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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은 ‘엄근진’? 비어라이헨 만나면 생각 바뀔 걸

백경학의 맥주에 취한 세계사
700만명이 몰리는 세계 최대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AFP=연합뉴스]

700만명이 몰리는 세계 최대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AFP=연합뉴스]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 뿐!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독일 작가)

 
해마다 9월이 되면 독일 뮌헨은 도시 전체가 맥주 향기에 취한다. 맥주 애호가가 손꼽아 기다리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리기 때문이다. 맥주를 물처럼, 때로는 물보다 더 많이 마시는 독일 사람들. 그들은 왜 맥주에 열광할까? 

22일 개막하는 뮌헨 옥토버페스트
200년 전 왕가 결혼식 파티서 유래
700만 명이 2주일간 700만ℓ 마셔
한번에 맥주잔 20개 배달 진풍경도

 
맥주는 왕에서 농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즐겨 마셨던 평등의 상징이다. 특히 여성과 가난한 서민이 사랑한 술이었다. 맥주를 영혼의 음료로 여기는 독일인에게 옥토버페스트는 우리의 추석 명절에 해당한다. 그해 수확한 보리와 밀로 맛있게 빚은 맥주는 우리로 치면 조상님께 바치는 햇곡식과 송편이다. 
 
옥토버페스트는 9월 셋째 주 토요일에 시작된다. 올해 개막일은 이달 22일이다. 뮌헨을 상징하는 검은색 수도복 입고 말을 탄 여성이 축제 참가자 행렬을 이끈다. 이어 파울라너·호프브로이·에르딩어 등 뮌헨 6대 맥주회사의 오크통을 실은 화려한 꽃마차가 그 뒤를 따른다. 전통 옷을 입은 대형 브라스밴드와 상인 조합, 행사 관계자 등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뮌헨 거리를 행진한다. 인산인해를 이룬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거대한 행렬이 도착하는 곳은 테레지엔(Theresienwiese) 광장. 면적 42만㎡로 광화문 광장의 22배나 된다. 
 
축제에서 찾을 수 없는 것, 500㎖ 맥주잔  
뮌헨 시장이 나무 망치로 맥주 오크통 마개를 따는 장면. [사진 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

뮌헨 시장이 나무 망치로 맥주 오크통 마개를 따는 장면. [사진 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

정오가 되면 광장 한복판의 대형 천막에서 뮌헨 시장이 대형 오크통 마개를 나무망치로 딴다. 그 순간 12발의 축포가 터진다. 축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축제의 서막이 오른다. 이때 뮌헨 시장이 개봉하는 맥주를 메르첸비어(Märzenbier)로 부른다. 풀이하자면 3월의 맥주다. 옥토버페스트를 위해 그해 3월 홉을 많이 넣고 5개월 이상 오래 숙성한 맥주다. 그래서 옥토버페스트의 맥주는 질감이 묵직하고 알코올 도수도 6도가 넘는다. 축제 둘째 날인 일요일에는 소총부대·사냥꾼·재단사 등으로 분장한 직능단체 사람과 일반 시민 등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대규모 거리행진을 벌인다. 
전통옷을 입은 사람들이 뮌헨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 [사진 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

전통옷을 입은 사람들이 뮌헨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 [사진 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

행사장에는 70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텐트 14개와 중소형 텐트 20여 개가 들어선다. 첫날 축포 소리에 맞춰 ‘마스’라고 부르는 1ℓ들이 잔에 담긴 맥주가 일제히 판매되기 시작한다. 관광객은 브라스 밴드가 연주하는 전통 음악을 들으며 구운 닭고기, 돼지 훈제족발인 슈바이네학센, 소시지 등 맛있는 안주를 즐긴다. 16일 동안 이어지는 축제 기간 중 소비되는 맥주는 자그마치 700만ℓ. 1t 트럭 7000대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사람이 먹어치우는 식재료도 양이 엄청나다. 닭 63만 마리, 소 80마리, 소시지 20만 개가 소비된다. 맥주 시음장 건너편에서는 축제를 위해 특별히 설치된 간이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 등 놀이기구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당신과 나를 위하여, 프로스트 
독일어로 ‘10월의 축제’란 뜻의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10월 바이에른 왕세자 루트비히 1세와 작센의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에서 유래했다. 왕실 결혼을 기념해 음악회·경마 등의 부대 행사가 열렸는데, 경마가 뮌헨 시민에게 큰 인기를 끌자 매년 10월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경마대회와 작은 규모의 맥주 축제를 결합해 옥토버페스트가 탄생했다. 1819년부터 뮌헨시가 주관하고 있다. 1880년 레벤브로이·호프브로이·슈파텐 등 뮌헨 6대 맥주회사가 후원을 시작하면서 대규모 맥주 축제로 발전했다. 
대형 텐트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형 텐트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AP=연합뉴스]

안타까운 역사도 있다. 1813년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과 1870년 보불전쟁, 1·2차 세계대전으로 행사가 중단됐다. 1980년에는 극우 청년의 폭탄테러로 13명이 죽고 200여명이 다치는 비극이 발생했다. 207년 동안 24차례 축제가 열리지 못했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히는 옥토버페스트의 꽃은 단연 맥주다. 독일 전국에 있는 맥주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4000종의 맥주 중 가장 맛있는 맥주가 축제장에서 경연을 벌인다. 
 
옥토버페스트 텐트 속에서는 건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눈이 마주치면 술잔을 부딪친다. 신나는 바이에른 전통음악에 맞춰 들썩거리다 보면 어느새 모두가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옥토버페스트 묘미다. 독일 전역의 맥줏집과 야외 주점인 비어가르텐(Biergarten)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맥주 축제가 벌어진다. 
맥주 시음장과 놀이기구가 들어서는 옥토버페스트 축제장. [EPA=연합뉴스]

맥주 시음장과 놀이기구가 들어서는 옥토버페스트 축제장. [EPA=연합뉴스]

질서를 생명같이 여기는 독일 사람도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는 아무리 마셔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람이 옥토버페스트 때는 흐트러진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다. 이런 사람을 ‘맥주 시체(Bierleichen, 비어라이헨)’라고 부른다. 술기운이 오른 여성 중 일부는 웃옷을 모두 벗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 건배를 외치거나 광장을 활보하기도 한다.
 
한 잔을 마시면 9월의 태양이 돌고, 한 잔 더 마시면 세상이 돈다. 9월의 석양은 하늘만 물들이지 않고 사람들의 얼굴도 붉게 물들인다. 조명 장식으로 환하게 밝혀진 마로니에 나무 아래 축제가 무르익어간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나이와 성별, 국경을 넘어 모두 하나가 된다. 사람들은 맥주 한 잔으로 영웅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왕이 되곤 한다. 맥주가 세상 근심을 잊게 하는 묘약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 곧 뮌헨 시내 전역에 “프로스트(Prost, 건배)”와 “춤 볼(Zum wohl, 위하여)”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3시간 대기 줄 피하려면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1ℓ들이 맥주잔 12개를 한 번에 나르는 여성 종업원. [로이터=연합뉴스]

1ℓ들이 맥주잔 12개를 한 번에 나르는 여성 종업원. [로이터=연합뉴스]

옥토버페스트 관광객은 700만 명에 육박한다. 축제 기간에 아예 휴가를 내고 인근 도시에 방을 잡고 출퇴근하는 독일 사람도 많다. 이중 외국인 관광객은 100만 명 정도다. 최소한 6개월 전에 예약해야 호텔을 잡을 수 있다. 축제가 임박해서 호텔비가 곱절은 뛴다.   
행사장은 오전 10시에 개장해 오후 11시 30분 문을 닫는다.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정오께 방문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는 때는 해가 지고 난 후다. 저녁 시간에는 유명 맥주회사의 대형 텐트로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입장에만 두세 시간이 걸리고 맥주 주문도 힘들다. 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oktoberfest.eu)에서 테이블 좌석을 예약하면 기다리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작은 텐트에서는 다채로운 안주를 판다. 맥주를 비롯해 다양한 음료도 마실 수 있다.   
축제에서 단연 인기를 끄는 사람은 초록색과 붉은색 바이에른 전통 옷인 드린딜(Drindl)을 입고 맥주를 나르는 여성 종업원이다. 이들이 한 번에 몇 개의 맥주잔을 나르는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무게 2㎏의 맥주잔에 맥주 1ℓ를 가득 채우기 때문에 맥주 한 잔 무게가 3㎏이나 된다. 종업원은 12잔을 우습게 든다. 힘센 여성은 20잔을 배달한다고 하니 두 손으로 60㎏을 드는 셈이다. 독일 여성의 강인함을 확인할 수 있다. 1ℓ들이 맥주 한 잔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1만5000원 정도다.   
최근 텐트별로 특징과 분위기가 차별화되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캐퍼(딱정벌레), 젊은이가 모이는 히포드롬(경기장)이 있다. 호프브로이와 레벤브로이 텐트에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주로 찾는다. 올해 축제는 22일부터 10월 7일까지 열린다. 
 
 
백경학 맥주칼럼니스트 stern100@hanmail.net  
독일 뮌헨 슈바빙의 맥줏집과 중세 양조술의 전통을 계승한 유럽 수도원을 순례하며 맥주를 배웠다. 2002년 국내 최초의 하우스 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를 창업했다. 현재 장애 어린이 재활을 위한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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