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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 앞에서 즐겁게 인증샷

제사에 대한 아름지기의 색다른 제안 ‘가가례(家家禮):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현대식 제사상. 제기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대신 그릇 수를 줄이고, 음식을 종류별로 함께 올려 간결하면서도 격식과 품위를 유지했다.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현대식 제사상. 제기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대신 그릇 수를 줄이고, 음식을 종류별로 함께 올려 간결하면서도 격식과 품위를 유지했다.

지난 1월 국내 개봉해 “가족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인생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9.2라는 높은 관객 평점을 획득한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COCO·2017)’는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명절 문화가 배경이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멕시코 사람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과 그들이 좋아하던 꽃과 음식을 차려놓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데, 그 모습이 우리의 제사와 아주 흡사하다. 이날이 되면 돌아가신 분들이 다시 집으로 찾아와 준비한 음식을 먹고 후손들을 축복한다는 멕시코 사람들의 믿음은 영화에서 놀랍도록 생생하게 재현됐다. 저승과 이승을 잇는, 조상을 기리고 가족끼리 화합하는 즐거운 축제이자 흥미진진한 이벤트로서 제사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제사는 형식이고 노동이다.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가족을 위한 정성은 그 아래 묻힌다. 외려 가족 화합을 저해하는 갈등 요소로 전락하는 참이다. 2004년부터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소개해온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는 “이제 형식이 아닌 본질에 근접한 현대식 제사상을 다시 차려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9월 8일부터 11월 2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에서 열리는 ‘가가례(家家禮):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종가에서 아파트까지’전을 통해서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인 제사가 그저 허례허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영감이 되고, 제사의 본질적 정체성과 함께 가족간 화합을 이루는 소중한 문화로 발전하길 바란다”는 것이 신연균 이사장이 전하는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다.  
 
“사치하지 말라” 전통 유학자 가문의 검소한 제사상들
한국인의 보편적인 주거양식이 된 아파트에서의 제사상 차림. 옛날식 병풍 대신 가볍고 실용적인 황동 프레임 병풍이 눈에 띈다. 아름지기 디자인팀(이예슬) 작품이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주거양식이 된 아파트에서의 제사상 차림. 옛날식 병풍 대신 가볍고 실용적인 황동 프레임 병풍이 눈에 띈다. 아름지기 디자인팀(이예슬) 작품이다.

전시장 1층으로 들어가면 하얀 노방천으로 만든 반투명 가림막 사이로 전통 제사상이 어슴프레 보인다. 퇴계 이황 종가의 불천위 제사상과 명재 윤증 종가의 제사상을 아름지기가 재현한 것들이다. 전통 유학자 집안을 대표하는 가문인 만큼 제사상도 한 상 크게 차려낼 것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다. 보통 종가의 제물이 평균 35~40여 종에 이르고 일반 가정도 30종 내외지만 퇴계 집안의 제물은 총 26종에 불과하다. 탕 5종을 추가한 것을 제외하면 『주자가례』에 나오는 21종과 동일한 숫자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퇴계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려서부터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익혔는데, ‘1식 3찬’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의 제사상을 살펴보면 유과나 정과 등 한과가 없다. “기름에 튀긴 과자는 사치스럽기 때문에 제물로 사용하지 말라”는 퇴계의 유언 때문이다. 상차림 구성도 합리성을 더했다. 일례로 커다란 대구포가 상 앞줄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퇴계의 손부인 권씨가 “포를 상 가장자리에 놨더니 치맛자락에 걸려 자꾸 떨어지더라”며 위치를 바꾼 것을 후손들이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라는 게 전시를 기획한 김선영 아름지기 문화기획팀 선임의 설명이다.  
 
파평 윤씨 집안의 기제사상도 마찬가지다. 당쟁에 질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서 학문과 후진 양성에 몰두했던 명재 역시 “제사는 엄정하되 간소하게 하라”며 “제사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고, 손이 많이 가는 화려한 유밀과와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여 제사상에는 지적한 제물이 다 빠지는 것은 물론 과일도 대추·밤·감만 올린다. 3색 나물은 한 접시에 함께 담는다. 조기는 온마리가 아니라 토막이다. 김선영 선임은 “명재는 아예 제사상의 크기를 990 x 680 cm 짜리로 정해놓아 많이 차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해놓았다”고 귀띔했다.  
 
그릇 크기를 키우고 개수를 줄이다
이강효 작가의 분청사기 제기

이강효 작가의 분청사기 제기

2층 한옥으로 올라가면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현대식 제사상 차림이 펼쳐져 있다(8~9p 사진 참조).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이 만든, 다섯 개의 단으로 구성된 제사상은 좁고 긴데, 그 위에 올려진 제기가 흔히 보던 유기나 목기가 아니다. 삼국시대 고배그릇을 본딴 굽 달린 분청사기다. 이강효 작가가 만들었다. 전시를 자문한 호서대 정혜경 교수(식품영양학과)는 “굽이 달린 그릇에는 존경의 뜻이 담겨있어 종묘 제사에서도 사용한다”며 “삼국시대 스타일을 조선시대 기법으로 만들어 현대에서 사용하는 시대적 조응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릇의 크기를 키우고 숫자를 줄인 것도 눈에 띈다. 밥과 국, 간장과 꿀 종지를 제외하면 다섯 개에 불과하다. 이 위에 육류·생선어패류·나물류·과일류·떡류를 각각 모아서 올렸다는 것이 포인트다. 여러 종류의 그릇을 사용하고 많은 음식을 차리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인진 작가가 조합토로 만든 제기들

인진 작가가 조합토로 만든 제기들

제사상에서 웅장한 비주얼을 구상하는 떡의 경우, 아래에 삼색 설기를 쌓아올리고 그 위에 대추·밤·석이 고명으로 장식한 잡과 단자로 장식한 뒤 맨 위에는 개성주악으로 멋을 냈다.  
 
계적·육적·어적을 하나의 적틀에 담는 ‘도적’은 제사상의 꽃이라 불리는 주요 제물인데, 어류·육류·조류의 순으로 쌓아올린다. 바다·육지·하늘이라는 우주의 구성원리대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적과 전을 선보였다. 육적으로 쇠고기 산적과 진주식 갈비찜을, 어적으로 도미찜·전복찜·문어찜을 각각 하나의 그릇에 차려냈다. 전은 가장 보편적인 녹두전을 올렸다. 
아름지기 디자인팀(이예슬)의 스테인리스 소반

아름지기 디자인팀(이예슬)의 스테인리스 소반

 
장영석 아름지기 국장은 “이번 전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와서 보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제사와 차례가 끝나고 며느리들끼리 성토하는 대신 인스타그램에 ‘이번 제사상은 이렇게 예쁘게 만들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문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접시가 굽있는 제기가 되는 아이디어 눈길  
이어지는 옆 건물로 한층 올라가면 아파트 제사상을 볼 수 있다. 병풍·제사상·제기가 모두 제사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제한을 없애고 일상과의 접목을 고려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제너럴그레이가 만든 테이블은 전통 제사상의 하부 구조가 상판을 받치는 형태를 살렸다. 아름지기 디자인팀이 제안한 병풍은 가느다란 황동 프레임에 흰색 패브릭 두 겹을 사용해 내리거나 걷어낼 수 있고, 가볍다. 실생활에서는 파티션처럼 활용할 수 있다.  
 
이기욱 작가의 백자 접시와 목기 합은 굽 있는 제기로 변신할 수 있다. 사진 아름지기·ⓒ이종근

이기욱 작가의 백자 접시와 목기 합은 굽 있는 제기로 변신할 수 있다. 사진 아름지기·ⓒ이종근

가장 눈에 띈 것은 도예 작가 이기욱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제기다(표지 사진 참조). 제너럴그레이와 협업을 통해 목기와 백자를 혼용, ‘따로 또같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 조립식 제기다. 백자합과 목기합을 쌓고 그 위에 백자 접시를 올리면 2단 굽이 있는 제기가 되는 식이다. 김선영 선임은 “평소에는 접시나 합으로 사용하다가 제사상에는 굽이 있는 제기로 쓸 수 있고,  굽의 높이와 색도 조절할 수 있어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스타일의 향꽂이와 촛대도 있었는데, 흔들리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가운데에 자석을 집어넣은 것에서 세심함이 느껴졌다. 
 
권대섭 작가의 백자 제기

권대섭 작가의 백자 제기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아름지기가 선정한 공예 작가들이 참신한 감각으로 만들어낸 제기를 볼 수 있다. 권대섭 작가의 우윳빛 백자를 비롯해 김현성 작가의 황동 촛대와 그릇, 심현석 작가의 은촛대와 향꽂이, 양유완 작가의 유리로 만든 제기는 독특한 느낌을 선사했다. 두 손을 모은 모양으로 만든 이인진 작가의 대접에는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 했다.  
 
이건민 작가의 휴대용 제기상자 ‘노마드 제사상’

이건민 작가의 휴대용 제기상자 ‘노마드 제사상’

‘노마드 제사상’은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이건민 작가가 ABS 수지를 가공 처리해 만든 휴대용 ‘제기 가방’이다. 007 가방만한 사이즈에 제기와 수저통을 넣어 산소에 가져가기에 용이하다. 그릇이 흔들리지 않도록 격자식 고정장치를 했다.  
 
양유완 작가의 유리 제기

양유완 작가의 유리 제기

사실 제사는 집집마다 방식이 다르다. “남의 집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래야 한다”는 법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현세 후손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형식이 제사다. 때문에 제사가 누군가의 ‘독박 노동’이 돼버린다면, 그래서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긴다면, 아무리 훌륭한 전통이라도 더 이상 계승되기 어렵다.  
 
“우리 예법에 제사는 남녀가, 종부와 종손이, 같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성은 음식을 하고 남성은 사당 청소를 했죠. 남녀는 하는 일에 구별이 있을 뿐, 일하는 것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박광영 성균관 의례부장의 말이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아름지기·ⓒ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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