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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퍼스펙티브] 20년 넘게 하락 추세의 한국 경제, 뒤집을 수 있나

소득주도성장 유감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논란을 촉발한 것은 월별·분기별 취업자 수와 같은 단기 경제지표들인데,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개인들 입장에서는 그날그날의 살림살이가 가장 큰 문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누군가는 긴 호흡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문제가 보인다.
 

20년 전 7%대 성장률, 2%대 추락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
문재인 정부, 하락 추세 뒤집으려
소득주도성장 추진하다 집중포화

자영업자들 “가뜩이나 힘든데
최저임금 급등에 버틸 수 없어”
일자리안정자금은 기존 고용의
비용 줄이는 도구로 악용돼

타 정책과 조율없는 소득주도성장
정부의 정책 역량 부족 드러내
시장 반응 세밀히 모니터링하고
정책 조화 위해 국무조정 강화돼야

그래픽은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가 계산한 10년 이동평균 장기성장률 추이를 보여준다. 성장률 하락은 한국 사회의 여러 특징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장기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해서 20년도 넘게 강력하고도 일관된 추락을 거듭해왔다. 1년에 0.2%포인트씩, 한 정부의 임기인 5년이면 딱 1%포인트가 떨어진다. 보수정부이든 진보정부이든 패턴은 똑같다. 김세직 교수는 이것을 ‘5년 1% 하락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7%대 성장률은 이제 2%대가 되었고, 이대로라면 조만간 제로 성장을 거쳐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것이다.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20년 넘게 법칙으로 굳어버린 추세를 뒤집어야 한다. 뒤집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다. 문재인 정부는 이 추세를 뒤집을 방법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제시했다. 비판자이든 옹호자이든 자신이 제시한 정책이 어떻게 이 장기 추세를 뒤집을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도대체 경기는 언제 좋아지느냐고. 이 추세를 뒤집지 못한다면 경기는 영원히 나쁠 것이다. 왜냐하면 김세직 교수가 논문에서 분명히 말하듯이 한국의 문제는 경기가 좋고 나쁜 것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장기 성장률이 안정적인 경우에는 경기가 좋았다 나빴다 하게 마련이고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한국은 20년 넘게 성장률이 줄곧 하락하기만 하는 장기 하락 추세다.  
 
역사상 최초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못 살게 될 것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경기부양책으로 될 일도 아니고 단기 처방으로 될 일도 아니다.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현실과 괴리된 소득주도성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부 비판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소득주도성장이 전혀 근거 없는 이론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오래전부터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한국의 경우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교수 시절이던 2015년에 발표한 논문 ‘소득주도성장과 중소기업의 역할’을 보면 그 근거들이 제시되어 있다. 너무 길어서 다 인용할 수 없지만 요약하면 1. 가계 소득이 너무 적을 뿐 아니라 계속 더 적어지고 있고 2. 가계 소비는 수출이나 투자보다 고용 유발 효과가 더 높으며 3. 성장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4. 대기업 중심 수출의 취업 유발 효과는 계속 낮아지며 5. 중소기업의 경제 기여도가 대기업보다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거가 있다고 해서 시장이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소상공인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마도 세무사일 것이다. 그들은 동네 호프집부터 제법 규모가 있는 외부감사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상공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세무회계 여솔의 방준영 대표세무사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보자.
 
 
모든 비난은 최저임금에 집중
 
자신의 이름을 건 베이글 가게를 운영하는 A 씨. 다행히 올해는 매출이 증가세여서 버텼지만, 매출 증가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1~2년 후에도 인상된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그보다 더 큰 불안은 임대료 상승이다. 거기에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베이글 시장에 속속 진입 중이다. 아르바이트생 3명을 쓰고 있는데, 최저임금 인상과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월 150만원 정도의 추가 부담이 생겼다. 여기에 4대 보험까지 가입해준다면 급여의 9% 정도 부담이 더 늘어난다.
 
돈만 문제가 아니다. 아르바이트생 특성상 잠깐 근무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흔한데, 그때마다 4대 보험 취득 신고와 상실 신고를 반복하는 것도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OECD 최고 수준의 자영업 초과 공급으로 인해 원래 자영업은 너 죽고 나 죽는 레드 오션이다. 가뜩이나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 위에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돌멩이 하나를 더 얹어놓으니 이제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비난은 최저임금으로 집중된다.
 
 
악용되는 일자리안정자금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완화책 중 하나가 일자리안정자금이다. 30인 미만 고용주를 대상으로 월 190만원 미만의 보수를 받는 근로자 1인당 13만원씩을 지급한다. 의도는 좋지만, 막상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런 것들이다. 비슷한 일을 시키고 경쟁사는 180만원을 주는데 본인은 250만원을 주던 소상공인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고마운 고용주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일자리안정자금 등장 이후 갈등을 겪게 된다. 가뜩이나 경쟁사보다 70만원씩 더 주던 급여도 부담이었는데 이제 그 격차는 83만원으로 늘어났다. 고민 끝에 해당 근로자를 불러 제안을 한다. 공식 급여를 180만원으로 낮추고 차액 70만원을 현금으로 보전해주겠다는 제안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공식적인 비용이 줄어듦으로써 세금이 늘어나게 되지만 매달 13만원씩 들어오는 현금은 적지 않은 유혹이다. 피고용인 입장에서는 현찰로 받는 70만원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4대 보험 산정에서도 빠지는 알짜 수입이다. 여기에 만약 근로자 수가 10인 미만인 경우라면 두루누리사업까지 활용해서 월 급여 190만원 미만 근로자에 대해 고용보험과 국민연금도 9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신규 고용을 발생시키기 위한 정책은 기존 고용의 비용을 줄이는 도구로 사용된다.
 
 
정책 이긴 강남의 ‘똘똘한 한 채’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하자 시장 가격은 보란 듯이 더 급등했다.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읽지 못한 탓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수익률과 불안감이다. 요즘 여유 있는 사람들은 아예 일찌감치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해버린다. 증여세를 내더라도 부동산만큼 높은 수익률을 내는 투자가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10억이면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었고, 30억이 있는 사람은 자그마한 빌딩을 보러 다녔었다. 지금은 강남에 10억짜리 아파트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얼마 전 드디어 평당 1억원짜리 아파트가 등장했다. 30억을 들고 30평짜리 아파트를 보러 다니는 셈이다. 보유세를 아무리 높여도 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다. 높은 수익률에 더해 불안감이 작용한다. 규제하면 할수록 지금 빨리 부동산 상류층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할 거라는 불안감이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지방 부자들의 강남 부동산 투자이다. 강남에 ‘똘똘한 한 채’를 확보해두지 않으면 부자 대열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들은 매물만 나왔다 하면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입금한다. 어차피 거래세도 올라 퇴로도 없다. 시장 참여자들은 보유세와 거래세라는 양대 장벽에 진로도 퇴로도 막혔지만 거기서 버티고 있으면 솟아오를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 믿음이 정책을 이기고 있다.
 
 
‘5년 1% 하락 법칙’ 깨는 방안 나와야
 
시장에서 확인한 결과는 전반적인 정책 역량 부족을 보여준다. 장기 추세를 뒤집기 위해 소득주도성장이 왜 필요한지, 어떤 고통이 예상되는지,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함께 마련하고 있는지 종합적인 설계를 보여주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사회 정책과 교육 혁신은 소득주도성장과 어떻게 선순환할 것이며, 사회적 합의를 위한 협치와 대화 기구의 복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정책들과 조율되지 않은 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로 나온 정책은 비난을 ‘독박’ 썼다. 보완책은 악용되었고 부동산 정책은 심리전에서 지고 있다. 시장 반응에 대한 세밀한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정책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국무 조정 역량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끝으로, 소득주도성장은 지켜야 할 정책인가 버려야 할 정책인가. 김세직 교수의 ‘5년 1% 하락의 법칙’으로 돌아가 보면, 이 추세를 뒤집을 수 있느냐가 근본적인 판단 기준이다. 앞서 인용한 홍장표 전 수석의 근거들은 한국의 가계 소득이 너무 적고, 그것이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소득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기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한참 더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이 설명이 생략된 채 지키겠다고만 하면 국민 눈에는 아집으로 비친다.
 
소득주도성장의 비판자들도 똑같은 책임을 가져야 한다. 월별·분기별 지표만 가지고 당장 폐기하라고 하면 장기 정책은 아예 할 수 없게 된다. 또 장기 추세를 뒤집을 자신들의 대안은 무엇인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정치 공세일 뿐이다. 20년이 넘도록 보수정부도 진보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킬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는 결국 누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장기 추세를 뒤집겠다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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