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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블록체인으로 흑돼지 인증” 대통령 앞 속사포 제안

[SPECIAL REPORT] 한국판 ‘크립토 밸리’ 추진 
스위스 추크에 2014년 이더리움재단이 둥지를 틀면서 ‘크립토 밸리’가 조성됐다. 이곳 메탈리 백화점에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인근에만 5~6개 블록체인 관련 기업이 모여 있다. [중앙포토]

스위스 추크에 2014년 이더리움재단이 둥지를 틀면서 ‘크립토 밸리’가 조성됐다. 이곳 메탈리 백화점에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인근에만 5~6개 블록체인 관련 기업이 모여 있다. [중앙포토]

3분.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민선 7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17명의 단체장에게 주어진 발언 시간이다. 주제는 지역 일자리 창출이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발표 순서는 첫 번째였다. 그는 6분간 속사포처럼 자신의 구상을 쏟아냈다. 핵심은 제주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였다. 제주를 스위스 추크처럼 ‘크립토 밸리(암호화폐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6일 원 지사에게 블록체인 특구 구상과 관련한 내용을 전화로 물어봤다.
 
그날(8월 30일) 대통령 반응은 어땠나.
“그날 간담회가 대통령이 즉답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다만 나중에 영상을 보니 대통령께서 환하게 웃으시더라. 일자리 창출에 블록체인·암호화폐만한 소재가 없다. 특구로 지정되면 당장 1000개 넘는 일자리가 생길 거다.”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나.
“먼저 제주산 농축수산물의 품질 관리다. 제주도 와 봤느냐. 흑돼지 판다고 써 붙인 식당이 천지다. 그런데 진짜 흑돼지를 파는지 알게 뭐냐. 아무리 제주도지사가 ‘원조 리얼 진짜 흑돼지’라고 인증 도장 찍어 줬어도 중간에 슬쩍 다른 돼지를 섞을 수도 있다.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 흑돼지가 태어났을 때부터 블록체인에 등록해 이력을 관리하면 진짜 흑돼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다.”
 
그 외 다른 프로젝트는.
“부가세 환급 프로그램이다. 이론적으로는 관광객이 물건을 산 뒤 부가세를 매장에서 바로 바로 환급해 주면 된다. 하지만 시스템이 복잡하고 혹여나 자금세탁에 악용될까 매장에서는 환급을 안 해 준다. 관광객은 공항에 와서 한꺼번에 택스 리펀드 받는다. 그런데 공항에서 환급받은 돈은 쓸 시간도 장소도 마땅치 않다. 만약 매장에서 즉각 부가세를 환급해 준다면 아마 그 관광객은 환급받은 만큼의 돈을 제주에서 더 쓸 거다. 그리고 블록체인을 통한 탄소 저감행동 관리다. 탄소 배출을 적게 한 사람에게는 마일리지를 주는 방법 등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시도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들 프로젝트는 중앙정부에서 특구 지정을 해 줘야 추진 가능한 거냐.
“아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행정 시스템 개선은 중앙정부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요구하는 것은 블록체인 산업을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다. 싸이월드의 실패를 또 반복할 수는 없다.”
 
싸이월드의 실패란.
“국내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원조는 싸이월드다. 하지만 싸이월드가 도토리 키재기처럼 더디게 성장하는 사이 페이스북은 플랫폼이 됐다. 이른바 팡(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기업은 불과 몇 년 전에 출현했다. 플랫폼을 주도하지 못하니깐 우리는 개발 응용프로그램을 사다 쓰는 소비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은 플랫폼이고, 원천 기술이다. 규제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합리적인 규제를 하자는 거다. 지금 정부는 그냥 방치하고 있다.”
 
정부는 블록체인은 육성하고 암호화폐는 근절하겠다고 한다.
“말이 안 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하겠다는 건 프라이빗 블록체인만 육성하겠다는 거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해당 체인에 참여한 기업 혹은 공공기관이 자원을 대는 구조다. 보안이 강화된 데이터 센터밖에 안 된다. 플랫폼으로 기능하려면 퍼블릭 블록체인이어야 하고, 퍼블릭 블록체인을 운영하기 위해선 암호화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국내 프로젝트라면 모를까 특구로 지정한다 쳐도 해외 기업들이 굳이 제주로 올까.
“규제 리스크가 없다. 기업들은 예측 가능한 규제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이미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20여 곳이 제주가 특구로 지정되면 본사를 옮기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여당 소속이 아니다. 정치 공학 측면에서 특구 실험이 성공할 경우 남의 당 좋은 일만 시키게 될 텐데, 특구를 허가해 줄까(원 지사는 현재 무소속이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추진하고 있다. 제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내가 주목을 받는 것뿐이다. 특구로 지정된다고 해서 독불장군처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충분히 협력하는 모델로 갈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결정에 속좁은 정치공학이 개입할 것으론 보지 않는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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