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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올린 고물들, 신전이 되다: 최정화 작가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개인전 시작한 작가 최정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된 최정화의 '민들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된 최정화의 '민들레'

체코 프라하의 유서 깊은 성당 천장에 늘어뜨려진 알록달록한 풍선 샹들리에, 미국 보스턴 미술관 정원과 프랑스 파리 라빌레트 공원 속 거대한 ‘숨 쉬는 꽃’, 성북동 거리에 서있는 형광초록빛 플라스틱 소쿠리 ‘숲’ . 설치 미술가 최정화(57)의 작품을 보면 두 개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키치’와 ‘숭고’다. 양립이 불가능할 것 같은 이 두 가지가 오묘하게 공존하는 작품들에 대해 작가는 “성(聖)과 속(俗)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성과 속의 결합’이 새로 진화했다. 지금까지 플라스틱 재질의 값싼 현대 일상용품을 독특한 조형으로 거대하게 집적해 감흥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번에는 조선시대 촛대부터 아프리카 나무의자와 중국 고무신, 프라이팬 손잡이까지 온갖 고물을 모아 크고 작은 수많은 탑을 쌓았다. 이들이 한데 늘어선 모습은 돌탑이나 토템기둥이 늘어선 원시종교 성지 같기도 하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같기도 하다. 현대차의 한국 대표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MMCA 현대차 시리즈’의 2018년 작가로 뽑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 ‘꽃, 숲’(9월 5일~2019년 2월 10일)을 시작한 최 작가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났다.  
 
‘꽃, 숲’ 전시장 입구에 있는 ‘세기의 선물’ 탑들은 무척 기묘하다. 형태는 고대 그리스 신전의 코린트·이오니아 양식 기둥머리를 쌓아 올린 것이라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마치 초콜릿 포장지 같은 빨강·핫핑크·황금색 크롬으로 코팅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는 필자와의 예전 인터뷰에서 “모두 진짜 기둥머리에서 캐스팅한 거예요 아, 진짜 고대 그리스 신전 기둥 말고, 한국 결혼식장 기둥에서요”라고 말하며 크게 웃은 적이 있다.  
한국의 웨딩홀 건물들은 서양의 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을 서투르게 모방한 키치 디자인으로 악명 높다. 급속한 근대화·서구화가 낳은 기괴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최정화의 ‘세기의 선물’은 이에 대한 풍자를 내포한 셈이다.  
 
그러나 그 묘한 시각적 매력에서 알 수 있듯, 철저히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간 최정화의 다른 많은 작품도 이렇게 긍정과 부정이 혼재된 톤을 보였다. 그 중 한 연작이 ‘연금술’인데, 마치 화려한 베네치아 글라스로 만들어진 스탠드 램프처럼 보이지만 사실 싸구려 플라스틱 용기로 창조된 것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작가가 “꽃탑”이라고 부르는 146개의 탑이 “꽃숲”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는 ‘세기의 선물’과 ‘연금술’ 연작도 있다. 오래된 금속 솥과 냄비나 목가구를 쌓아올려 옛 파고다의 분위기를 풍기는 탑들, 불지 않은 색색의 고무풍선이나 플라스틱 뚜껑, 심지어 바다에 떠다니던 낡은 부표를 쌓아 올려 기발한 조형미를 뽐내는 탑들이 즐비하다.  
 
그 중 작가가 “천하대장군”이라고 부르는 탑은 나무판에 납작하게 눌린 금속 대야를 붙인 것으로, 원시 주술적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무는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구해온 것이고, 그 위에 붙인 것은 우리나라 고물상에서 재활용 직전 납작하게 뭉개놓은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원래 전시 제의를 받으면 장소특정적 전시를 위해 그 지역의 시장과 민속박물관을 반드시 보는데, 최근 몇 년간은 폐기물 처리장도 갔습니다. 그렇게 세계 방방곡곡에서 고물을 구해왔지요. 우리나라 고물상 투어도 했고요. 장소특정적 전시를 해오다가 이번엔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적 비빔밥을 만든 것이죠.”  
 
‘꽃탑’ 중 한옥의 부재인 ‘소로’를 높게 쌓은 작품은 루마니아 작가 브랑쿠시의 유명한 ‘무한주’를 연상시켰다. “실제로 브랑쿠시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소쿠리를 쌓을 때부터 브랑쿠시를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예술가는 여전히 시장 아줌마들이죠. 그들의 대담한 미감은 늘 나를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작품 '꽃숲' 속에 앉아 있는 최정화 작가

작품 '꽃숲' 속에 앉아 있는 최정화 작가

전에는 주로 플라스틱 오브제를 사용해 한국 현대 대중소비문화에 대한 풍자를 많이 담았는데, 이제는 오래된 나무·철·도기 등을 사용하면서 좀더 인류학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풍자적인 면도 여전히 있다. 그것은 속(俗)의 영역이다. 다만 성(聖)과 속이 본래 하나라는 메시지가 더 강해진 것 같기는 하다. 버려진 일상용품으로 만들어진 탑 하나하나가 마치 하나의 절이나 성당 같다고 말하는 관람객들이 있다. 특히 3대째 한 집에서 산 어느 교장선생님에게 기증받은 테이블·소반· 식기들로 만든 ‘꽃의 향연’은 역사의 함축이자 하나의 신전 같은 작품이다.”  
 
미리 어떤 모습의 탑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고물을 수집하나.  
“그렇지 않다. ‘천하대장군’의 경우도 나무판과 금속을 시차를 두고 지구 반대편에서 구한 것이고 어느 순간 ‘쟤와 쟤가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예술이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면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굳이 일상용품을 모아 작품으로 만드는가. 그냥 일상의 오브제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는데.  
“예술가의 역할은 영매, 매개자, 샤먼이 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예술가가 원시 제사장-무속인에서 기원했다는 이론이 있다. 오브제가 그냥 오브제일 때와 예술가가 매개할 때는 다른 것 같다. 작가는 물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물질을 통해서 정신을 일으킨다. 플라스틱과 양은냄비부터 모든 존재하는 삼라만상에 예술가는 정신을 불어넣는, 아니 불어넣기보다는 오히려 내재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불러서 끌어내는 일을 한다. 못 보고 지나칠 경우에는 그냥 오브제이지만, 예술가가 그것을 꺼내어 보여줄 때는 다르다. 물론 그걸 나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술가로 불리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그것을 할 수 있었다. 소반에 정화수 떠놓고 정성을 다해 빌면서, 오로지 물 담긴 사발 하나에서 영혼을 불러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옛 어머니들의 정화수 받친 소반은 가장 미니멀한 신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신의 탑들도 그것을 닮은 것 같다.
“맞다.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전부터 쌓아 올리는 모티프가 많은데, 쌓아 올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조형에 대한 실험일 수도 있고, 땅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 또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자 하는 염원과 기원의 의미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불교 파고다까지 시공간을 초월해 태고부터 쌓아 올리는 행위가 있었다. 또한 천-지-인 철학에 기반해 하늘과 땅을 이으며 직립해 있는 인간의 현상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전시의 피날레는 마당에 있는 지름 9m 짜리 ‘민들레’다. 폭발하는 별이나 성게 같은 형상의 거대한 것이 햇빛을 받아 오색으로 반짝거리며 장관을 이룬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수천 개의 양은 냄비와 주전자, 플라스틱 설거지통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가 지난 3월부터 ‘모이자 모으자’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하며 각 가정에서 기증받은 것들이다.  
 
관람객의 반응은 뜨겁다. 어떤 이들은 이제 예술의 일부가 된 자신의 식기를 찾느라, 또 어떤 이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작가는 그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삼라만상에서 영혼을 불러내고 또 모든 사람을 예술가로 만드는 매개자, 샤먼으로서의 흐뭇한 미소였다.  
 
글·사진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사진 박상문 코리아중앙데일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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