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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의 아름다움

김하나의 만다꼬
며칠 전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DIF)를 통해 ‘제인’을 봤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나이지리아 곰베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인류 최초로 침팬지들을 근거리에서 관찰해 수많은 새로운 발견을 세상에 전해준 구달 박사의 성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나 역시 구달 박사의 책들을 읽었으므로 대강의 내용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굉장히 울림이 컸다. 글과 사진으로만 접했던 침팬지들-플로ㆍ피피ㆍ데이비드ㆍ골리앗 등등-의 움직임과 표정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영화에 사용된 영상은 곰베에 최초로 파견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촬영 기사이자 나중에 구달 박사의 남편이 되는 휴고 반 라윅이 찍은 100 시간 분량의 필름에 기반한다. 사라졌다고 알려진 방대한 필름이 2014년에 발견되면서 영화 제작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구달 박사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외모 또한 그녀의 업적만큼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사랑에 빠진 남자가 카메라로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 또한 전혀 다른 경험이 되었다. 불타는 아프리카의 노을을 배경으로 앉은 구달 박사의 옆모습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장관이었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얼굴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영화 중간엔 구달 박사가 하인즈 콩 통조림을 떠먹는 장면이 있는데, 최고의 모델을 기용해서 정성들여 찍은 브랜드 필름 같았다. 사실 이건 침팬지 연구에 관한 기록 영상인데 말이다.  
 
여기서 잠깐, 구달 박사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묵묵하고 끈질긴 현장 연구로 인류 최초의 발견을 수없이 안겨준 그녀였음에도 언제나 외모에 대한 비아냥이 떠나질 않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커버걸’ ‘제인 구달은 다리 때문에 유명한 것’ 등의 조롱이 이어졌고, 위대한 학문적 성취가 그녀의 외모 때문에 오히려 폄훼되곤 했다. 나 또한 구달 박사를 최초로 알게 된 순간을 그녀의 아름다움으로 생생히 기억한다. 20년쯤 전, 당시 나는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밤,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다 친구가 깰까 봐 소리를 죽인 채 케이블 TV를 켰다. 숲 속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가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침팬지와 손을 잡는 장면이 나왔다. 자막으로 드문드문 나오는 설명을 통해 나는 그 사람이 제인 구달이고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구달 박사가 숲을 걷고, 주저앉아 노트를 쓰고, 침팬지와 교감하는 모든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곧 나는 그 사람의 책들을 찾아 읽었고, 그 길로 구달 박사의 팬이 되었다.  
 
그 후 십수 년쯤 지나, 세계를 다니며 환경보호 강연을 하는 구달 박사가 방한했다는 소식에 나는 평생 처음으로 작가 사인회라는 것에 참석했다. 나는 책에 사인을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대자연에 감사하게 해준 당신께 감사해요.’ 새하얗게 머리가 새고 얼굴에 온화한 주름이 가득한 구달 박사는 사인하려던 펜을 멈추더니, 여전히 신비롭게 아름답고 현명해 보이는 눈동자로 내 눈을 또렷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Mother Nature needs you(대자연은 당신을 필요로 해요).”  
 
나는 그 순간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보다 더 거대한 목표를 위해 일생을 바쳤을 때 얼굴과 표정에 배어드는 기운은 아름다움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브랜드라이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힘 빼기의 기술』을 쓴 뒤 수필가로도 불린다. 고양이 넷, 사람 하나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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