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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한 장에 인생을 걸듯 이 소설에 모든 걸 걸었다"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33> 바젤: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간”
구소련 감독 이반 피리예프가 만든 영화 ‘백치’(1958)의 포스터

구소련 감독 이반 피리예프가 만든 영화 ‘백치’(1958)의 포스터

 
『백치』는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분명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강의하기도 어려워서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 비해 수업 시간에 논의되는 빈도가 훨씬 낮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사랑했다. 자기가 원했던 것의 1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서 “이 관념보다 더 훌륭하고 풍요로운 시적 사고를 문학에 입문한 이래 겪어 본 적이 없다”고 자부했다. 『백치』를 최고라 생각하는 독자들이야말로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정신세계는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스토옙스키가 『백치』를 쓴 장소는 유럽이고 배경은 페테르부르크지만, 스토리의 근원은 모스크바다. 1837년 공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던 도스토옙스키는 22년만인 1859년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마치고 수도로 귀환하는 길에 사흘간 모스크바에 들렀다. 그때 그의 귀에 부자 이모 쿠마닌가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소문이 들려왔다. 콘스탄틴 쿠마닌과 그의 젊은 아내, 그리고 어느 공작 간의 삼각관계에 관해 사람들은 오랫동안 수군거렸다. 이 스캔들은 그의 뇌리에 박혀 있다가 소설 『백치』의 플롯으로 재현되었다.  
 
돈·치정·살인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에 등장한 ‘예수’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백치’(1951)의 포스터. 삿포로가 배경이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백치’(1951)의 포스터. 삿포로가 배경이다.

 
몰락한 공작 가문 출신의 청년 미슈킨은 간질로 인한 경미한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데다가 너무 착하고 순수하고 어리숙해서 종종 ‘백치’라 불린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은 그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먼 친척인 예판친 장군을 방문하면서 기이하고 비극적인 로맨스가 펼쳐진다.  
 
예판친에게는 딸이 셋 있는데, 둘째 딸 아델라이데에게 중년의 부유한 사업가 토츠키가 청혼을 한다. 두 남자 모두에게 사업상 크게 이익이 되는 이 결혼이 성사되려면 토츠키의 정부 나스타샤를 ‘떼어버려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토츠키에게 유린 당해온 그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토츠키의 결혼을 훼방 놓겠다며 벼르고 있다. 예판친은 토츠키와 상의한 뒤 비서 가냐에게 상당액의 지참금을 줄테니 나스타샤와 결혼하라고 부추긴다. 속이 검고 욕심이 많은 가냐는 예판친의 막내딸 아글라야를 사랑하지만 지참금이 탐이 나서 ‘부자의 첩’이라 낙인찍힌 나스타샤와의 결혼을 고려한다.  
 
한편,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거상의 아들 로고진은 나스타샤의 미모에 완전히 빠져 물불을 안 가리고 그녀에게 달려든다. 나스타샤의 불행한 과거에 깊은 연민을 느낀 미슈킨은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청혼한다. 미슈킨-로고진-나스타샤의 삼각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 공작을 사랑하게 된 아글라야가 뛰어들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질투와 음모와 스캔들로 뒤얽힌 사각관계는 관계자 전원이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로고진은 나스타샤를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서’ 결혼식 날 밤 그녀를 죽인다. 아글라야는 백작을 사칭하는 폴란드 사기꾼과 결혼한다. 살인죄로 기소된 로고진은 시베리아 유형 길에 오르고, 미슈킨 공작은 페테르부르크에 올 때보다 더 심한 백치 상태가 되어 스위스로 돌아간다.  
 
내용을 대충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돈·치정·살인이 눈에 금방 들어온다. 정략결혼·내연관계·유산 상속·지참금·삼각관계·사각관계·질투·살인의 테마는 속칭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도스토옙스키의 천재는 이런 스토리를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진 독자만이 사랑할 수 있는 독특한 고전으로 변형시켰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무덤 속의 그리스도’(1520~1522), 30.5 x 200 cm, 바젤 미술관 소장

한스 홀바인이 그린 ‘무덤 속의 그리스도’(1520~1522), 30.5 x 200 cm, 바젤 미술관 소장

 
도스토옙스키는 질녀 소피야에게 보낸 편지에서 『백치』의 주된 사상을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아름다움이란 하나의 이상이지만 그 이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문명화된 유럽에서도 아직 요원하기만 하구나. 이 세상에는 오로지 단 한 분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물이 존재하지. 그리스도가 바로 그 사람이야.” 한없이 선한 백치 공작 미슈킨을 통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를 그려보고자 했다는 얘기다.  
 
독일 화가 홀바인의 그림을 보고 소설을 형상화하다
블라지미르 보르트코 감독의 러시아 미니시리즈 10부작 ‘백치’(2003). 주인공 미슈킨(예브게니 미로노프)이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 앞에 서 있다.

블라지미르 보르트코 감독의 러시아 미니시리즈 10부작 ‘백치’(2003). 주인공 미슈킨(예브게니 미로노프)이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 앞에 서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소설을 썼는가는 편지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1867년 9월부터 구상한 소설은 어렵사리 진행되었다. “아주 매력적이지만 너무 난해한 아이디어”에 사로잡힌 그는 “카드 한 장에 인생을 걸듯이 이 소설에 모든 걸 다 걸었다”는 ‘도박꾼다운’ 말까지 했다. 그해 말 그는 그동안 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했다. “내가 미치지 않은 게 신기합니다.”  
 
스위스 신학자 발터 니그는 “그리스도인은 좌초하게 마련이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리스도를 닮은 미슈킨 공작은 문자 그대로 좌초한다. 그의 순수한 연민은 싸구려 동정심으로 오해받고, 그의 선의는 이용당하며, 그가 도와주려고 했던 인물들은 죽거나 파멸한다. 그의 휴머니즘은 우유부단으로, 겸손은 무능으로 치부된다. 그는 주인공으로서도, 그리스도의 대역으로서도 실패했다.  
 
‘실패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 부부가 1867년 8월 12일 바덴바덴에서 제네바로 가는 도중에 들른 바젤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16세기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직접 보기 위해 바젤 미술관을 방문했다. 부인의 회고록을 읽어보자.  
 
“그 그림은 남편을 압도했다. 그는 그림 앞에서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나는 너무나 참혹한 느낌이 들어 다른 전시실로 갔다. 15분인가 20분 쯤 후에 돌아와 보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그 그림 앞에 붙박인 듯 계속 서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홀바인을 “놀라운 예술가이자 시인”이라 부르며 열광했다. 도스토옙스키 사전에서 ‘시인’이란 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를 지칭하는 찬사다. “남편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의자에 올라서서 그림을 보았다. 나는 벌금을 물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이때 본 그림은 몇 달 뒤 『백치』속으로 들어와 소설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백치』는 러시아 문학사상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작가로 알려진 저자가 쓴 가장 노골적인 종교소설이다. 주인공을 ‘그리스도와 닮은 사람’으로 설정했다니 더 볼 것도 없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는 왜 그 많은 성화와 이콘 중에서 하필 홀바인의 ‘죽은 그리스도’를 소설 속으로 들여왔을까. 도대체 그림의 어떤 점에 그는 그토록 매료된 것일까.
 
“좌절의 밑바닥에서 극도의 시련으로 담금질 된 기쁨”
2016년 스위스 바젤 미술관에서는 15세기와 16세기의 그리스도 형상을 주제로 하는 특별 전 ‘구원의 고고학’이 열렸다. 사진은 전시 포스터에 사용된 그림

2016년 스위스 바젤 미술관에서는 15세기와 16세기의 그리스도 형상을 주제로 하는 특별 전 ‘구원의 고고학’이 열렸다. 사진은 전시 포스터에 사용된 그림

작중 인물 이폴리트는 로고진의 집에 걸려있는 홀바인의 그림 속에서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의 ‘시신’을 읽어낸다. “거기에는 인간의 시체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받았던 끝없는 고통, 상처, 고뇌, 십자가를 지고 가거나 넘어졌을 때 행해졌던 보초의 채찍질과 사람들의 구타, (내 계산에 의하면) 여섯 시간동안 계속되었던 책형의 고통을 다 참아낸 인간의 시체였다.”  
 
이폴리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만약 그를 신봉하며 추앙했던 모든 제자들과 미래의 사도들, 그리고 그를 따라와 십자가 주변에 서 있었던 여인들이 이 그림 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그의 시체를 보았다면, 그들은 이 시체를 보면서 어떻게 저 순교자가 부활하리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 “만약 죽음이 이토록 처참하고 자연의 법칙이 이토록 막강하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폴리트의 해석은 대부분의 인간이 보이는 반응일 것 같다. 저토록 철저하게 인간적인 형상에서 어떻게 신의 이미지를 찾아낼 것인가. 저토록 철저하게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죽음에서 어떻게 죽음을 초극하는 무언가를 찾아낼 것인가.  
 
도스토옙스키는 예술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견지했다. 그림을 ‘미학적’으로 분석하는 법은 알지 못했지만 직관적으로 그 본질을 파악했다. 잘 그렸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독창적인 잣대로 예술을 평가했다.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정신을 들쑤셔놓고,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고뇌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홀바인은 예술가이자 시인이다. 그의 그림은 도전이자 시험이다. 마치 “이래도 믿을 테냐”라고 묻는 듯하다. 미슈킨의 말처럼 그런 그림을 보고 있다가는 “있던 신앙심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그림에도 ‘불구하고’ 더 깊은 신앙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러시아 미니시리즈 ‘백치’에서 주인공 미슈킨 역을 맡은 예브게니 미로노프. 도스토옙스키는 미슈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했다.

러시아 미니시리즈 ‘백치’에서 주인공 미슈킨 역을 맡은 예브게니 미로노프. 도스토옙스키는 미슈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폰비지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강해질수록 신을 믿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강력하게 자라난다”고 썼다. “불행 속에서 진리는 더욱더 밝게 빛난다”고도 했다. 이는 종교적인 믿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생에 대한 어떤 ‘태도’다. 그는 좌절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희망, 극도의 시련으로 담금질 된 기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홀바인의 그림은 그리스도의 그림이자 인생에 관한 ‘빅 픽쳐’였다.  
 
취리히 중앙역을 출발한 열차는 1시간 만에 바젤 역에 도착했다. 바젤 미술관에서는 마침 ‘구원의 고고학’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다. 홀바인의 그림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6번 방 입구 앞에 서니 정 중앙에 ‘무덤 속의 그리스도’가 보였다. 벽 중앙에 관이 붙어 있고 그 안에 실물 크기의 시신이 거의 입체적으로 들어 있는 듯했다.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섬뜩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눈으로 그림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담아왔다. 절망의 심연으로 떨어졌을 때 꺼내 보려고.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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