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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서명 못하게 게리 콘이 훔친 편지엔 “한·미 FTA 종료 희망”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버지니아주 샬럿빌에서 벌어진 백인 우월주의 폭력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왼쪽)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이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버지니아주 샬럿빌에서 벌어진 백인 우월주의 폭력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왼쪽)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이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 부편집인이 펴낸 책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의 파장이 워싱턴을 강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국정운영 사례를 고발한 책 내용 때문이다.
 

본지, 작년 9월5일자 사본 입수
문 대통령·김현종에게 보내는 편지
콘 덕에 마음 바꿔 폐기 방침 철회
“한국 사드 철수해 미국 배치” 지시도

특히 이 책에는 한국 정부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도 적지않게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폐기하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우드워드 부편집인은 책에서 “지난해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를 폐기하기 위해 준비한 ‘편지(letter) 초안’을 당시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대통령 책상에서 훔쳐 없애버렸다. 서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라고 적었다.
 
중앙일보는 7일 이 편지의 사본(사진)을 입수했다. (지난해)9월 5일자로 돼 있는 이 편지는 수신처가 문 대통령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돼 있다.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하 협정)은 현재 형태로는 미국 경제에 총체적으로 최대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협정 제24.5 조에 따라 미국은 본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알립니다. 제24.5조의 규정에 따라 이 협정은 통고일로부터 180일 후에 종료됩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양국이 우려하는 경제적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과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고 적었다.
 
게리 콘이 훔친 한미FTA 파기 통보문 사본. [뉴시스]

게리 콘이 훔친 한미FTA 파기 통보문 사본. [뉴시스]

협정문 제24.5조는 한·미 FTA의 발효 및 종료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어느 한 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게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한다고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상대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면 통보만 하면 일방 파기가 가능한 것이다. 트럼프는 2016년 선거전 때부터 “한·미 FTA는 끔찍한 협정”이라며 자신이 당선되면 파기할 뜻을 재차 강조하곤 했다.
 
실제 지난해 9월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를 직접 준비했던 것이 확인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9월1일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한미 FTA 폐기 준비를 지시했다”고 보도한다. 그리고 다음날인 2일 트럼프는 조만간 한·미 FTA 폐기를 논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상당히 염두에 두고 있다. 다음주 5일에 참모들과 논의하겠다”고 답한다. 편지의 날짜가 9월5일로 돼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말 동안 한·미 FTA로 혜택을 입고 있는 주의 연방 상·하원 의원들을 중심으로 트럼프에 ‘폐기 유보’를 촉구하는 압력이 집중적으로 가해졌다. 의회 내 무역협정의 소관 위원회인 상원 재무위와 하원 세입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5일 ‘폐기 반대’ 성명까지 발표했다. 따라서 게리 콘 위원장이 우드워드의 주장대로 트럼프 책상에서 편지 초안을 훔쳐 빼돌린 게 맞다면 참모 회의가 예정됐던 5일이거나 전날인 4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콘 위원장의 ‘모험’ 덕분인지 백악관은 마음을 바꿔 9월 6일 “한·미 FTA 폐기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돌아섰다.
 
한국 정부도 트럼프의 입장이 강경한 것을 간파해 이 즈음부터 개정안 협상에 적극 나서게 됐다. 이후 올 1월 1차 협상을 시작으로 지난 3월 원칙적 합의를 도출했고, 이달 말 유엔총회 기간 중 개정안에 서명할 예정이다.
 
한편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우드워드의 책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고비용을 이유로 지난해 경북 성주에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대신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배치하고 싶어했다고 보도했다. 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초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게 한국이 사드 비용을 지불했는지 물었다. 이에 맥매스터 전 보좌관은 “사드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며 “그것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좋은 합의다. 그들은 우리에 그 부지를 99년간 무상으로 임대해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해 “나는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고, 성주 골프장이 포함된 지도를 보곤 “이 것은 쓰레기 땅이다”며 “(한국 사드 배치는)끔찍한 합의다. 누가 이 합의를 협상했느냐. 그 것을 빼라. 나는 그 땅을 원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성주 사드 기지 운영에)10년간 100억 달러(약 11조 2000억원)가 들지도 모르는데, 미국에 있지 않다. 그것을 철수하고 포틀랜드에 배치하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박광수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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