로 지체상금이 부과됐다는 것이다.
 
현대로템의 경우 정부 방침에 따라 국내 협력사의 변속기를 장착해 K2 전차를 생산하기로 했지만 변속기가 내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며 제때 납품하지 못했다. 게다가 1500억원(업계 추정치) 이상의 지체상금도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S&T모티브 역시 협력업체가 납품하는 사격통제장치에 문제가 생겨 K-11 복합소총 납품이 지연됐고, 1000억여원의 지체상금이 부과됐다.
 
이에 ‘역차별적 규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회 간담회에서 “우리 방위산업계가 발전하려면 각종 규제 혁파가 선행돼야 하고 지체상금 관련 소송 등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상남 한국방위산업진흥회 대외협력팀장은 “국내 시장만으론 더 성장할 수 없는 만큼 기술 개발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정부의 과감한 규제 개선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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