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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와규 있다면, 한국엔 천연기념물 제주흑우 있다

서귀포시축협 생축사업장에서 길러지는 제주흑우들. [이수기 기자]

서귀포시축협 생축사업장에서 길러지는 제주흑우들. [이수기 기자]

지난달 2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서귀포시축협 생축사업장. 사업장 내에 거대한 축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축사 천정에 설치된 대형 선풍기가 늦더위를 식히기 위해 쉼 없이 돌아갔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목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축사 안으로 들어서자 확연한 차이가 났다. 축사 안에선 마리당 500~600㎏의 덩치를 자랑하는 제주흑우(黑牛)들이 길러지고 있었다.
 

흑우, 와규 원조 ‘미시마소’ 조상설
수정란 이식해 보존, 30두 도축 제외

올레인산 55% 맛·품질 최고 수준
한우 자급률 40% 지키기 선봉장

이마트선 설 선물세트 완판 되기도
미 흑우 블랙앵거스 같은 명품 기대

검고 윤기 나는 털색 덕에 한눈에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제주흑우는 일반 한우보다는 다소 작지만 몸이 탄탄하고 체질이 강한 게 특징이다. 이 생축사업장에서만 500여 마리의 제주흑우가 길러진다. 이완희(42) 서귀포시축협 팀장은 “제주흑우가 일반 한우보다 20%가량 비싸지만 찾는 분이 많아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귀포시축협의 제주흑우 전문식당에선 흑우 물량이 달려 팔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한때 1만 마리 넘게 사육
 
서귀포시축협 생축사업장에서 길러지는 제주흑우들. [이수기 기자]

서귀포시축협 생축사업장에서 길러지는 제주흑우들. [이수기 기자]

‘소(牛)’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산 쇠고기를 비롯한 수입 쇠고기들이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이에 대응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농업전망 2018’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쇠고기 자급률은 41%에 그쳤다. 수입산 쇠고기가 전체 시장의 59%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우 점유율은 2013년 50.1%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하락세다.
 
가장 큰 원인은 수입 쇠고기의 가격 경쟁력이다. 한국농수산유통식품공사 가격정보(KAMI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우 등심 1등급(100g 기준)의 평균 소매가격은 8083원인 반면 호주산 등심(냉장)의 평균 소매가는 4773원으로 한우의 60%선에 불과했다. 여기에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현재 21.3%인 미국산 쇠고기 관세율도 내년에는 18.6%로 낮아지고 2026년에는 완전히 철폐된다.
 
정부와 축산업계는 40%대 쇠고기 자급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사실상 가격 경쟁으로는 미국산이나 호주산 등 수입 쇠고기를 이기기 힘든 만큼 고급화와 차별화를 통해 수입 쇠고기 공세를 막아내겠다는 복안이다. 그 선봉에 제주흑우가 있다. 제주흑우는 일반 한우(누렁소)와 칡소 등과 더불어 한우의 4대 품종 중 하나다. 일반 한우가 국내 한우 사육 두수(약 300만 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숫자는 적지만 제주흑우의 맛과 품질은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제주대 연구에 따르면 고기의 맛을 내는 올레인산 함량이 55%에 달한다. 일반 한우(올레인산 함량 47~48%)보다 높고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일본 와규(和牛)와 비슷하거나 다소 높다. 제주흑우는 고기색이 일반 한우보다 붉은 편이어서 시각적으로도 더 맛있게 보인다. 게다가 제주흑우는 2013년 천연기념물(546호)로 지정됐다. 맛에 스토리텔링 요소까지 갖춘 셈이다.
 
제주흑우는 탐라지와 세종실록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특히 세종실록에는 ‘고기 맛이 좋아 고려시대 이래 진상품 및 나라 제사에 쓰이는 제향품으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본 와규의 원조인 ‘미시마소(見島牛)’가 제주흑우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이런 역사를 가졌음에도 1938년 일제가 ‘조선우 심사 표준’을 통해 일반 한우(누렁소)를 조선소의 표준으로 정하면서 제주흑우와 칡소는 잡종으로 몰리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1970년대 정부의 한우 개량 사업이 추진되면서 제주흑우는 멸종 위기를 맞았다. 1960년대 당시 제주도에만 1만여 두가 있던 게 1990년대 들어서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1993년부터 농촌진흥청 등이 제주흑우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다. 농진청은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제주흑우 수정란을 채취해 일반 한우 대리모에 이식하는 방법 등을 개발해 냈다.
 
제주대도 힘을 보탰다. 제주대는 2015년 제주흑우연구센터를 설립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박세필 제주대 제주흑우연구센터장은 “일본 와규는 개량하는 데 1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반면 제주흑우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라며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규격화된 고품질의 제주흑우를 생산해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제주흑우는 천연기념물인 만큼 종자 보존과 개량을 위해 제주축산진흥원에서 길러지는 30여 두는 도축 대상에서 제외된다.
 
 
키우기 어려운 건 단점
 
염승민 이마트 축산담당 바이어와 이완희 서귀포시축협 팀장이 제주흑우를 살펴보고 있다. [이수기 기자]

염승민 이마트 축산담당 바이어와 이완희 서귀포시축협 팀장이 제주흑우를 살펴보고 있다. [이수기 기자]

제주흑우에 대한 소비자 반응도 뜨겁다. 최근 서귀포시축협 주최로 열린 제주흑한우축제 기간에는 하루 평균 1억5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이마트는 올해 설 명절 때 제주흑우 선물 세트 500개를 준비했는데 하루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 올 추석에는 제주흑우 선물 세트를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염승민 이마트 축산담당 바이어는 “제주흑우 선물 세트는 일반 한우 선물 세트보다 20~30% 비싼 가격에도 들여놓기가 무섭게 팔린다”며 “다소 비싸도 개성 있는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 판매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형편이 나아지긴 했다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제주흑우를 본격적으로 산업화하기에는 아직 절대 개체 수가 부족하다. 현재 길러지는 제주흑우는 1700두가량. 국내에서 기르는 일반 한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안정적인 쇠고기 공급을 위해서는 제주흑우가 최소 5000~6000두 이상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수 년 전부터 제주흑우를 3만 두까지 늘릴 계획을 세워놓고는 있지만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흑우가 빠르게 늘지 않는 건 그만큼 키우기 어려운 데다 아직까진 수익성이 일반 한우에 미치지 못해서다. 한 예로 제주흑우는 생육 기간이 36개월 정도로 일반 한우보다 6~8개월 더 길다. 여기에 덩치는 일반 한우보다 작다. 다 자란 일반 한우의 무게가 700~800㎏ 정도라면 제주흑우는 600㎏선이다.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도 한우의 75%선에 그친다. 당장 돈이 급한 농가 입장에서는 키우기가 만만찮은 셈이다.
 
그러나 흑우를 늘려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박남건 농촌진흥청 난지축산연구소장은 “제주흑우가 상대적으로 키우기 까다로운 건 사실이지만 최근 웰빙 바람과 맛 등 비교 우위를 분명히 갖추고 있는 만큼 미국 흑우인 블랙앵거스처럼 과학적인 사육 프로그램을 통해 상품성 높은 품종으로 키워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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